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비평] 헤라 화장품 광고의 영상 이미지

현대를 살아가는 도시 여성, 당신에게 지금 필요한 건 무엇인가? 화면 가득 전지현의 모습이 나타난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아름답다. 톱스타이자 선망의 대상인 전지현이 고뇌한다. 우아함과 강인함, 선함과 독함, 이기심과 이타심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받는 전지현. 나도 그렇지 않을까? 그녀와 나에게서 선택을 강요받는 외로운 현대 여성이라는 공통점을 발견한다. 고민을 거듭하던 그녀는 이내 헤라 립스틱을 손에 쥐고 당당히 자신만의 길을 걸어간다. ‘아, 이거다! 지금 나에게 필요한 것. 내가 걸어가야 할 길’.

영상은 허구의 세계이자 현실의 세계이다. 영화나 드라마를 보는 관객은 주인공의 이야기에 몰입한다. 허구적 세계를 현실의 세계로 느껴지게 만들기 위해 여러 가지 장치가 활용된다. 관객은 의식의 수준에서 화면 속 세상이 허구임을 인식하지만, 무의식은 사실이라고 믿고 싶어 한다. 이 간극을 채우기 위해 ‘동일시’ 전략이 활용된다.

▲ 헤라 광고. Ⓒ 아모레퍼시픽 헤라 광고 캡처

광고 속 이상적 자아와 현실 자아의 간극

광고는 동일시 전략이 잘 활용되는 사례다. 광고에 등장하는 멋진 주인공은 이데아(idea)이자 나의 이상적 자아(ideal ego)다. 플라톤은 이데아 세상에 대한 그리움 덕분에 인간은 진실을 추구한다고 했다. 현대 사회에서 이데아는 무엇인가? 현대의 이데아는 자본주의가 이미지를 통해 만들어낸 세상일 수도 있다. '인간은 타인의 욕망을 욕망한다'는 라캉의 말을 떠올리면, 이데아를 향한 그리움 덕분에 인간이 진실을 추구한다는 것은 현대에서는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허구적 이상향을 동경하는 것일 수도 있다.

광고를 자본주의의 꽃이라 한다. 현대사회의 인간은 욕망의 덩어리다. 끊임없이 욕망한다. 이상적 자아를 인식할 때 인간은 현재의 삶에 결핍을 느낀다. 현실 자아와 이상적 자아 사이의 간극을 메우려 한다. 문제는 이것이 온전히 개인의 주체적인 판단으로 이뤄지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이상적 자아를 마주치게 되는 것도, 현실의 부족함을 느끼는 것도 자아의 외부에 의해서다. 광고는 이상적 세계를 제시하고, 당신에게는 이것이 부족하며 이를 채우기 위해 나아갈 것을 강요한다. 갈증과 결핍, 해소와 다시 반복되는 갈증이라는 욕망의 전차를 굴러가게 한다.

아모레퍼시픽 화장품은 지난 2015년 전지현을 광고모델로 영입하고 박찬욱 감독과 콜라보를 이뤄 ‘For Seoulista’라는 ‘헤라 무비’ 시리즈를 만들었다. ‘서울리스타(seoulista)’는 전세계 패션∙화장∙트렌드를 이끄는 ‘서울 여성’을 의미한다. 현대를 살아가는 도시 여성을 타겟팅한 신조어로 아모레퍼시픽이 ‘헤라’ 마케팅을 목적으로 처음 사용했다. 시리즈 중 대표적인 에피소드가 ‘LOVE ALL, TAKE ALL or LOSE ALL’이다. 이 광고 영상은 현대인의 욕망을 어떻게 다루는가?

선망과 나르시시즘 그리고 동일시

광고의 줄거리는 자신 앞에 놓인 수많은 선택지 속에 고민하던 전지현이 결국 자신만의 길을 걸어가기로 마음먹는다는 것이다. 자신 앞에 놓인 무수히 많은 선택 속에 고민하다 결국 헤라 화장품을 손에 쥐고 자신만의 길을 당당히 걸어가는 전지현은 영상을 보이는 그대로 분석한 일차적 함의다. 전지현과 마찬가지로 ‘영상을 보는 당신 역시 이렇게 고민하고 힘들어하지만, 당신도 결국 당당하게 자신만의 길을 걸어가야 한다’는 메시지는 이차적 함의다. 선망과 이미지의 나르시시즘, 동일시가 활용됐다.

