[언론윤리] 알면서도 못 고치는 질 낮은 속보·단독 관행

속보(速報)는 말 그대로 빠른 보도를 일컫는다. 영어로는 ‘Breaking news’라고 하는데 진행 중인 방송을 잠시 멈추고 급하게 내보내야 할 만큼 중요한 소식이기 때문이다. 지진이나 재난 상황을 알려 대피하도록 하거나, 전 세계에 영향을 미치는 미국 대통령 선거 결과가 어떤지 다른 언론사보다 빨리 알리기 위해, 대통령의 파면 여부를 전하기 위해 언론사들은 속보 경쟁을 한다. 

단독은 특정 언론사가 다른 언론사는 구하지 못한 정보를 보도했을 때 붙이는 말이다. ‘단 하나’라고 이름 붙일 만한 특별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으면서도 깊이 있는 정보를 정확히 제공해야 제대로 된 단독 보도라 할 수 있다. 지난해 9월 18일 <한겨레>가 ‘박덕흠 의원 일가 회사, 피감기관 공사 1천억 수주’를 단독 보도했다. 박 의원이 국토교통위원으로 있는 동안, 박 의원과 그 가족이 대주주로 있는 건설사가 피감기관으로부터 공사 수주를 받아 이해충돌 논란이 있다는 내용이었다. 보도 이후 박 의원은 국민의힘을 탈당했고 정부가 ‘박덕흠 방지법’이라 불리는 이해충돌방지법을 발의했다. <한겨레> 보도는 당시 다른 언론에서 다루지 않던 내용이었고 의혹의 맥락을 구체적으로 설명해 국회의원 이해충돌이라는 의제 설정을 주도적으로 이끌었다.

언론은 시민이 알아야 하지만 알려지지 않은 정보를 신속하게 전달하는 일을 한다. 어떤 뉴스는 최대한 빨리 알려야 효용성이 있다. 그런 측면에서 속보·단독 경쟁은 언론이 주어진 책무를 잘하려는 노력이다. 문제는 포장만 ‘속보·단독’이고 알맹이는 그렇지 않은 뉴스를 생산한다는 점이다. 현재 우리 언론은 의미 없는 속보 남용과 무분별한 단독 보도로 ‘양치기 소년’을 자처하고 있다. 

언론의 ‘속보’와 ‘단독’ 남용 실태

지난해 9월, <한국경제>가 ‘[속보] 전광훈 "대통령이 저를 전광훈 씨로 지칭한 것은 모욕"’이라는 기사를 내보냈다. 당시 전광훈 목사는 코로나19 완치 판정을 받고 퇴원한 뒤, 입장문을 통해 사랑제일교회가 방역을 방해한 적이 없고 오히려 정부의 방역 실패가 코로나19 확산의 원인이라고 주장하며 “대통령이 저를 ‘전광훈 씨’로 지칭하며 모욕을 줬다”고 말했다. 전 목사는 8·15 광화문 집회에서 시작된 코로나19 유행으로 사회적 관심을 받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발언이 속보로 쓸 만큼 중요하지는 않았다. 전 목사는 문제적 행동으로 유명해지기는 했지만 그의 이런 발언을 독자들이 긴급하게 알아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

▲ 지난해 9월 <한국경제>가 ‘속보’를 달고 ‘전광훈 "대통령이 저를 전광훈 씨로 지칭한 것은 모욕"’이라는 기사를 내보냈다. ⓒ 한국경제 홈페이지 캡처

전 목사의 발언을 맥락과 함께 다뤄 좀 더 ‘좋은’ 보도를 할 수도 있었다. <한겨레>는 같은 날 <한국경제>와 같은 내용을 다뤘으나 질에서는 차이가 났다. <한겨레>는 ‘전광훈 “문 대통령, 나를 ‘전광훈 씨’로 지칭해 모욕 줘”’ 기사에서 전 목사의 발언이 지난해 8월 말부터 9월 중반까지 이어진 코로나19 확산에 교회의 책임이 없음을 강조하려는 맥락에서 나왔으며, 정부의 방역 실패를 비판하려던 거라고 설명했다.

