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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0.24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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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할 용기
[청년기자의 시선2] 자리 ④ ‘지역언론’
2020년 10월 17일 (토) 19:41:51 임지윤 기자 dlawldbs20@naver.com

나는 어떤 기자가 되려 하는가

세상에는 수많은 이야기가 펼쳐진다. 다 담아낼 수 없다. 내가 서 있는 자리에 따라 전하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서른 즈음에야 제대로 내 ‘자리’에 관한 고민을 시작했다. 기자란 누구인가? 나의 기자 자리는 어디인가? 온라인에서는 기자가 기자와 쓰레기의 조합어인 ‘기레기’를 넘어 구더기의 조합어인 ‘기더기’로 비하되고 있다. 영국 옥스퍼드대 부설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 발표에 따르면 한국은 조사대상 40개국 중 언론 신뢰도 21%로 올해 역시 최하위를 기록했다.

시민과 언론의 거리는 점점 멀어지고, 검증되지 않은 ‘카더라 뉴스’가 횡행한다. 서울 중심의 언론 환경 속에 지역 언론은 심각한 경영난을 겪으며 기자가 광고 영업을 위해 뛰어다니는 사례까지 발생한다. 나는 어떤 기자가 되어야 하나? ‘내가 아무리 노력해서 진실을 발굴하고 사회에 전하더라도 사람들이 믿을까’, ‘다른 전문 직종을 가지고 유튜브 방송을 하는 게 더 낫지 않을까’ 하는 미래에 관한 불안과 고독이 다가온다. 코로나19가 1년 가까이 화두다. 수많은 사람이 병들고 아파하고 죽는다. 나는 어느 자리에서, 어떤 이야기를 전하는 기자가 되어야 할까?

   
▲ 15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 입구에서 열린 종합편성채널 채널A 협박성 취재 및 검찰-언론 유착 의혹 사건 관련 추가 고발 기자회견에서 김서중 민주언론시민연합 상임공동대표(왼쪽 두 번째)가 발언하고 있다. ⓒ 연합뉴스

대학원에서 함께 공부하던 김서윤 <중부저널> 대표가 조심스레 물었다. “졸업 후에도 제천에서 계속 공부할 거면 제천 기사 안 써볼래?” 나는 여전히 미래의 내 자리를 고민하던 중, 어머니 나이 김 대표는 충청북도 SNS 서포터스와 제천시청 SNS 시민기자로 활동하다가 몇 달 전 인터넷 언론사를 만들었다. “제천에도 진짜 기자가 필요해”로 시작돼 제천시 조경사업 비리, 권언유착, 의림지 환경 생태계 파괴 등 확인되지 않았지만 관심 가는 제천의 가려진 이야기들이 빛을 봤다.

누구나 성공을 꿈꾼다

‘성공’이란 꿈에 부풀어 29년을 살았다. 처음엔 ‘봉준호 같은 영화감독이 되어야겠다’며 영화제작에 뛰어들었다. 표현하고 싶은 영상은 역량 있는 사람이 필요했고, 그와 함께하려면 돈이 있어야 했다. 10억을 투자해 주겠다는 허무맹랑한 소리에, 부모님, 교수님, 친구 모두를 걷어내고 나니 욕심만 남았다. 영화를 사랑한다고 생각했다. 오만이고 착각이었다. 결국 실패했다. 투자는 사기였고, 주변에서 빌린 돈과 마음의 빚을 갚아 나가야 했다. 하던 일을 쉬며 도와주던 촬영감독 형도, 휴학까지 결정하며 시나리오를 고민하던 학교 후배도 남이 됐다. 3년간 방황했다. 나는 왜 영화감독이 되려고 했을까? 영화를 통해 사회에 던지고 싶었던 메시지는 뭘까? 실패가 나를 돌아보게 했다. 가치관이 서지 않은 상태에서 개인의 막연한 욕심은 꿈과 열정으로 포장돼 주변을 황폐하게 만든다는 것을 알게 됐다.

‘기자’가 되기로 했다.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에 진학했다. 방황을 끝내고 싶어서, 언론인은 돈에 눈이 멀 것 같지는 않아서. 무엇보다 인정받고 싶었다. 직접 현장을 뛰어다니고, 다양한 사람과 자료를 통해 단순한 사건 이면의 이야기를 들여다봄으로써 봉준호보다 더 감각이 뛰어나고 살아 있는 현실을 담아내자 다짐했다. 한 명 두 명 먼저 언론사에 취업하는 동료를 쳐다보지 않았다. 나는 슈퍼 히어로니까, 굳세게 버티면 다시 기회가 올 것이라 생각했다. 기회는 오지 않았다. 지나간 시간은 또 다른 도피처였을 뿐이다. 코로나19로 어지러운 사회 속에서 다시 방황했다. 스타 기자라는 미래를 꿈꾸는 순간은 화려한 장면만 꿈꾸었고 가난할 용기가 없었다.