광고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건 ‘대구’와 ‘대조’다. 두 가지 선택지에서 끊임없이 강요받는 주인공의 상황을 상하, 좌우 반전되는 이미지의 나열로 극대화한다. 주인공을 사선 구도에 놓아 불안정한 상태를 드러내고, 관객에게도 불안을 전달한다. 동일시를 위해 활용된 영상 전략은 시선이다. 주인공의 시선이 향하는 방향대로 우리의 시선도 머문다. 응시를 통해 전지현을 나의 이상적 자아로 동일시한다. 이를 구축하는 장치는 음악과 자막을 통해 컷과 컷을 연결하는 디졸브 효과다.

욕망을 자극하는 이미지 배열

▲ 남산 타워를 배경으로 건물이 즐비한 모습(왼쪽)과 화려한 불빛 아래 도심의 풍경(오른쪽). 상하좌우 반전된 효과를 활용했다. Ⓒ 아모레퍼시픽 헤라 광고 캡처

#1에는 3가지 이미지가 나열된다. 첫 번째는 도심 속 한강이다. 남산타워와 그 앞에 늘어선 고층 아파트를 좌우, 상하로 대칭시켰다. 해가 떠오르는 아침의 모습이다. 두 번째는 광화문이 있는 서울 도심 속 모습으로 낮이다. 마지막은 밤이 되어 불이 켜진 도시의 모습이다. 길게 이어진 차도 한가운데로 차량이 지나간다. 서울의 아침부터 낮과 밤의 모습을 연이어 보여줌으로써 서울이라는 배경을 환기한다.

#2에서부터는 주인공 전지현이 등장하고 광고를 관통하는 메시지가 자막 형태로 이어진다. ‘우리는 언제나 선택을 강요받지’라는 자막과 함께 등장한 전지현. ‘우리’라는 말로 관객이 자신을 전지현과 동일시하게 만든다. 불이 켜진 화려한 도시와 창 바깥을 바라보며 턱을 괴고 고뇌하는 전지현의 모습이다. 전지현은 우리가 바라보는 이상적 대상이자 동시에 고뇌하는 현대 여성인 관객 자신이다. 카메라의 시선을 통한 효과다.

▲ 창 바깥 속 도심을 바라보는 주인공. Ⓒ 아모레퍼시픽 헤라 광고 캡처

#3에는 ‘우아함과 강인함. 선함과 독함. 이기심과 이타심 사이에서 너는 어느 쪽이냐’고 선택을 강요당하는 주인공의 모습이 나타난다. 혼자서 전화기를 붙잡고 소리치며 고개를 흔드는 모습, 선글라스를 끼고 수많은 기자가 기다리는 호텔 문 앞을 나서는 톱스타의 모습, 다시 혼자 있는 방 안에서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이 연이어 나타나며 ‘혼자-다른 사람과 있을 때’ 다르게 보일 수밖에 없는 주인공의 현실을 보여준다. 장면과 장면 사이 대조적 연결을 통한 효과다. 특히 방 안 소파 장면에서는 미장센이 주요 역할을 한다. 화면 사선에 배치된 소파에 전지현이 비스듬히 누워있다. 바닥은 사선 모양 무늬가 위아래 서로 다른 방향으로 겹치게 나타나 위태롭고 불안정한 감정을 관객에게 전달한다.

▲ 머리에 손을 짚고 고뇌하는 주인공. 사선 무늬의 배경이 복잡한 그녀의 심리를 극대화해 보여준다. Ⓒ 아모레퍼시픽 헤라 광고 캡처

#4에는 시선과 응시를 통해 동일시 전략을 어떻게 활용하는지 잘 나타난다. ‘우리는 알고 있지. 어느 한 쪽만으로는 완벽히 아름답지 않아.’ 여기에는 3가지 이미지가 활용된다. 거울을 바라보는 전지현의 뒷모습, 거울을 응시하는 전지현, 거울에 비친 전지현이다. 이를 통해 관객은 립스틱을 바르는 화면 속 전지현을 나 자신과 동일시한다. 화면 속 전지현은 나의 이상적 자아다. 전지현의 행동이면서 동시에 나의 행동이 된다. 그러나 전지현은 ‘한쪽만으로는 완벽히 아름답지 않다’는 문제를 내가 깨닫게 만든다. 부족함을 지적함으로써 결핍과 욕망을 일깨워주는 것이다.

