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널리즘 쟁점] ‘기자 저널리즘’과 ‘PD 저널리즘’

“저널리즘 본령에 충실한 보도가 있고 그렇지 않은 보도가 있을 뿐이다.”

2020년 6월, <미디어오늘> 인터뷰에서 ‘PD 저널리즘’에 관해 묻자 한학수 전 MBC <PD수첩> 앵커가 한 말이다. MBC <PD수첩>은 지난해 30주년을 맞았다. <PD수첩>은 1990년 5월 8일 첫 방송을 시작으로 2005년 ‘황우석 신화의 난자 의혹’, 2010년 ‘4대강 수심 6m의 비밀’ 등 심층 보도로 주목받았다. ‘PD 저널리즘’이라는 용어는 <PD수첩>의 보도와 함께 회자되곤 했다. 

‘PD 저널리즘’은 PD가 제작하는 방송 프로그램이 권력 감시, 공론장 형성 등의 언론 기능을 하면서 이를 지칭하기 위해 등장한 용어다. 방송 기자가 제작하는 1~2분 내외의 뉴스 리포팅과 다른 방식으로 언론 기능을 수행한다는 의미에서 ‘기자 저널리즘’과 구분됐다. 이후 ‘기자 저널리즘’과 ‘PD 저널리즘’은 편성, 구성, 취재 방식 등에서 대조되는 것으로 여겨졌다.

▲ PD수첩 30주년 홍보 영상 갈무리. ⓒ MBC PD수첩 유튜브 채널

직역으로 저널리즘을 구분하는 경우는 세계적으로 유례가 거의 없다. ‘기자 저널리즘’, ‘PD 저널리즘’ 같이 저널리즘을 ‘누가’ 수행하는지에 방점을 찍은 용어는 흔치 않다. 시민 저널리즘(Citizen Journalism․ 시민이 주체가 되어 뉴스를 생산하고 제공하는 활동)이라는 용어가 있지만 언론 종사자 내부에서의 구분은 아니다. 최근엔 ‘기자 저널리즘’과 ‘PD 저널리즘’으로 구분하지 않는 추세지만 저널리즘이 왜 기자와 PD의 것으로 나뉘었는지, 어떻게 다르다고 봤는지 따져보는 일은 유의미하다. 한국 저널리즘이 걸어온 길과 가야 할 길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우연의 산물, ‘PD 저널리즘’

1983년 2월 편성된 KBS <추적 60분>이 ‘PD 저널리즘’의 시초다. 당시 방송국은 카메라맨이 야외에서 움직이며 촬영할 수 있는 ENG 카메라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추적 60분>은 ENG 카메라의 장점을 활용하는 정보성 현장취재 프로그램으로 기획됐다. 제작진은 현장감을 최대한 살릴 수 있는 아이템으로 방송을 제작했다. 2화 ‘한국의 몬도가네’ 편에서 보신을 둘러싼 세태를 비판하는 의도로 뱀과 멧돼지의 피를 마시는 현장을 포착해 방송했는데 화제가 됐다. 해당 방송은 시청률 50%를 기록했고, 방송 이후 뱀탕 영업과 코브라 수입이 금지됐다.

<추적 60분>은 시청률과 광고 양쪽에서 모두 성과를 내면서 본격적인 사회고발 프로그램이 됐다. 당시 <추적 60분>을 만들었던 장윤택 PD는 이 프로그램이 생활정보를 재미있게 전해준다는 초기 기획의도와 달리 뜻밖의 사회고발적 특성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이후 <추적 60분>은 ‘외제 시계 범람’, ‘미아보호 정책의 허점’ 등을 영상으로 고발하면서 인기 프로그램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프로그램 영향력이 커지자 전두환 정권이 <추적 60분>에 직접적인 취재 지시를 내리고 정권 홍보용 아이템을 방송하면서 국민으로부터 신뢰를 잃었다. 1986년 5월, <추적 60분>은 프로그램을 시작한 지 약 3년 만에 폐지됐다.

민주화 운동과 함께 성장한 ‘PD 저널리즘’

1987년 민주화운동 이후 ‘PD 저널리즘’은 전성기를 맞는다. KBS는 1987년 10월 25일 <뉴스비전 동서남북>을 신설했다. <추적 60분>은 사실을 고발하는 데 그쳤다면 <뉴스비전 동서남북>은 사실에 관한 사회구조적 원인을 다루며 ‘탐사보도’ 프로그램으로 변화를 시도했다고 평가받는다. 1990년 시작된 MBC <PD수첩>은 상대적으로 덜 조명된 사회적 약자나 소수자의 권리를 옹호하는 소재를 다루며 ‘PD 저널리즘’의 정체성을 형성했다. 1992년 SBS가 미스터리적 접근과 재연 촬영, 컴퓨터 그래픽 등의 제작기법을 활용한 <그것이 알고싶다>를 편성했다. 1994년에는 KBS <추적 60분>이 재개됐다. PD들이 제작하는 이런 프로그램들은 2000년대에도 정치 권력은 물론 경제, 안보, 종교, 언론 등 다양한 분야를 취재해 보도했다. 2000년대 초반 ‘PD 저널리즘’이라는 용어가 널리 퍼졌다. 