지난해 한국방송학보에 실린 유수정·이건호의 “방송뉴스의 단독 보도 품질 연구”는 단독 보도의 특성으로 독창성과 심층성, 정확성을 제시한다. 세 요소가 높을수록 질 좋은 단독 기사다. 독창성은 기자가 주도적으로 취재해 밝혀낸 사실일수록 높게 평가된다. 심층성은 다양한 관점을 제시해 사건을 여러 측면에서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기사일수록 높다. 정확성은 기사 내용이 정확해야 한다는 뜻이다.

지난달 14일 <YTN>은 ‘[단독] 유희열→적재...안테나 가수들, 캐럴 발표...크리스마스 선물’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내보냈다. 연예기획사 안테나 소속 가수들이 크리스마스 캐롤을 발표한다는 내용이었다. 정보 출처가 ‘가요계 관계자에 따르면’이라고 돼 있다. 해당 시점에 해당 내용을 보도한 기사가 없으니 굳이 따지자면 ‘단독’이라고 할 수 있지만, 기자가 주도적으로 사회 현상을 추적하여 보도한 내용이라고 보기 어렵고 다양한 관점을 제시한 기사도 아니다. 게다가 이런 캐럴을 발표했다는 것이 긴급하게 보도해야 할 사안이라고 할 수는 없다. 앞서 살펴본 질 좋은 단독 기사의 요건 세 가지 어느 것에도 해당하지 않는다.

<조선일보>는 지난달 16일 ‘[단독] 징계위 열린 날, 윤석열 최악의 환갑날’이라는 보도를 했다. 법무부 검사징계위원회 2차 심의가 열린 지난달 15일이 윤석열 검찰총장의 음력 환갑 생일이라는 게 주요 내용이었다. 윤 총장의 생일과 징계위 날짜가 겹친다는 사실은 윤 총장 직무배제를 둘러싼 추미애 장관과 윤석열 총장의 갈등 상황에서 유의미한 정보는 아니었다. 역시 독창성과 심층성이 빈약한 질 낮은 단독 보도다. ‘속보’, ‘단독’ 표시로 독자를 현혹하지만, 내용은 그저 가십 수준이다.

도끼로 제 발 찍는 꼴

언론이 양치기 소년이 된 대가는 결국 언론이 치른다. 속보 아닌 속보와 단독 아닌 단독은 독자의 이목을 끌어 광고 수익을 높이려는 낚시성 기사이자 어뷰징 기사이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이 2020년 실시한 ‘언론수용자 조사’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 5,010명 가운데 8.2%가 ‘낚시성 기사’를 언론 보도와 관련해 가장 큰 문제라고 응답했고 4.9%는 ‘어뷰징 기사’를 가장 큰 문제라고 답했다.

과도한 속보성 기사는 언론인의 직무만족도도 떨어뜨린다. 전국언론노동조합이 지난해 발표한 ‘2019 일간신문 종사자 노동실태 조사’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 531명 가운데 38.3%가 속보성 기사에 부담을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요한 정보를 빠르게 전하는 것은 필요하다. 하지만 ‘속보’ 표시가 사실상 관심을 끌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는 상황에서 속보성만 강조하다 보면 <한국경제>의 ‘전광훈 속보’처럼 맥락이 소거돼 정보 전달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기사를 내보낼 위험이 커진다.

영향력과 클릭 수를 향한 경쟁

“정을 나누는 동료들끼리 술자리판이 벌어지면, 함량 미달의 단독 기사 얘기는 늘 우리들의 안줏거리가 됐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단독이란 말인가’ ‘시청률에 정말 효과가 있는 것인가’ 푸념하며 술잔을 부딪쳤다"

<채널A>에서 탐사보도 전문 매체 <셜록>으로 자리를 옮긴 이명선 기자가 “나는 왜 종편을 떠났나”라는 칼럼에서 언론의 과도한 단독 경쟁을 회상하며 쓴 것처럼, 언론인들도 무분별한 속보와 단독 경쟁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있다. 최근 온라인 기사에는 다시 기사 제목 앞에 ‘단독’이라는 말을 붙이기 시작했지만, <JTBC>는 자사 보도에 ‘단독’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겠다고 지난 2018년 2월 선언했다.

선언 이후에도 ‘JTBC 취재결과 밝혀졌습니다’, ‘JTBC가 입수했습니다’라는 식의 표현이 쓰이긴 했다. 하지만 제목 앞에 ‘단독’ 모자가 달리지 않았다. 기사 제목에 단독 표시가 없으면 사람들은 기사를 클릭해 내용을 확인하기 전에는 해당 기사가 단독인지 아닌지 알 수 없다. 제목에 올릴 수도 없는 그런 표현만으로는 독자의 클릭을 유도할 수 없는 것이다.

