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인터뷰]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김동현 변호사

“노동자가 일하다가 아프거나 다치면 산업재해라는 걸 스스로 입증해야 해요. 산재로 인정받기까지 겪어야 하는 어려움이 많아지는 한 원인이에요. 근본적으로는 산재 입증 체계와 노동에 관한 인식을 바꾸어야 합니다.”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의 기업과인권팀 김동현(40) 변호사는 울산 현대중공업 조선소 하청노동자 사망사고 산재 소송을 설명하며 이렇게 말했다. 그를 포함한 변호인단은 해당 사고가 자살이 아니라 ‘업무상 재해’라는 2심 재판부 판결을 지난해 8월 이끌어냈다. 이 재판은 적극적인 문제 제기를 통해 산업재해의 진상을 밝힌 의미 있는 사례로 꼽힌다. 지난 7월 10일 서울시 은평구 서울혁신파크에 있는 희망법 사무실에서 김 변호사를 만나고 12일 이메일로 추가 인터뷰했다. 

‘자살’ 처리될 뻔한 사고, 2심 재판에서 ‘업무상 재해’ 인정

▲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 만드는 법’ 의 김동현 변호사. 그를 포함한 변호인단은 현대중공업 하청노동자 사망사고가 자살이 아니라 ‘업무상 재해’라는 2심 판결을 이끌어냈다. ⓒ 이정헌

현대중공업에서 ‘물량팀’으로 일하던 하청노동자 정범식(당시 45세) 씨는 지난 2014년 4월 조선소 작업장에서 철 표면을 연마하는 호스에 목이 감겨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과 근로복지공단은 목격자가 없는 그의 죽음을 자살로 판단했다. 그러나 유족과 동료들은 사고사라고 주장하며 진상규명을 요구했다. 하청노동자 등을 대상으로 한 ‘위험의 외주화’에 문제를 제기해오던 각계 전문가들이 이 사건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약 5년 동안 소송을 진행했다.

희망법, 금속노조 울산법률원, 서강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리걸클리닉 센터가 법률 대리인단을 구성했다. 노동조합, 시민사회단체, 의학전문가들이 힘을 보탰다. 김 변호사가 속한 변호인단은 부검 결과와 작업장을 재현한 3차원(3D)그래픽, 마네킹을 이용한 재현 실험 등을 근거로 재판부를 설득했다. 정 씨는 작업 중 튄 쇳가루가 눈에 들어간 채로 사다리를 내려가다 발을 헛디뎌 목에 호스가 감겨서 사고사를 당했다는 것이 변호인단의 주장이었다. 심리학 전문가는 심리 부검 결과 자살 동기가 확인되지 않는다는 점 등을 들어 사고사 견해를 뒷받침했다. 

▲ 변호인단은 정범식 씨가 사고사를 당했음을 증명하기 위해 사고 현장을 재현했다. 임시 비계를 세운 뒤 실제 현장에서 사용하는 호스와 마네킹을 구해 실험하는 모습. ©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홈페이지

국가와 기업이 산재 입증책임 분담해야

김 변호사는 “이 사건이 산재 입증책임을 전환하는 하나의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지금은 직장 생활 중에 사고나 질병이 발생하면 노동자가 산업재해, 즉 업무로 인한 재해임을 입증해야 하는데, 이를 근로복지공단 등 정부기관과 기업이 입증하는 것으로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다. 

“작업장에서 사고 등 재해가 발생하면 일단 산업재해라고 추정해야 산재 입증책임 때문에 고통받는 노동자를 보호할 수 있어요. 물론 업무와 관련 없는 사례가 충분히 있을 수 있죠. 이럴 땐 기업과 근로복지공단 등 정부기관이 산재가 아니라고 증명하게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지금처럼 노동자에게 산재를 입증하라고 하면 어느 누가 몇 년씩 걸리는 산재 소송까지 치를 각오를 하겠어요?”

김 변호사는 노동자들이 스스로 산재를 입증하려고 나설 때, 회사 혹은 정부기관이 갖고 있는 자료를 받아내기도 어렵고 해석하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그를 포함한 변호인단도 관련 자료를 얻는 과정에서 애를 먹었다. 특히 사고가 난 현장이 이미 훼손돼 있었고, 당시 현장 사진도 충분하지 않았다. 변호인단이 기대할 수 있는 건 두 차례 이루어진 경찰 수사자료였지만, 울산지방경찰청이 2차 수사자료 정보공개를 거부해 소송까지 해서 받아내야 했다. 그러느라 소송 기간이 길어졌다. 

