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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을 기록하는 ‘짐 자무시’처럼
[청년기자의 시선2] 기자/피디가 간다 ➂ 오늘, 현실의 기록
2020년 10월 28일 (수) 18:03:54 양수호 기자 protects55@naver.com

짐 자무시와 패터슨 

짐 자무시 영화는 마니아층이 두껍다. 그는 예술가들이 사랑하는 영화감독이다. 문학 작품을 보는 듯한 시놉시스와 아름다운 영상미 덕분이다. 미국 인디 영화계에서는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상업영화에서 볼 수 없는 독특한 세계관을 추구하고, 무엇보다 영화 속 대사가 시 같다. 2016년 개봉한 영화 <패터슨>은 그가 창작자로서 경지에 올랐음을 증명한다. 시공간을 초월하는 난해한 구성에서 벗어나, 미국 소도시에서 누구나 겪는 일상 풍경들을 그만의 클리셰로 그려냈다.

   
▲ 영화 <패터슨> 속 패터슨이 버스에서 시를 쓰는 장면이다. 아내, 애완견과 함께 살며, 일상 틈틈이 시를 쓴다. ⓒ 그린나래미디어

영화 <패터슨>의 시작과 끝은 시 한 편을 첫 문장에서 시작해 마지막 문장까지 읽어가는 과정이다. 주인공 패터슨은 미국 뉴저지주 소도시 패터슨에서 버스 기사로 일한다. 아내, 애완견과 함께 살며, 틈틈이 시를 쓴다. 버스 시동을 걸기 전 한 줄, 점심을 먹으며 한 줄, 일과가 모두 끝난 후 노트에 한 줄, 이렇게 쌓인 문장이 한 편의 시가 된다. 버스 기사로 사는 건 고단하지만, 그는 시를 쓰며 삶의 리듬을 찾아간다. 

영화 중간중간 그가 읊조리는 습작품과 소소한 사건들은 보는 이에게 느림의 미학을 선사한다. 속절없이 흐르는 시간과 풍경은 시를 구상하고 쓰는 행위로 지연된다. 화려한 볼거리를 제공하는 블록버스터나 SF영화와는 다른 매력이 있다. 그의 영화는 거창한 메시지를 주기보다는 우리의 삶에 맞닿아 있다. 누구나 겪는 일상의 모습을 영화에 담아냈다. 일상 속에서 떠오르는 시 구절을 적고, 읊조리는 장면에서 우리는 잠시 생각할 여유를 가질 수 있다. 

지루할 수도 있는 내러티브 구성이지만, 여백의 미가 있다. 극이 바쁘게 지나다가도 패터슨이 정적 속에서 시를 받아적거나, 읊는 행동이 여유를 준다. 대사와 사건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그의 영화는 눈과 뇌가 피곤하지 않다. 짐 자무시의 영화는 침묵과 대사가 절반씩을 차지한다. 대사 없는 장면이 더 많은 영화도 있다. 영화가 끝나면 기분 좋은 휴식을 취한 느낌이 든다.  

   
▲ 패터슨이 공상에 잠긴 장면. 생각한다고 해서 항상 시상이 떠오르는 건 아니다. ⓒ 그린나래미디어

짐 자무시의 <패터슨>은 기자가 누구인지, 누구여야 하는지 깨우쳐준다. 패터슨은 일상의 모든 행위가 시로 연결된다. 기자 역시 항상 눈과 귀가 깨어 있어야 한다. 패터슨은 삶의 장면장면을 생각하고 기록한다. 기자는 사소하게 지나가는 현상들을 포착해 문제 인식으로 연결할 줄 알아야 한다. 타인의 말 한마디와 행동 하나에도 예민해야 하고, 생각이 많아야 한다. 생각을 말로 흩뿌리는 것이 아닌, 기록하고 글로 표현할 줄 알아야 한다. 기자는 언제 어디서나 사건과 아이디어를 기록할 준비가 돼 있는 사람, 아무런 힌트를 주지 않은 채 나아가는 시간을 붙잡을 수 있는 사람, 그런 시간에 끊임없이 물음표를 던지는 사람, 시류에 편승하지 않고, 나만의 세계를 지키는 사람이다. 

