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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북’ 딱지가 그를 두 번 죽였다
[단비발언대]
2020년 10월 15일 (목) 22:43:10 이나경 기자 greennforest21@gmail.com
   
▲ 이나경 기자

부정하고 싶은 대상이 있을 때, 그에게 가하는 결정적 타격 중 하나는 부정적인 프레임(틀)을 씌우는 것이다. 우리 현대사에서는 '종북‘ ‘친북’ 프레임이 자주 활용돼왔다. 남한 사회에서는 누구라도 '빨갱이'라는 딱지가 붙는 순간, 일종의 사회적 사망 선고를 받는다. 지난달 사망한 해양수산부 소속 공무원 이 모 씨의 경우도 그에 해당한다. 그는 북한군에게 총살당했지만, 그에게 사회적 사망 선고를 내린 것은 ‘월북’ 딱지를 붙인 우리 정부다. 정부는 “이 씨가 월북하던 중에 총을 맞아 사망한 것으로 추정한다”고 발표했지만 이를 뒷받침하는 설명은 제대로 하질 못했다. 정부가 유족과 국민들에게 ‘월북’임을 뒷받침하는 설명을 좀 더 상세하게 하지 않는 한 우리 공무원에게 섣부르게 ‘월북’ 딱지를 붙였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이 씨 피살 사건과 관련한 군의 발표 내용에는 석연찮은 점들이 많다. 군과 정부는 그가 계획적으로 월북했을 가능성을 강조하고 있다. 사망한 공무원의 신상정보를 북한이 파악하고 있고, 해당 공무원이 월북 의사를 북한에 밝힌 정황이 있으며, 단순 표류했을 경우 인위적 노력 없이 북한의 등산곶 인근 해상까지 가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또 도박 빚 등 억대의 채무로 생긴 심리적 압박감이 월북 동기라고 추정하고 있다. 하지만 계획된 월북과 우연에 의한 월북은 그 성격이 전혀 다르다. 이번 사건은 후자로 보는 것이 조금 더 가능성이 있는 추론이다.

21일 실종이 확인된 이 씨는 만 하루가 지난 22일 실종지점에서 직선거리로 38km 떨어진 북한 바다에서 발견됐다. 군은 당시 이 씨가 구명조끼를 입은 채 한 명 정도 겨우 탈 수 있는 부유물에 올라 '기진맥진한 상태'로 발견된 것으로 파악했다고 발표했다. 군의 말대로라면 이 씨는 조류를 거슬러 바다에서 38km를 헤엄을 쳤어야 했다. 군은 이 씨가 북에 월북 의사를 밝힌 정황이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당시 북한 측과 이 씨가 어떤 대화를 주고받았고, 구체적으로 어떤 상황이었는지는 밝히지 못하고 있다. 약 30시간 넘게 바다에서 표류하다 북한 해군 소속 단속정과 만난 남한의 민간인이 과연 남한으로 보내 달라고 적극적으로 주장하기가 쉬울까? 무장한 북한군이 눈앞에 있다면 당장 살려달라고 말했을 개연성이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그 과정에서 이 씨가 한 말 중에는 '월북 의사'로 받아들일 표현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한 표현에 대해 아무런 고려 없이 쉽사리 ‘월북 의사’라고 지적하는 것은 예단일 수 있다.

   
▲ 공무원 이씨의 경우처럼, 우리 사회에서 한 인간의 사회적 관계를 종결하는 '월북' 딱지는 국가가 내린 사망선고와 다름없다. ⓒ Flickr

더 큰 문제는 북한 선박이 바다에서 실종자를 발견했다는 정보를 파악한 군이 그가 사살될 때까지 약 6시간 동안 아무런 조처를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이 씨는 그 시간에 부유물에 의지한 채 북한 측의 반응만 기다리다 총살을 당했다. 군 관계자는 사건 발생 해역이 북한 영해여서 우리 군이 즉각 대응할 수 없었고, 비무장 상태인 민간인을 북한이 바로 사살하고 불태울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고 말한다. “그럴 줄 몰랐다”는 군의 변명은 차마 듣기조차 민망할 정도로 유치하다. 남북한 분단의 위기가 첨예하게 맞닿은 경계선, 그곳에서는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다. 실제로 남북 해군은 그동안, 이 해역에서 여러 차례 충돌하며 전투를 치르기도 했다. 지칠 대로 지친 이 씨가 부유물에 겨우 의존한 채로 북한 해군의 심문을 받고 있음을 파악하고도 경고든, 현장 출동이든 아무런 행동에 나서지 않은 것은 ‘국민의 생명 보호’라는 존재 이유를 망각한 것이나 다름없다. 우리 측의 첩보 자산이 밝혀지는 게 우려돼 나서지 않았다는 해명도 받아들이기 어려운 말이다. 우리 군이 좀 더 적극적이고 빠르게 대응했다면 이번 사건은 막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대치하고 있는 남북 간에는 사소한 오해에서 출발한 비극적 사건도 종종 발생한다. 1976년 미루나무 사건과 2008년 금강산 관광객 피살 사건 등이다. 서해에서 일어난 이번 사건에도 이러한 우발성이 작용했을 수 있다. 만에 하나, 그런 여지가 있었다 하더라도 우리 정부에 대해서는 사후 대응과 관련해서도 비판을 거두기 어려운 점이 남는다. 바로 이 씨에 대해 섣불리 '월북' 단정을 내리고 그 근거를 상세하게 설명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더욱이 북한 김정은 위원장이 ‘미안하다’는 사과 한마디를 밝힌 이후 우리 정부는 남북한 공동조사 등 이 사건에 대한 사실확인 과정을 포기한 채, 이 씨가 월북하려 했다는 섣부른 결론을 내리고 있다. 결국 정부는 ‘빨갱이 공무원’이라는 낙인으로 자국민을 두 번 죽이고, 하루아침에 가족을 잃은 유가족에게도 같은 낙인을 찍는 ‘희생’을 대가로 이 사건을 마무리하려는 것이 아닌가. 


편집 : 신현우 PD

[이나경 기자]
단비뉴스 디지털뉴스부장, 청년부, 환경부 이나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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