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비상구' 서평 공모전] 가작 수상작

이탈리아 베니스를 우린 ‘물의 도시’라 부른다. 건물 사이로 굽이진 물길을 상상하며 곤돌라를 탈 때의 낭만을 그리곤 했다. 지난해 겨울에 찾은 베니스의 물은, 그러나 너무도 탁했다. 얼마나 뿌연지, 마늘 넣고 끓인 미역국 같았다. 노를 저으며 세레나데를 부를 것 같던 선원은 곤돌라에 앉아 담배를 태웠고, 도시 곳곳에서는 인부들이 그해 여름 홍수에 쓸려온 이물질을 아직 청소하고 있었다.

문제 해결의 실마리는 불현듯 찾게 되는 경우가 많다. 코로나19가 확산하고 관광객이 줄자 베니스의 물길이 내가 기대했던 투명함을 찾았다고 한다. 물과 공기가 맑아져서 ‘환경이 정말 회복될 수 있겠구나’하는 가능성을 우리는 직접 확인했다. 이 책 <마지막 비상구>가 주장하는 기후위기 극복과 에너지 대전환은 그래서 더 설득력 있다. 우리들, 사람만 노력한다면 기후변화와 멸종위기, 탈원전의 재앙 모두 예방할 수 있다. 책이 기록한 원전사고의 위험, 신재생에너지 전환의 가능성을 받아들이고 ‘마지막 비상구’ 밖으로 고개를 내밀자. 그러면 앞으로 정말 마스크를 벗고도 이 신선한 공기와 물을 누릴 수 있다.

코로나19로 관광객 줄자 맑아진 물과 공기 

▲ 지난해 겨울 큰 기대 속에 찾아갔던 이탈리아 베니스의 물길은 마늘 넣고 끓인 미역국처럼 탁했다. 올 들어 코로나19 여파로 관광객이 끊기자 물이 맑아졌다는 소식은 자연의 회복력에 기대를 걸게 한다. ⓒ 김성진

책을 읽고 머릿속에 남은 한 단어는 ‘타성’이다. 에너지는 많이 생산해서 싼값에 쓰자는 게 지금 한국의 에너지 소비 철학이다. 한국의 전기요금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보다 싸다. 저렴한 가격은 책이 기록한 대로 에너지 과소비로 이어졌다. 영국에서 유학하다 들어온 일본인 친구의 말이 떠오른다. “영국은 전기요금이 너무 비싸. 난 한국처럼 밝은 동네는 오랜만이야.”

원자력과 화석연료 두 가지 발전이 실제 수반하는 비용이 얼마나 큰지 알면 왜 탈원전과 신재생에너지 전환이 ‘마지막’ 비상구인지 알 수 있다. 에너지는 소비할 때의 액면 가격 이상으로 외부 비용이 발생한다. 책의 기록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활성 단층이 가까이 있는데 사람이 밀집한 곳에 원전을 지었다. 원전사고가 터져 수많은 생명이 죽고 방사능이 끝없이 퍼져갈 리스크가 있다. 값싼 발전이 실제 수반하는 비용과 리스크를 알았다면 ‘어떤 방법으로든 좋으니 일단 전기는 싼값에 쓰자’는 무책임한 소비 근성이 이어질 수 있을까. 재생에너지 선진국인 덴마크, 독일은 주택용 전기요금이 한국의 2~3배에 달한다. 에너지의 수요를 자제했기 때문에 생산도 함께 낮출 수 있었다.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전기는 싼값에 쓰는 게 아니란 인식을 한국 사회가 받아들여야 한다.

기성언론이 외면한 의제, 제대로 다룬 대안언론 

이 책은 취재보도를 공부하는 대학원생들이 비영리 대안매체 <단비뉴스>에 보도한 기사들을 엮어냈다. 저자들은 방대한 주제의 탐사보도에 막 뛰어든 소위 ‘초짜 기자’다. 하지만 초심자일수록 더 때묻지 않았다고 했던가. 그들은 지역 주민들의 목소리를 담기 위해 기성언론이 가지 않은 현장을 다녔다. 반론을 함께 담기 위해 끝까지 취재원에 연락했고, 데이터를 제시해서 현실이 정말 어떤가를 독자들에게 보여줬다. 마샬 맥루한은 <미디어의 이해>에서 ‘미디어가 곧 메시지’라고 말했다. 그의 생각을 빌려오자면 비영리 대안매체로서 <단비뉴스>의 보도는 그 자체로 메시지다. 탈원전과 에너지전환은 그 중요도에 비해 우리 사회에서 의제의 중심에 서지 못했다. 기성언론이 제대로 다루지 못한 두 의제의 현실과 국민들 반응, 해외 사례를 대안언론이 철저히 기록으로 남겨뒀다. 한 푼의 광고비와 협찬도 없이 쓴 원전, 에너지전환 기사는 여기 이 책에 담겨 있다.

먼지 없는 하늘이 지난봄에 뉴스거리가 됐다. 사실 한국의 봄철은 미세먼지가 오히려 일상이었다. 전통적인 ‘삼한사온’을 이젠 삼일은 춥고 나머지 사일은 미세먼지가 심각하다는 ‘삼한사미’로 바꿔 부를 정도니 말이다. 이 책에 실린 첫 보도가 2017년 9월에 나갔으니 어언 3년이 지났다. 탈원전과 에너지전환이 기후위기에서 벗어날 ‘마지막’ 비상구라고 했다. 더 많은 사람이 책을 읽기까지 부디 지구가 이 비상구를 열어두길 바란다. 환경은 흔히 후세로부터 빌려 쓰는 거라고 말한다. 적어도 우리가 태어날 당시 지구는 원전사고를 두려워하고 봄마다 미세먼지 마스크를 써야 하는 상태는 아니었다. 마지막 비상구 밖으로 고개를 내밀자. 코로나19가 끝나면 우리 모두, 앞으로 올 세대와 함께 마스크 없이 맑은 공기를 마실 수 있도록.

(*원 제목: 비상구 열린 ‘마지막 시간’인데...언론은 뭘 하는가)


편집 : 김은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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