<패터슨>은 현실을 기록하는 방법을 알려준다. 운전할 때도, 산책할 때도 시를 생각한다. 패터슨의 시 쓰기는 일상이다. 패터슨은 오늘의 삶을 시로 쓰지만 기자는 오늘의 현실을 기사로 기록한다. 고된 삶이지만 시를 쓰고 기록하며 느림과 여백의 미학을 찾아간다. 무거운 현실을 다루는 기자에게 삶의 리듬과 느림의 미학, 여백의 미는 어울리지 않는 말처럼 느껴진다. 짐 자무시와 패터슨은 내게 주도적인 삶의 방식을 가르쳐준다. 기자에게 느림과 여백이란 대상을 만나고 해석하기 위한 생각의 공간이다. 관찰하고 발견하고 성찰하는 공간이다. 생각의 공간은 내가 일상에 끌려가지 않고 내 삶을 주도할 때 가능하다. 

패터슨은 시인이다. 나는 기자를 꿈꾸는 사람이다. 언뜻 달라보이는 삶이지만, 남들과 다른 발상과 시간 감각으로 살아가는 점에서 비슷하다. <패터슨>을 보며, 앞으로 살아갈 모습을 그리는 이유다. 세상이 이끄는 방향대로 움직이기보다 기사로 세상을 움직이고 싶다. 기록은 용기와 의지가 필요하다. 거대한 권력에 맞서 일상의 진실을 지키는 기자가 되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나약한 정신과 몸을 읽고 쓰는 일로 단련시킬 것이다. ‘기레기’와 ‘기더기’로 전락할 수 있는 어떤 유혹이 와도 흔들리지 않는 강한 기자가 되려 한다.  

다시 등장한 차벽이 일깨운 트라우마

지난 개천절과 한글날 광화문에 차벽이 세워졌다. 광화문 차벽을 보면서, 지난 시위 현장들이 떠올랐다. 2012년 광화문에서 열린 등록금 시위에 참여했다. 시위가 격렬해지자 차벽이 세워지고, 살수차와 기동경찰이 동원됐다. 많은 이가 연행됐다. 친구와 나는 도망쳐 멀리 떨어진 곳에서 시위 현장을 지켜봤다. 함께 하지 못해 죄책감이 들었지만, 나는 공권력의 폭력성에 위압당한 상태였다. 

   
▲ 개천절과 한글날에 광화문에 차벽이 세워졌다. 방역당국이 전염병 확산을 막기 위해 내린 조처였지만, 그간 한국 사회가 경험한 차벽을 떠올리게 했다. ⓒ 연합뉴스

내게 차벽은 공포, 두려움, 그리고 일방적인 소통 단절을 뜻했다. 2000년대 초 아버지의 직장이 외국계 자본으로 넘어가자 고용승계권을 두고 노동자들이 파업을 했다. 경찰버스 행렬이 유치원 셔틀버스에 타기 위해 어머니 손을 잡고 아파트 정문으로 향하던 나를 가로막았다. 사원아파트로 전투경찰이 들이닥쳤다. 개미 한 마리 빠져나가지 못하게 차벽으로 아파트를 에워싸고, 곤봉과 방패로 무장하고 달려오던 전투경찰은 공포 그 자체였다. 옆집 아저씨가 전투경찰에게 두들겨 맞았고, 공장 사람들은 바닥에 쓰러져 절규했다. 사람들로 뒤엉킨 상태에서 어머니 손을 놓친 나는 바닥에 주저앉아 울었다. 구세주처럼 나타난 아버지가 나를 안고 공장 담벼락을 넘어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다. 기억은 희미해졌지만, 그때 받은 충격과 공포는 여전히 생생하다. 

   
▲ IMF 이후 외국 자본이 한국 기업을 헐값에 사들이며 많은 노사분규가 벌어졌다. 1998년 만도기계에 경찰이 투입되자 노동자들은 힘껏 싸웠지만 피해는 주로 노동자에게 귀착됐다. ⓒ KBS

공개되지 않은 차벽 뒤는 달의 뒷면과도 같다. 노조파괴 전문 용역업체를 앞세운 기업과 공권력이 밀어붙이면 노동자들은 속수무책이었지만, 언론마저 기업 편을 들고 노동자들의 폭력성을 부각했다. 언론에 보도조차 되지 않은 해고노동자들은 차벽 안에서 외로운 싸움을 했다. 캡사이신과 소화기의 포말을 맞으며 생존을 해 싸웠지만, 노동자들은 번번이 자본 앞에서 무릎 꿇어야 했다. 