▲ 거울을 바라보는 주인공의 뒷모습과 거울에 비친 모습. 관객은 전지현과 '나'를 동일시하고 거울 속 모습에 도취하는 나르시시즘에 빠진다. Ⓒ 아모레퍼시픽 헤라 광고 캡처

#5는 이동하는 차 안 모습이다. 전지현이 아래를 바라보는 장면과 이어서 헤라 립스틱과 쿠션이 나타난다. 주인공의 시선이 가는 방향을 통해 시청자가 주목해야 할 대상을 일러주는 것이다. ‘모든 걸 갖고 어떨 때, 어떤 무기를 꺼내야 할지 절묘하게 아는 여자.’ 여기서 전지현이 손으로 립스틱을 만지작거리는 모습이 나타난다. 여기서 모든 것이란 헤라 화장품의 모든 걸 가진 주인공의 상태를 말하며, 헤라 화장품이라는 ‘무기’에서 특별히 이번에는 립스틱이라는 무기를 꺼내 든다는 걸 나타낸다.

#6에는 경호원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비행기로 향하는 모습이 나타난다. ‘사랑하거나 질투하거나 그건 네 자유지만’이라는 자막은 주인공을 질투하거나 사랑하는 건 관객의 자유라고 말하는 것이다. 문 앞에 멈춰선 전지현, 비행기 문을 잡은 왼쪽 손에 헤라 립스틱이 들려있다. 그녀의 시선은 비행기로 향하는 정면에서 왼쪽으로 향한다.

#7에는 고민하는 주인공의 모습이 나타난다. ‘너도 알고 있을 거야. 네가 원하는 삶이 어떤 것인지는.’ 립스틱을 쥔 손가락을 톡톡 움직임으로써 립스틱에 주목하게 만든다. 정면 바닥을 고민하는 전지현의 옆모습, 이내 결심한 듯 왼쪽으로 다시 시선을 돌린다.

▲ 헤라 광고. Ⓒ 아모레퍼시픽 헤라 광고 캡처

#8에는 선택을 통해 새 길로 나아가는 모습이다. 자신이 원하는 삶을 깨달은 전지현은 비행기(타인이 나에게 원하는 삶)가 아닌 활주로(자신만의 길)로 걸어간다. 당당한 걸음으로 왼쪽에 있는 활주로로 걸어가는 전지현의 모습이 정면과 뒷모습으로 나타난다. 그 뒤로 ‘LOVE ALL TAKE ALL or LOSE ALL’이라는 자막이 사라진다.

#9는 브랜드를 각인시키는 마무리다. ‘HERA’라는 큰 자막과 함께 전지현의 얼굴을 클로즈업하고 왼쪽 얼굴, 가운데 얼굴, 오른쪽 얼굴을 연이어 보여준다. 어두운 화면 속 얼굴만 비춰 몰입의 효과를 높인다.

광고의 메시지는 여러 가지 선택을 강요받던 전지현이 자신만의 길을 걸어간다는 것이다. 중요한 건 전지현이 그렇게 행동할 수 있었던 것은 헤라 화장품 모두를 구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적절한 때에 적절한 무기를 골라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LOVE ALL TAKE ALL or LOSE ALL’은 헤라 앞에서 고민하지 말고 '모든 걸 가져라(구매해라)'는 메시지다. 그래야 타인이 아닌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삶을 살아가는 현대의 서울 여성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 '무기(립스틱)'를 손에 쥔 모습. Ⓒ 아모레퍼시픽 헤라 광고 캡처

거울 속의 나를 바라보는 현실의 나

나의 욕망이 투사된 거울 속 나와 거울 속 나를 바라보는 현실의 나 사이 이야기다. 카메라 앵글을 통해 우리는 거울 속 이데아를 바라보며 모델과 같은 시선으로 거울 속 자아에 도취하고 거울 속 나가 되려 한다. 영상 속 주인공을 주체적 시선과 객체적 시선으로 동시에 바라보게 함으로써 관객이 자신과 주인공을 동일시하게 만든다. 영상의  일차적 메시지는 단순하며 건강하다. 현대 도시 여성으로서 타인이 원하는 삶이 아니라 진짜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아가라는 것이다. 자아를 일깨워 줬으니 긍정적이다. 하지만 이차적 메시지는 자아를 일깨우기 위해서는 결국 상품을 사야 한다는 것이다. 이데아에 가까워지기 위해서는 헤라 화장품을 모두 사야 하며 이를 통해 결핍이 해소될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광고 천재 존 버거는 광고의 목적을 "현실에 최대한의 불만을 느끼도록 하는 것"이라고 했다. 우리는 결핍과 욕망의 끝없는 순환 속에 갇혀 있는 외로운 존재다. 욕망은 화장을 한 순간처럼 일시적으로만 채워질 뿐, 우리는 새로운 결핍에 빠져든다. 그 욕망이 진정한 나의 욕망이 아니라 누군가가 만들어낸 것이기 때문이다. 왜 우리는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는가. 우리는 그 순환 고리를 영원히 벗어날 수 없는 것일까?


편집 : 김태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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