이제야 찾은 내 ‘자리’

오래 고민하다가 답했다. “제천에서 괜찮은 기자가 되고 싶습니다.” 인구 13만이 사는 제천을 기자생활 첫 출발지로 삼을 결심을 했다. 노동의 대가를 최소한만 받으며 남기로 했다.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지역에 꼭 필요한 기자가 되기로 했다. 언론인이 되려고 하는 이들 모두가 서울의 주요 언론사만 들어가기 바란다면 지방정부의 권력 감시와 지역 안의 공론장 형성은 싹조차 틔울 수 없다. 누군가는 제천에서도 소외된 이들의 목소리를 전달하고 지역 언론이 지방정부와 호형호제하는 ‘권언유착’을 끊어야 한다.

내가 있어야 할 자리는 모두가 원하는 높은 곳이 아니라 남들이 가지 않는 가장 낮은 곳이다. 그곳에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이 재벌 중심 경제 구조와 50대 고학력자 남성 중심 정치 구조, 기득권 옹호 수단으로 사용되는 법체계 안에서 억울해도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제천도 인구가 계속 감소해 소멸 위기를 겪는 지역으로서 언론을 통해 보도되지 않은 청년 일자리, 학령인구 감소, 저출산 등의 사회 문제가 많다. 보이지 않는 미래 속 두려움을 걷어냈다. 실패해도 괜찮다는 용기를 가졌다. 화려한 서울도 아닌, 고향 대구도 아닌, 내 짧은 인생, 가장 고독한 공간인 ‘제천’과 그렇게 손잡았다.

   
▲ 독일은 350여 개 일간지 가운데 95% 이상이 지역일간지다. ‘지역뉴스’가 많고 ‘보는 이’가 있다는 것이다. ⓒ gettyimagesbank

지역 언론은 중앙언론의 하위 구조가 아니다. 수평적 네트워크 속에서 교류해야 할 동등한 주체다. 전국적 이슈를 다루는 중앙언론의 역할이 있다면, 지역 안에서 살아 숨 쉬는 이야기들을 돌게 만드는 지역언론의 역할도 중요하다. 중앙언론이 모든 사고 기능을 담당하는 뇌라면 지역언론은 뇌가 잘 작동할 수 있도록 숨을 불어넣는 신경 세포다. 손, 발, 허리 등 몸 전체에 분포한 신경세포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하면 뇌가 아무리 몸을 움직이려 해도 움직일 수 없다. 지역언론은 중앙언론이 제 기능을 할 수 있도록 각 지역에서 일어나는 사건, 사고부터 지역민의 생각, 생활, 행동 등을 잘 전달해야 한다. 중앙 권력이 지역과 함께 유기적으로 작동할 수 있도록 지방정부에 냉정한 비판도 해야 한다. 지역민을 남으로 여기지 않고 있는 그대로 존중하며 그들의 다양한 생각을 공론장에 끌어와야 한다.

지역 언론의 ‘자리’

제천에는 13만 인구가 살지만 지역민의 사소한 이야기까지 밀착해 전달하는 매체가 없다. 주간 신문으로서는 <제천신문>이 거의 유일하다. 단양·청주·충주를 포함해 충북지역을 아우르는 매체는 <충청투데이> <굿모닝충청> 등 여러 개 있지만 대부분 출입처나 공공기관 보도자료를 받아쓰는 데 그친다. 공공기관에서 막대한 광고·행사 홍보비를 받기 때문에 비판 기능도 약하다. 내가 속한 <중부저널>도 지금은 이와 크게 다르지 않지만, 앞으로는 광고가 아닌 지역민의 후원으로 성장하고 지역에 소외된 이웃의 이야기를 전달하며 지방정부를 제대로 감시하는 신경세포로 바뀔 것이다.

제천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옥천의 <옥천신문>이 본보기가 되어준다. 인구 5만 정도인 옥천에서 1989년 9월 30일 주민들이 직접 회사의 주인이 되는 군민주 언론사로 창간돼 30년이 지난 지금도 수익의 절반 이상을 구독료로 채운다. 80% 가까이 광고에 의존하는 다른 지역 언론과는 차별화한 모델로 갈 수 있었던 이유는 옆집 미장원 누나의 결혼 소식부터 ‘기본소득’에 관한 옥천 청년들 생각까지, 지역민 이야기를 더 가까이 다가가 전달하며, 환경, 노동, 성 등 다양한 사회 문제를 깊이 있게 다루는 데 있다. 물론 지역민의 구독료 덕분에 권력 눈치도 보지 않고 제대로 비판 기능을 수행한다.

오죽하면 친구와 싸우다가 말리는 사람이 ‘너희 그러다가 <옥천신문>에 나올라’라고 하면 싸움이 멈춘다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내 고향 대구∙경북에서는 진보민중언론을 지향하며 4명밖에 안 되는 취재 기자가 8년째 80% 이상을 지역민의 후원으로 경영을 이어가는 지역 언론 <뉴스민>도 있다. <뉴스민>은 2018년에 6.13 전국 동시 지방선거를 앞두고 특별취재팀을 꾸려 <6·13지방선거 경북민심번역기>를 기획 취재해 민주언론시민연합의 '2018년 5월 이달의 좋은 온라인 보도'로 선정됐다. 지금은 다양한 디지털 실험과 끈질긴 탐사보도로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지역 안에서 저널리즘 기능을 잘 수행하는 언론사들은 나에게 지역 언론의 비전과 기자로서 자아 효능감을 한껏 높여준다.