여백의 미, 느림의 미학으로 삶을 기록하기

지금까지 언론이 차벽을 어떻게 기록했는지 돌아보자. 언론을 보면 세상이 보이지 않았다. 노동자들 아픔을 외면했다. 내가 본 현장은 기사와 달랐다. 노동자는 떼쓰는 아이 모습으로 그려졌다. 노동자의 삶과 그들의 눈물, 고통과 좌절은 그려지지 않았다. 최저임금을 받으며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한 가장들의 발버둥도, 사고로 노동자가 다치거나 사망해 파괴된 가정도 제대로 전하지 않았다. 언론을 보면 노동자의 삶과 현실이 쉽게 보이지 않는다. 

내가 기자가 되려는 건 노동자들을 기만하는 보도 때문이다. 언론에 드러나지 않는 노동자들의 삶을 기록하기 위해서다. 짐 자무시는 노동자의 일상을 담담하게 담아낸다. 주인공 패터슨은 늘 자신을 돌아보고 시로 기록한다. 돈과 권력이 바라보는 노동과 노동자가 아니다. 인간이 살아가는 근본가치인 노동, 관계로서 맺어지는 따뜻한 노동자의 삶을 그려낸다. 기자로서 나는 노동자와 가족이 살아가는 삶을 들여다 보겠다. 이들의 작고, 소박한 얘기를 깊게 듣고 전하겠다. 

<패터슨>은 저마다의 삶에 운율과 틈이 있다는 걸 보여준다. 노동자와 파업, 자본이라는 의제는 노동자의 삶에 가까이 다가갈 때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자극적이고 속도만 살아있는 기사보다 <패터슨>의 주인공 패터슨처럼 느리지만, 나만의 따뜻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세상의 마음을 기록하겠다. 노동자와 사회적 약자들이 봉착하는 문제는 무엇인지, 그들이 어떤 점에서 고립되고 힘들어할지 공감하고, 상상할 것이다. 패터슨이 시를 쓰는 것처럼, 수첩에 적어내는 많은 영감 속에서 발생하는 균열을 기사로 쓸 것이다.

   
▲ <패터슨>의 명장면은 그가 읊조리는 시가 화면에 나타날 때다. 모든 글을 쓸 때는 소리내어 읽는 과정이 중요하다. 시와 기사는 소리로 표현하는 순간에 어색함 없이 퇴고할 수 있다. 소리내서 읽어야 하는 건 읽는 이와 듣는 이를 위해서다. ⓒ 그린나래미디어

읽고, 쓰는 건 여전히 힘들다. 시 쓰기가 일상이 된 패터슨처럼 기자의 일상은 세상을 살피는 일이다. 촉수를 곤두세워야 한다. 내가 무심코 지나는 순간에 누군가는 고통받는다. 사소한 순간에도 생각의 영역을 확장하고, 생생하게 기록해내야 한다. 내가 서 있는 곳에, 달려가는 곳에는 늘 노동자가 있을 것이다. 세상이 주목하지 않는 약자들을 찾아내 비추는 기자. 날카로운 펜 끝으로 권력을 조준하고. 따뜻하고 깊이 있는 기사를 쓰기 위해 느림과 여백의 미학을 아는 기자가 되겠다. 나는 현실의 패터슨이다.


[청년기자들의 시선] 시즌2를 시작한다. 시즌1이 하나의 현상과 주제에 관한 다양한 시선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시즌2는 현상들의 관계에 주목해 현상의 본질을 더 천착하고, 충돌하는 현상 사이의 대립과 갈등을 넘어 새로운 비전을 모색한다. 이번 주제는 ‘기자/피디가 간다’이다. 언론은 세상을 비추는 거울이다. 언론이 오늘의 세상과 우리 삶을 제대로 기록해 사회적 어젠다를 제기해야 하지만, 진영과 이익 논리에 빠져 ‘기레기’에서 ‘기더기’까지 전락했다. 언론이 바로 서지 못하면 세상을 바꿀 수 없다. 참 기자/피디를 열망하는 언론학도가 세상에 외친다, 이 땅의 건강한 저널리즘을. (편집자)

  편집: 이나경 기자

[양수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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