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인터뷰] 세계 무대 누비는 작곡가 겸 지휘자 최재혁

“관객이 한 명도 없어도 음악가들은 자신의 음악을 연주합니다. 음악으로 돈을 벌지만, 관객이 없다고 연주를 안 하지는 않아요. 빚을 져서라도 음악을 하고, 관객들은 그런 저희의 열정과 예술 그 자체를 즐기러 옵니다.”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국내외 대다수 공연장이 문을 닫으면서 무대를 잃었지만, 음악가들은 어떻게든 관객을 만나려 애쓴다. 독일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등 많은 클래식 악단이 온라인 화상공연을 했고,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단원 등 국내외 연주자들이 거리공연에 나섰다. 지난 2017년 제네바 국제음악콩쿠르 작곡부문에서 역대 최연소,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1위를 차지한 작곡가 겸 지휘자 최재혁(25·크레디아뮤직앤아티스트)도 그 중 하나다. 코로나로 국내에 발이 묶여있던 그를 지난 5월 23일 경기도 과천의 한 카페에서 만나고, 지난달 22일 독일 베를린에 있는 그와 전화로 추가 인터뷰했다.  

무관중 화상공연, 거리공연 등으로 ‘관객 찾아가기’ 

▲ 지난 1월 30일 서울 금호아트홀에서 열린 앙상블블랭크 연주회에서 지휘하는 최재혁 씨. 제네바 국제음악콩쿠르 등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세계 음악계의 주목을 받았다. © 최재혁 홈페이지

지난 2월 국내 코로나 상황이 나빠지면서 공공다중시설 이용 중단 조처가 내려졌고, 8월에 2차 확산이 일어나면서 수도권의 이용 중단 조처가 더 강력해졌다. 클래식음악 등 공연업계는 꽁꽁 얼어붙었다. 최 작곡가는 “모든 공연이 취소, 연기되거나 무관중 공연 등으로 대체됐다”고 설명했다. 무관중 공연은 영상으로 녹화해 웹사이트에 올리는 방식 등 다양하게 이뤄졌다. 그는 “그나마 한국은 스크린 공연, 소규모 공연, 길거리 공연이 이뤄지지만 독일의 경우 길게는 2021년까지 모든 클래식 공연을 취소하라고 발표한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9월 현재도 한국에서 대면 공연은 취소되고 있고, 재개하기까지 조심스러울 것이라는 소식을 들었어요. 대신 온라인 공연들은 활발히 진행되고 있고, SNS(사회관계망서비스)를 통해 접할 수 있는 공연들이 많아졌습니다.”

그는 지난 7월 27일 서울 대학로 하우스콘서트 줄라이페스티벌과 8월 6일 대전국제음악제 예술의전당 앙상블홀 공연에 지휘자로 섰다. 소수의 관객만 현장에 자리하고, 온라인으로 생중계되는 공연이었다. 그는 “처음에는 비어있는 좌석을 무대에서 보는 것이 어색하고 집중이 안됐다”면서도 “음악가들과 고요한 분위기에서 함께 음악을 만들 수 있었던 점이 좋았다”고 말했다. 이어 “관객들은 온라인을 통해 연주를 즐길 수 있어 좋고, 음악가들에겐 연주의 모든 순간이 영상자료로 남는 게 의미있다”고 덧붙였다.

▲ 지난 7, 8월 최재혁 작곡가가 지휘를 맡았던 대전국제음악제(좌), 하우스콘서트 줄라이페스티벌. © 대전예술의전당, CREDIA

제네바 국제콩쿠르 작곡부문 1위, 현대음악 도전 

중학교 때부터 작곡에 재능을 보였던 그는 고등학교 1학년 때 유학길에 올라 미국, 독일 등 세계를 돌며 음악공부를 했다. 미국 줄리어드음대 작곡과를 졸업한 후 2017년 제네바 국제음악콩쿠르 1위에 이어 2018년 루체른페스티벌 지휘 데뷔 등 인상적인 행보를 이어갔다. 현재 독일 바렌보임 사이드 아카데미에서 요르그 비트만 작곡가에게 사사하고 있으며, 한국과 독일을 오가면서 앙상블블랭크 지휘 등 연주활동을 하고 있다. 

