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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살면서도 혼자였던 이유
[상상사전] ‘함께하기’
2020년 09월 26일 (토) 21:50:53 양수호 기자 protects55@naver.com
   
▲ 양수호 기자

‘아버지와 둘이 살았다
잠잘 때 조금만 움직이면
아버지 살이 닿았다
나는 벽에 붙어 잤다

아버지가 출근하니 물으시면
늘 오늘도 늦을 거라고 말했다 나는
골목을 쏘다니는 내내
뒤를 돌아봤다

아버지는 가양동 현장에서 일하셨다
오함마로 벽을 부수는 일 따위를 하셨다
세상에는 벽이 많았고
아버지는 쉴 틈이 없었다’

아버지의 기름때 절은 작업복을 물로 헹구며, 최지인의 시 ‘비정규’가 떠올랐다. 퇴근 시각이 불규칙한 아버지는 당신을 기다리는 걸 싫어했다. 아버지는 아무도 기다려주지 않는 것처럼 살았다. 나는 기다릴 사람이 없는 것처럼 아버지를 기다릴 뿐이었다. 시인의 삶도 나와 같을까? ‘비정규’에는 우리 모두의 삶과 벽이 있다.

코로나19 장기화로 항공업계가 절규하고 있다. 하늘길이 얼어붙어 노동자들이 대량해고되고 있다. 지난 7일, 이스타항공은 직원 605명에게 정리해고를 통보했다. 노조에 따르면 추가 해고 통보가 진행될 것이라고 한다. 지난달에는 아시아나항공 항공기의 기내식 운송과 탑재 업무를 하던 2차 하청업체 노동자 196명이 해고통지서를 받았다. 서울지방노동위원회로부터 부당해고 및 복직 판정을 받은 아시아나KO 노동자 8명은 여전히 외로운 싸움을 하고 있다. 제 한 몸 지키기도 벅찬 삶이었지만, 지금은 동료들과 함께 있다.

   
▲ 항공업계의 실직 사태는 심화할 전망이다. ⓒ pixabay

이들은 소속 부서뿐 아니라 항공기 조종, 청소, 기내식 운반 등 하는 일도 달랐다. 하지만 노동자라는 공통분모가 있다. 이름 모를 이가 탈 비행기로 하루하루 먹고 살았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구분 없이 해고 앞에서 지난 삶을 부정당하고 있다. 노동자들을 가로막던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벽이 부서졌다. 대신 자본이라는 큰 벽이 세워졌다. 저마다 일터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살아왔을지라도 해고라는 삶의 경계 앞에서는 모두가 동등해졌다.

한국의 노동시장은 양극화해 있다. 사용자 편에서 노동자를 바라보는 시각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사회 구성원 대다수가 노동자이지만, 노동자에게 부정적인 사회다. 오늘도 마스크를 쓴 노동자들이 거리로, 관공서로 생존을 위해 목소리를 높이지만,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는 이가 많다. 항공업계의 실직 사태는 더욱 심해질 전망이다. 항공업계뿐 아니라 한국 사회 전체에 드리운 그림자다.

실직은 전염병처럼 예측 불가능한 것이다. 우리의 삶도 장기적으로는 모두가 ‘비정규’라서 벽에 갇혀 살아가는 게 아닐까? 함께 살면서도 혼자였던 이유를 알 것 같다.


보들레르가 '모든 능력들의 여왕'이라고 말한 상상력이 학문 수련 과정에서 감퇴하는 건 안타까운 일입니다. 저널리즘은 아카데미즘과 예술 사이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생각을 옥죄는 논리의 틀이나 주장의 강박감도 벗어 던지고 마음대로 글을 쓸 수 있는 상상 공간이 바로 이곳입니다. 튜토리얼(Tutorial) 과정에서 제시어를 하나씩 정리하다 보면 여러분만의 '상상 사전'이 점점 두터워질 겁니다. (이봉수)

 편집 : 유희태 PD

[양수호 기자]
단비뉴스 기획탐사팀, 시사현안팀 양수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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