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비상구' 서평공모전] 가작 수상작

그들은 인류가 한 번도 보지 못했던 ‘빛의 기둥’을 보러 나온 지역 주민들이었다. 때마침 하늘에서는 달이 밝게 빛났고, 눈이나 꽃가루 같은 것이 날렸다. ‘빛의 기둥’을 보러 철교로 나온 주민들은 주변의 아름다운 풍광을 보며 자신들이 판타지 세계에 갑자기 떨어진 게 아닌가 생각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들이 응시했던 신비로운 ‘빛의 기둥’은 체르노빌 원전 폭발 후, 방사능에 공기가 이온화해 발광한 것이었다. 눈발이나 꽃가루처럼 흩날리던 먼지는 방사능 낙진이었다. 체르노빌 원전이 터진 날 밤, 제어되지 않은 원전의 민낯을 철교에서 응시한 사람들은 얼마가지 않아 모두 사망했다. 주민들이 폭발을 응시했던 철교는 현재 ‘죽음의 다리’로 불리고 있다.

원전 폭발을 구경한 주민들과 나는 다를까  

과연 나는 체르노빌 원전이 폭발한 날 밤, ‘빛의 기둥’을 본 주민들과 다르게 행동할 수 있었을까 상상해 본다. 원전 폭발을 막연히 위험하다고만 생각할 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는 나도 모른다. 만약 주변 이웃들이 폭발을 불구경하듯 본다면 나도 군중심리에 섞여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 함께 구경꾼이 될지도 모르겠다. 원전의 위험성에 관해 보도하는 기사를 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방사능의 수치를 나타내는 뢴트겐을 내가 어떻게 알고 위험의 정도를 인지할 수 있을까? 원전 격납건물에 공극이 생겼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는 또 어떻게 알겠나? 원전과 석탄발전의 환경적 해악 또한 마찬가지다. 환경‧기후문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일상에서 접할 기회가 없었던 온갖 수치와 그 의미를 알아야 한다. 기후와 에너지에 관한 보도를 꽤 접했는데도 심각성을 깨닫지 못한 것은 이 때문일 것이다.

▲ 신비로운 ‘빛의 기둥’은 체르노빌 원전 폭발 후 방사능에 공기가 이온화해 발광한 현상이었고, 눈발이나 꽃가루처럼 흩날리던 먼지는 방사능 낙진이었다. ⓒ HBO 영화 <체르노빌>

하지만 이 책 <마지막 비상구>가 기후와 에너지 문제에 접근해 이야기하는 방식은 조금 다르다. 이 책은 환경문제가 일상을 어떻게 불편하고 위험하게 만드는지 자세히 보여준다. 원전이 터지는 상황에 대비해 정부가 알아서 대비책을 세워두었을 것이라고 생각들 하지만, 실은 자기차량을 이용해 ‘능력껏’ 대피해야 한단다. 지진을 겪은 원전 인근 주민들은 모험 영화에 나오는 주인공처럼 ‘생존 배낭’을 따로 준비하는 습관을 갖게 됐다. 지진 이후 해당 지역에는 원전 사고 우려로 관광객이 끊겨 상권이 박살났단다. 이정도면 그나마 다행이다. 원전 인근 바다에서 물질하던 해녀 할머니들은 무더기로 암에 걸렸다. 석탄화력발전소도 마찬가지다. 지역 주민들은 발암 먼지에 눈과 몸이 따가움을 느끼고, 폐질환으로 죽은 사람도 있다고 한다. 

발전소 인근 주민만 불편한 것도 아니다. 석유·석탄 등 화석연료 남용으로 지구온도가 올라가면서 심해진 폭염과 혹한은 발전소와 멀리 떨어져 사는 나에게도 일상의 불편함을 안기고 있다. 드라마 <체르노빌>이 원전이 터진 순간에 주목해 위험성을 알렸다면, <마지막 비상구>는 나와 이웃들이 겪는 일상적 불편함과 위험들을 기후문제와 연결 지어 종합적이고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더 나아가 이런 위험을 유지 및 증폭시키는데 기여하고 있는 ‘핵 마피아’와 언론을 고발하고, ‘싼 전기’에 길들여진 시민들의 모습도 돌아보게 만든다. 

재앙을 직시하게 하고, 대안을 보여주는 책 

재앙에 관한 인지능력이 없으면, 막상 재앙과 마주하게 돼도 무엇을 해야 하는지 사람들은 모를 것이다. ‘삐~’하는 소리와 함께 날아오는 문자 메시지가 없다면, 119 사이렌 소리가 없다면, 뉴스에서 속보를 내보내지 않는다면, 원전이 터져도 ‘정부가 알아서 처리하겠지’라고 시민들은 생각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위험을 알리는 신호는 꼭 누군가가 내주는 게 아니라, 때론 우리 스스로가 인지하고 처리해야 할 수도 있다. 특히나 신호를 내야 하는 주체들이 자신들만의 이해관계에 묶여 있다면, 시민들은 기존 시스템에 관한 신뢰를 거두고 스스로 새로운 질서를 만들 고민을 해야 한다. 그게 민주주의다. 

다행히 <마지막 비상구>는 문제점만 제기하는 책이 아니다. 이 책의 3부에서는 기후변화 심각성의 수준과 함께, 독일‧스웨덴‧덴마크와 같은 국가들이 에너지와 환경 분야에서 이미 새로운 질서를 정착시켜 나가는 모습을 조명한다. 비록 우리와 자연적 환경이 다르고 정치적‧사회적 상황에도 차이가 있지만, 우리가 참고할 수 있는 청사진 정도는 되지 않을까 싶다.

체르노빌의 ‘빛의 기둥’을 본 후 극심한 고통을 느끼며 세상을 떠났을 시민들의 비극이 다른 형태로 반복되지 않으려면, 땜질식이 아닌 근본적 대안을 생각해야 할 때가 아닐까. ‘현재의 질서에서 안전이 보장되지 않으면, 새로운 질서가 필요하다’고, 아직 때 묻지 않은 이 책의 저자들(기자 지망생)이 이야기하는 듯하다.

(*원 제목: 마지막 비상구를 읽고)


편집: 김정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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