▲ 최재혁 작곡가가 지휘자 겸 음악감독을 맡고 있는 실내악단 앙상블블랭크. 현대음악을 주로 연주한다. 중앙에 선 사람이 최재혁 지휘자. © 앙상블블랭크 홈페이지

최 작곡가는 코로나 상황에서도 국내 클래식 관중의 열의가 대단하다고 평했다. 그는 “해외의 경우 클래식 공연 관객의 연령대가 높아지고 있는데 한국은 30대 관객이 주를 이뤄 시장 전망이 있는 편”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영국 예술위원회(Arts Council England)가 2017년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클래식 공연 티켓 구매자 가운데 31세 미만은 7%에 불과했고, 41~60세가 42%, 61세 이상이 37%를 차지했다. 반면 국내에서는 인터파크티켓을 기준으로 지난 7월 기준 판매점유율이 가장 높았던 클래식공연 ‘조성진 피아노 리사이틀-천안’의 경우 20대가 30.6%, 30대가 38.3%, 40대 이상이 24.7%를 차지했다. 성별로 보면 남자 15.4%, 여자 84.6%로 여성의 비중이 높았다.  

최 작곡가는 “클래식 공연기획에 있어 젊은 여성들을 타겟으로 남성 연주자들을 마케팅에 활용하고 그들의 공연을 여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고 분석했다. 그는 “현재 한국 클래식 공연의 주 소비층이 젊고, 음악가들도 젊고 유망한 사람들이 많이 나와 전망이 밝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젊은 관객 많아 한국 클래식 희망적

최 작곡가는 그러나 음악가를 키우는 한국의 교육은 아쉬운 부분이 있다고 표현했다. 그는 “한국 음악고등학교의 가장 큰 문제는 등수를 매긴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예술에 관한 평가는 감상하는 사람의 주관인데, 이를 객관적인 점수로 표시하고 등수를 정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특히 음대 입시의 경우 서구의 선발 방식과 차이가 있다고 전했다. 한국은 실기 시험을 치를 때 음악적 기술을 중요하게 여긴다. 반면 서구의 음악대학들은 대부분 연주를 시켜보고 곡을 해석하는 방식, 연주자 개개인의 감정과 느낌을 본다고 한다. 그는 “지원자 중 마음에 드는 연주가 없을 경우 1명도 합격하지 못하기도 하고, 마음에 드는 연주가 많을 경우 여러 사람이 합격하는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다.

▲ 최재혁 작곡가가 지난 5월 경기도 과천의 한 카페에서 단비뉴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 방재혁

최 작곡가는 한국의 공연장 지원에도 아쉬움을 보였다. 그는 “우리나라 문화 관련 공공기관들은 이제까지 젊은 음악가들을 위한 기회를 많이 제공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어 “해외에선 공공기관들이 제공하는 여러 기회를 통해 젊은 음악가들이 큰 무대를 경험하는데, 우리나라는 이미 해외에서 성과를 올리고 유명해진 음악가들을 위주로 섭외해 공연한다”며 “이런 상황에서 젊은 음악가들이 큰 무대에 서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음악가들은 멋진 음악을 위해 노력하고, 마케팅과 공연장 조성 등은 공공기관에서 지원해주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이 아닌, 말 그대로 예술이 될 수 있으려면 양측의 노력이 모두 필요합니다. 클래식 음악은 딱딱하고 지루하다는 편견들이 있는데, 열정을 갖고 실력 있는 무대를 선보여야 관객들이 즐길 수 있다고 생각해요. 앞으로도 함께 즐길 수 있는 음악을 할 수 있도록, 궁극적으로는 제 작품을 필요로 하고 제 지휘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도록, 항상 고민하겠습니다.”


편집 : 방재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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