▲ 김동현 변호사가 “산재 입증책임을 기업과 국가가 분담하게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 이정헌

‘위험의 외주화’로 노동자 피해 커지고 원청 기업은 면책  

김 변호사는 비정규직, 하청노동자, 특수고용노동자, 특수고용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개인사업자들은 산업재해로 더 큰 고통을 겪는다고 지적했다. ‘위험의 외주화’로 취약노동자들이 집중적으로 사고에 노출되지만, 다단계 하청 피라미드 밑단에 있는 노동자와 최상단에 있는 기업은 직접 고용 관계가 없기 때문에 원청 대기업은 책임을 지지 않는다.  

김 변호사는 산업재해가 반복해서 일어나고, 은폐되는 근본적 원인은 ‘노동경시 문화’라고 비판했다. 노동자를 존중하지 않는 문화는 법과 제도에 스며들어 ‘위험의 외주화’를 만들고, 이 현상들이 유지되면서 노동경시 문화가 더 만연한다는 것이다. 

“사람이 일하다 다친 걸 심각한 문제로 보지 않아요. 누가 다쳤다고 하면 사람을 바꿔 써서 빨리 일을 하면 되니까요. 일하다가 누군가 다쳤다는 뉴스가 나오면 잠깐 주목했다가 지나가기를 반복하잖아요. 긴밀하게 연결된 노동경시 문화와 제도의 고리를 끊어내고 산업안전 관련 규칙을 강화해야 우리 사회가 더 나아지겠죠.”

김 변호사는 대안으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들었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사업장에서 노동자가 사망하는 등 중대한 사고가 났을 때 안전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은 기업의 최고경영자 등 사업주를 처벌하고, 기업에 징벌적 벌금을 물리는 내용을 담고 있다. 김 변호사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의 목적은 처벌과 거액 벌금 자체가 아니라, 기업에게 ‘안전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 큰 위험을 치를 수 있다’는 인식을 갖게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산업재해가 기업 경영에 큰 위험요소가 되면, 기업은 산업재해를 예방하기 위한 규범을 강화하게 될 것이란 설명이다. 현재 국회에는 지난 6월 11일 정의당 강은미 의원이 발의한 ‘중대재해에 대한 기업 및 책임자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제정안’이 계류돼 있다.  

▲ <단비뉴스> 인터뷰에서 노동을 경시하는 문화와 산업재해가 빈발하는 현실을 바꾸기 위해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도입해야 한다고 말하는 김동현 변호사. ⓒ 이정헌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도입하면 다단계 도급 구조에서 심각한 재해가 발생했을 때 피라미드 최상단에 있는 원청 기업이 책임을 지게 된다. 김 변호사는 “제조 대기업 공장에서 5차 정도까지 내려가는 하청의 파견 노동자가 안전관리 부실로 일하다 몸이 크게 상하는 사고가 일어난다”며 “도급 구조 최상단에 있는 대기업에 책임을 물리는 것이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의 목표”라고 말했다. 

기업이 침해한 ‘노동자 인권’ 지켜주는 변호사 군단 

업무상 재해를 입은 노동자 중엔 해고가 두려워 산업재해를 주장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기업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엄두는 더더욱 내지 못한다. 김 변호사가 속한 희망법의 기업과인권팀은 지난 2012년 2월부터 이런 노동자들을 위해 활동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내부고발을 이유로 불이익을 당한 노동자를 대리해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했다. 메탄올 중독 피해 노동자를 대리해 사용자 및 국가 대상 손해배상청구 소송도 제기했다. 에스케이(SK)건설이 시공하고 한국 서부발전이 수력발전소를 운영한 라오스 세피안-세남농댐 붕괴 사고 피해자를 지원하는 한국시민사회 특별팀(TF)의 일원으로도 참여했다. 2015년에는 제주 강정마을 특수공무집행방해치상 혐의를 쓴 주민을 변론해 무죄 판결을 끌어냈다.

희망법은 정부 지원이나 기업 후원을 받지 않고 회원 후원 등으로 운영하는 비영리 공익인권변호사 단체다. 현재 상근자 11명이 ‘기업과 인권’ ‘성적지향·성별정체성 인권’ ‘장애 인권’ ‘집회의 자유’팀을 꾸려 일하고 있다. 

김 변호사는 지난 2009년 제51회 사법시험에 합격해 2010년 사법연수원에 들어갔다. 그는 사법연수원 내 인권법학회 활동과 난민 인권센터 실무수습을 하며 공익인권변호사가 될 길을 모색했고, 2012년 희망법 창립 일원으로 참여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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