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비상구' 서평공모전] 가작 수상작

“가까이 다가가면 안 됩니다! 이제 그는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라 방사선 오염 덩어리입니다.” 사랑하는 남편에게 다가가려는 아내에게 의사가 외친다. 또 다른 부모는 눈을 제외한 온몸의 구멍이 막힌 채 태어난 딸을 두고 마음이 무너진다. 노벨문학상을 받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논픽션 <체르노빌의 목소리>에 나오는 원전 사고 희생자들의 모습이다.

체르노빌과 후쿠시마 원전 폭발 사고는 인간이 상상하지 못한 비극을 불러왔다. 그런데도 여전히 원자력 발전을 옹호하는 논리는 공고하다. 경제성과 효율성의 논리. 이 논리는 원전의 안전성에 관한 우려보다 훨씬 강력하다.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른다. 임박하지 않은 위협은 당장의 편의와 번영 앞에서 무력하기 마련이니까. 나 또한 원전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논리에 더 익숙했다. 하지만 <마지막 비상구>는 그 논리들이 과연 나의 논리인지, 나의 선택인지를 의심하게 했다.

경제성과 효율성의 논리를 의심하게 만든 책

<마지막 비상구>는 원전과 석탄화력발전 중심 에너지구조의 폐해를 지적하고, 그 원인을 분석하며,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을 촉구한다. 1부에서는 특히 원전을 대하는 인간의 안일한 태도가 집중 조명됐다. 사람들은 원전 폭발 사고의 원인을 사회주의 체제(체르노빌), 이례적인 자연재해(후쿠시마) 등 외부적 요인으로 돌리지만, 이들 사고에는 명백히 인간의 실수와 잘못이 개입되어 있다. 한국의 크고 작은 원전 사고도 마찬가지다. 작업자의 실수와 기계 고장이 빚어낸 고리1호기 완전 정전 사고, 사고의 은폐, 원전 부품 시험성적서 조작 사건 등은 원전의 ‘완벽한 관리’가 비현실적인 과제라는 것을 증명한다. 하지만 거듭된 사건 사고에도 원전 폭발 시 대응 방법에 관한 담론은 수상하리만큼 부재하다. 대비책의 부재는 원전 인근에서 일상을 영위하는 수십만, 수백만 주민들의 안전을 위협한다. 책을 읽다 보면 ‘원전은 안전하고, 그 안전을 위해 정부와 전문가들이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믿음이 뿌리째 흔들린다.

이어서 2부는 한국의 에너지구조가 문제점 많은 원전과 석탄에 의존하게 된 배경을 분석한다. 이 장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원전 우호적인 여론 조성을 위한 원자력 업계의 물밑 홍보 작업에 대한 것이다. 언론사들조차 원자력 업계의 협찬을 받고 기사를 내보냈다는 사실보다 더 충격적인 것은, 정치와 무관한 예능, 드라마, 퀴즈 프로그램까지 지원의 대상이 되었다는 것이다. 한 기관은 초∙중∙고등학교 교과서 제작에 개입한 것으로 나오는데, 이런 방식이 실제로 아주 효과적일 수 있음을 <체르노빌의 목소리>에서 한 원전 사고 희생자가 고백한 일이 있다. 그는 학교 교과서에서 읽은 원자력 발전 관련 내용이 머릿속에 안전한 전구 모습을 심어주었다고 말했다. 원전이 뭔지도 정확히 모를 어린 시절부터 일상 속에서 친원전 이미지에 노출된 우리의 의견은 과연 얼마나 객관적이고 독립적일 수 있을까?

▲ 2013년 5월 19일 SBS 예능 프로그램 <런닝맨> 방영분. 경북 경주시 양남면 월성원자력홍보관을 배경으로 촬영을 진행했다. Ⓒ SBS

앞서 짚어낸 문제점들에도 불구하고, 재생에너지로 전환하는 일이 손쉬우리란 생각은 하기 힘들다. 원전과 석탄화력발전은 전력난 해결에 있어 현존하는 가장 경제적이고 안정적인 해결책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마지막 장은 재생에너지의 필요성에서 실현 가능성으로 화두를 옮긴다.

유럽 중소도시 중심 대안의 한계엔 아쉬움

3부는 기후변화의 실상을 조명하는 한편, 에너지 전환에 앞장서고 있는 국가의 사례를 통해 재생에너지를 사회에 도입하는 창의적인 방법들을 소개한다. 그중 무릎을 치게 하는 대안들도 많지만, 대부분의 사례를 인구 밀도가 낮은 유럽 중소도시에서 가져왔다는 점이 아쉬움을 남긴다. 한국은 서울, 경기 등 수도권의 전력 수요를 감당하지 못해 농어촌과 해안지역의 발전소에서 전기를 끌어오는 구조다. 에너지 구조의 근본적인 전환을 위해서는 결국 도심의 환경에 적용 가능한 방안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하지만 책에 언급된 친환경 모범도시들은 인구 130명의 독일 농촌마을 펠트하임, 수도에서 3시간 떨어진 덴마크 삼쇠섬, 숲에 둘러싸인 스웨덴 벡셰 등 대부분 한국의 도시와는 사뭇 다른 경관을 자랑한다. 전력 수요가 상대적으로 적고 가용 부지와 자연자원은 많은 이들 지역의 사례를 건물과 사람이 빼곡한 한국 대도시에 적용하기에는 한계가 있어 보인다. 좀 더 도시 생활 밀착형 사례들이 제공되었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책에 <영원한 봉인>이라는 다큐멘터리가 등장한다. 그 속에서, 핀란드 인근 섬에 거대한 핵폐기물 무덤 설립을 추진하던 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대고 논의한다. 먼 훗날 이곳을 우연히 발견할 미래 인류에게 접근하지 말라는 경고를 어떻게 전달해야 할까? 국제 공용어로? 공포심을 자아내는 그림으로? 몇만 년 뒤, 누군가가 정말 그곳을 발견한다면 생명과 자연을 파괴하는 물질을 유물로 남긴 이들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할까? <마지막 비상구>는 그 미래에 도달하기 전에 우리 사회를 돌아볼 때라고 말한다. 원전은 안전하다는 믿음 배후에 감춰진 것들과 우리를 둘러싼 정보의 불균형을 직시하고, 더 푸른 미래를 만들기 위해 상상력을 발휘할 때라고 말이다.

(*원 제목: 눈먼 믿음과 정보의 불균형을 뛰어넘어)


편집 : 윤재영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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