   
▲ <옥천신문>은 구독자만 콘텐츠를 볼 수 있는 유료 사이트 <옥천신문>과 무료 사이트 <옥천닷컴>으로 나뉜다. 지방정부를 감시·견제하는 기능과 지역민의 생동감 넘치는 이야기를 전해 ‘풀뿌리 민주주의’를 실천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 <옥천닷컴> 홈페이지

가난할 용기, 배고플 다짐, 미움받을 각오

지역 언론은 가난하다. 자본도, 인적 기반도, 대중의 관심도 중앙언론보다 못하다. 월급을 덜 받고 더 많이 뛰며 뜨거운 가슴을 잃지 않겠다는 용기가 없다면 시민 곁에 설 수 없다. 지역이 가진 특유의 색깔이나 문제를 발견하려면 가난할 용기가 필요하다. 내가 제천에서 할 수 있는 일을 다짐한다. 지역 내 권력형 비리나 정책 검증, 어떤 사건에 관한 단순한 전달을 넘어 깊이 있게 들어가는 탐사보도가 필요하다. 시공간을 넘어 지역 이야기를 전할 수 있는 디지털 혁신을 통해 지역민과 밀접하게 소통해야 한다. ‘제천시민기자단’ 등 지역 커뮤니티를 만들어 끊임없이 지역민과 소통할 것이다.

‘기후 위기’가 제천에는 어떻게 다가오고 있는지, ‘기본소득’에 관해 제천시민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지역 안에서 ‘삼권 분립’은 잘 지켜지고 있는지 등 보편적 문제를 지역 이슈로 끌어와 하나씩 검증할 것이다. 기성 언론이 고민하는 디지털 저널리즘 구현도 중요하다. 기자가 개인적으로 자기 기사를 지역민에게 소개하는 뉴스레터나 텍스트를 넘어, 영상을 통해 기승전결이 갖춰진 한 편의 이야기를 전하는 비주얼 스토리텔링 등 다양한 실험을 하겠다. 광고에 의존하지 않도록 ‘유료 구독’ 또는 ‘유료 후원’ 모델도 정착시키려고 한다. 모든 일은 지역을 자기 자리로 확신하고, 활동하는 지역기자가 지금보다 많아져야 가능하다.

   
▲ 제천은 13만 지역민이 거주하고 한방바이오박람회나 국제음악영화제 등 국제 문화행사도 많이 열린다. ‘제천팔경’이 있을 정도로 자연경관도 아름답다. 삼한 시대 만들었다는 의림지와 주변 제림(堤林)은 역사적 가치도 높다. 제천의 역사와 사람들의 삶을 소개하고 지방 정부를 감시할 지역언론이 필요한 이유다. ⓒ 제천시

가난할 용기가 필요했다. 배고플 다짐도, 미움받을 각오도 필요했다. 평생을 가난하게 살았지만, 마음은 한없이 부자였던 사람들이 있다. 이오덕, 권정생, 김수환... 그들을 우리는 그리워한다. 나는 그들만큼 용기는 없다. 머리는 그들을 따르지만 손과 발은 나를 위해 오늘도 산다. 기자는 소외된 이들의 곁에 서고 자본과 권력의 반대편에 서 있어야 한다고 말하지만 자신은 없다. 돈과 권력의 힘을 봐왔기 때문이다. 가난할 용기가 필요하다고 다짐하지만 불안하다. 내가 쓰는 기사가 지역 안에서 사회적 효용 가치가 없다고 느껴질 때, 돈, 명예, 사람 등 막연한 세속적 욕망에 빠질까 봐 미리 머리 속에 새겨 넣는다. 이곳이 내가 서 있어야 할 자리임을. 그리고 다짐한다, 내가 선택한 사막 같은 이 길이 가난한 용기로 살았던 이들의 손끝에라도 스칠 수 있기를.


[청년기자들의 시선] 시즌2를 시작한다. 시즌1이 하나의 현상과 주제에 관한 다양한 시선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시즌2는 현상들의 관계에 주목해 현상의 본질을 더 천착하고, 충돌하는 현상 사이의 대립과 갈등을 넘어 새로운 비전을 모색한다. 이번 주제는 ‘자리’이다. 누구나 자기 자리가 있다. 자리는 정체성이자 책임이고 세상과의 연결고리다. 나는, 당신은, 우리는 지금 어느 자리에, 어떤 모습으로 서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묻는다. (편집자)

이 기사는 충북 지역 언론 <중부저널>(http://www.jbjn.kr/news/view.php?no=1710)에도 실립니다. <단비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합니다.

 편집 : 신지인 기자

[임지윤 기자]
단비뉴스 기획탐사팀, 미디어콘텐츠부, TV뉴스부, 시사현안팀 임지윤입니다.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세상이란 들판을 뛰어다니는 야생마가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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