▲ 자사 보도에 ‘단독’ 표기를 쓰지 않겠다고 선언한 <JTBC>가 지난해 10월부터 온라인 기사에 한해 ‘단독’ 표기를 달기 시작했다. ⓒ JTBC 뉴스 홈페이지 캡처

언론이 속보와 단독에 목매는 첫 번째 이유는 영향력 확보 때문이다. 특히 신문, 방송과 같은 전통 매체의 경우 속보, 단독 기사가 언론사의 경쟁력과 관련된다. 사회적 파장이 큰 속보나 단독, 소위 ‘특종’을 낸 언론사는 그 영향력이 커진다. 지난 2016년 10월 24일 ‘최순실 태블릿PC’ 특종 보도 이후 <JTBC> ‘뉴스룸’은 6주 연속 시청률 1위를 했고 같은 해 12월 8일 10.733%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자체 최고 시청률을 기록했다. 

두 번째 이유는 돈이다. 매체가 영향력을 확보하면 광고비도 올라간다. 포털 등장 전에도 언론사의 주 수입원은 광고였지만, 포털 등장으로 광고 수익을 나눠야 하는 언론사의 수가 늘어나 광고를 얻기 위한 언론사 간 경쟁이 더 치열해졌다. 또한,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표한 ‘2020년 광고산업조사’ 발표에 따르면 2019년에는 컴퓨터와 모바일을 포함한 인터넷 매체의 광고비 규모(4조 7,517억 원)가 방송 매체(4조 102억 원)와 인쇄 매체(1조 1,316억 원)를 합한 것보다 클 정도로 광고 시장에서 인터넷 매체의 중요성이 커졌다. 

신문 지면이나 방송 채널이 따로 없는 온라인 매체일수록 속보, 단독 표시가 돈과 직결된다. 더 많은 ‘클릭 수’가 더 많은 광고비를 보장하니 단독과 속보는 독자를 현혹할 수 있는 좋은 수단이다. 네이버 등 포털 중심으로 뉴스를 소비하는 우리나라 언론 구조에서 ‘클릭 수’는 더욱 중요하다. 

모바일 인터넷과 PC 인터넷을 이용해 뉴스를 소비하는 사람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의 ‘2020 언론수용자 조사’를 보면 응답자 가운데 65.1%가 포털을 언론이라 생각하며 포털을 통해 뉴스를 이용하는 비율은 75.8%다. 그중 네이버를 통해 뉴스를 보는 이용자 비율이 가장 높다. 네이버는 지난해부터 기존에 언론사에 지급하던 전재료를 폐지하고 광고료를 배분하는 방식으로 수익 분배 방식을 바꿨다. 언론사로서는 더 자극적인 뉴스를 만들어야 할 이유가 하나 더 늘어난 것이다. 언론사가 안정적인 수익 모델을 만들지 못하고 광고에 의존하다보니 공익과 정의, 진실을 추구하는 기사보다는 트래픽을 늘리기 위한 기사가 양산되는 실정이다. 

양 떼를 잃지 않으려면 

이솝 우화에서 양치기 소년은 ‘늑대가 나타났다’고 여러 차례 거짓말했다. 마을 사람들은 처음엔 진짜 늑대가 나타난 줄 알고 소년을 도와주려 나타났지만, 소년의 거짓말이 반복되자 더 이상 소년의 말을 믿지 않았다. 마을 사람들의 신뢰를 잃은 소년은 진짜 늑대가 나타났을 때 사람들의 도움을 받지 못했고 소년의 양 떼는 늑대에게 잡아먹혔다. 

언론이 비판·비난받는 이유에 관한 진지한 성찰이 필요하다. 문제 제기는 이미 오래전부터 있었다. 장호순 순천향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지난 2000년 6월 <신문과 방송>에 쓴 글에서 “우리 언론이 뉴스의 속보성에 너무 치중한 나머지 정확성, 공정성, 심층성을 도외시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지적하며 속보는 신문의 경쟁력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20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 언론은 같은 비판을 받고 있다. 무분별하고 무의미한 ‘속보·단독’ 경쟁이 가져올 장기적 폐해를 조금 더 심각하게 인식했으면 좋겠다.


편집 : 김계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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