▲ 민주화 운동 이후 지상파 방송 3사는 사회고발, 탐사보도 방송 프로그램을 제작했다. ⓒ 이예진

진실을 향한 객관성과 주관성의 줄다리기

사회고발, 탐사보도 방송 프로그램이 순기능만 한 것은 아니다. 현장 폭로 중심의 고발은 초상권 침해, 인권 무시, 명예훼손 등의 문제가 있었다. <추적 60분>은 방영 초기부터 자극적, 폭력적 화면과 사생활 침해 문제로 비판을 받았다. 저널리즘 관점에서 사회고발, 탐사보도 방송 프로그램은 객관주의 보도 규범을 지키지 않는다는 지적을 받았다. 객관주의는 서구 저널리즘에서 1830년대부터 중요한 실천규범이 되면서 저널리즘의 기본적인 원칙으로 여겨졌다. 서구 언론의 객관주의 전통은 한국 언론에도 전해졌다. 방송기자는 객관주의 원칙에 기반해 주관의 개입을 최소화하고 균형성과 중립성에 기반한 사실 전달에 주력한다.

‘PD 저널리즘’이라 불린 사회고발, 탐사보도 프로그램은 진실을 추구한다는 목적 아래 비교적 폭넓은 주관성의 개입을 허용했다. 최대 60~70분이나 되는 프로그램 특성상 긴 호흡으로 사회문제를 다루니 기승전결식 구성을 한다. 이 과정에서 이야기 흐름을 만들기 위한 제작진의 의도가 지나치게 개입할 여지가 생긴다. 지난해 2월 MBC <PD수첩> 인터뷰 조작 사건이 단적인 예다. <PD수첩>은 지난해 2월 11일 “2020 집값에 대하여” 편에서 아파트를 소유한 20대 A 씨를 무주택자인 것처럼 등장시켜 논란이 됐다. MBC는 공식 사과와 함께 책임자를 징계했다. 2008년 4월 29일 방송된 MBC <PD수첩>의 “미국산 쇠고기, 과연 광우병에서 안전한가” 편에서도 광우병의 위험성을 부각하기 위해 일부 사실과 다른 내용이 방송에 포함돼 사과했다. 드러나지 않은 진실을 탐사하는 과정이라고 해서 세부적인 내용은 틀려도 된다고 양해를 받을 수는 없다.

그렇다고 객관주의가 완벽한 대안은 아니다. 객관성이라는 도구를 잘못 사용하면 오히려 진실을 가린다. 1960년대 초반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권위주의 정부 아래 있던 한국 언론은 자율성과 독립성을 침해당했다. 이 시기 언론에는 형식적 객관주의 보도 관행이 팽배했다. 방송 기자의 보도는 단순 사건, 사고를 전달하는 수준에 머물러 비판과 감시 기능을 잃었다. 기자 중심 언론 보도가 형식적 객관주의로 신뢰를 잃어가던 시기 사회고발 프로그램의 등장은 시민에게 대안적 언론이 나타난 것으로 여겨졌다.

▲ 진실 추구 과정에서 객관성과 주관성 사이 힘겨루기가 벌어진다. ‘기자 저널리즘’과 ‘PD 저널리즘’ 구분은 진실 추구 경쟁이 아니라 상대의 단점을 부각하는 직역 간 힘겨루기로 흐를 우려가 크다. ⓒ 이예진

‘기자냐 PD냐’에서 ‘저널리즘의 본령이냐 아니냐’로

저널리즘의 본령은 진실 추구다. ‘기자 저널리즘’과 ‘PD 저널리즘’의 구분은 기자의 객관성과 PD의 주관성이 진실 추구를 잘 수행하는지 성찰하는 일이었다. 객관성과 주관성이 가진 각각의 장단점을 비교하며 취재와 보도 윤리의 본질을 깊이 들여다보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용어 특성상 직역 간 소모적인 경쟁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서로의 단점을 부각하는데 치중하는 경향이 생겼다. 저널리즘 영역에서 기자와 PD 가운데 누가 우위에 있는지 따지는 논란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기자의 객관성과 PD의 주관성이 과대 평가되는 경우도 나타났다. 객관성은 형식적 객관주의로, 주관성은 사실을 왜곡하는 연출로 저널리즘의 본령을 벗어났다. 

‘기자냐 PD냐’, ‘객관성이냐 주관성이냐’는 저널리즘의 본질을 낡은 대립 구도에 가두는 구분이다. 객관성과 주관성은 더 이상 대립하지 않는다. 『저널리즘의 기본원칙』을 쓴 톰 로젠스틸 미국언론연구원 원장은 작년 <신문과 방송> 9월호에 실린 “언론은 어떻게 진실에 도달하는가”라는 글에서 객관성에 대한 재진단의 시대에 돌입했다고 말했다. 로젠스틸은 “객관성이 주관성을 완전히 배제하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그는 주관적 생각, 느낌, 경험 등 자신의 원래 시각에서 질문이 출발할 수밖에 없음을 인지하고 “이를 바탕으로 타인의 시각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면서 “자신의 시각을 확장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는 “중립적인 척 또는 원래 시각이 없는 척하는 대신” 정직하게 자신의 원래 시각을 취재원과 공유하고 취재를 시작하는 접근방식을 권했다. 로젠스틸은 사람은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는 인식을 기반으로 취재원 섭외, 인터뷰 방식 등 취재 방법에서의 투명성과 사실 검증의 전문성을 높이는 ‘방법론적 객관성’을 강조한다. 

『저널리즘의 기본원칙』 공동 저자인 빌 코바치는 “모든 세대는 각 세대만의 저널리즘을 창조한다”고 했다. 언론이 진실에 도달하는 데 있어 기자의 객관성과 PD의 주관성 가운데 어느 것이 더 유용한지 우열을 가리는 담론은 철이 지났다. 우리 세대 저널리즘은 ‘사람의 주관성, 편향성을 핑계로 확증 편향을 재생산하는 보도를 하지 않는 것’, ‘방법론적인 객관성을 지킨 것만으로 진실에 닿았다고 자만하지 않는 것’을 요구한다. 이제 ‘기자 저널리즘’과 ‘PD 저널리즘’의 구분은 역사 속에 묻어두고 새로운 고민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 


편집: 유희태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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