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사전] 재난지원금

▲ 이강원

망망대해에서 조각배 하나에 몸을 실은 신세가 이런 걸까? 붕 뜬 기분으로 반년을 보냈다, 코로나 시대의 취준생으로 공채가 말라버린 상황에서 어디 여행조차 갈 수 없었으니까.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에 나오는 청새치와 씨름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때 ‘띠링’ 스마트폰 소리가 났다. ‘재난지원금.’

40만원이 들어왔다는 소식에 오랜만에 고기 안주로 술 한잔하기로 했다. 고기도 값싼 앞다리살이 아니라 200g에 만원 하는 갈매기살로 골랐다. 나와 친구들은 자취방에서 부어라 마셔라 했다. 모두들 얼굴이 때깔 좋은 선홍 빛으로 물들었다. 그때 친구의 입이 쭉 나오며 툴툴거렸다. 자기는 아버지가 회사 이사라 강제 기부했다는 것이다. 내 친구는 아버지 때문에 전국민이 받는 돈을 못 받았던 것이다. 예외없이 그 친구도 술값을 냈다.

어느 날 마트에서 재난지원금으로 결제를 하려 했다. 어차피 카드로 하던 터라 이제 재난지원금의 존재감이 희미해지고 있었다. 내 앞에 있는 중앙아시아인은 현금으로 계산했다. 나는 그를 보며 교육봉사 때 고려인 아이들 여름캠프를 떠올렸다. 그때 한 아이가 아팠다. 인솔 교수에 따르면 고려인은 한국인이 아니라 의료보험 혜택을 받지 못한다고 했다. 재난지원금도 예외가 아니었다.

▲ 지난 4월 13일 서울시청앞에서 이주민 지원금 강화 메시지가 적힌 피켓을 들고 1인 시위를 하고 있는 우다야 라이 서울경인 이주노동조합 위원장. 서울시는 6월 30일 시의회 본회의에서 외국인 재난긴급생활비 예산 330억 원을 포함한 3차 추가경정예산안을 통과시켰다. ⓒ KBS

고려인들은 한국 사회에서 이방인이다. 혼혈이 대부분이라 생김새도 쓰는 말도 다르다. 아이들은 한국 아이들에게 놀림감이 되기 일쑤다. 코로나로 마을 목사님이 만든 교육기관마저 문닫았다고 한다. 교육기관이 닫히면 아이들은 교육받을 곳이 없다. 대부분 고려인들은 가난하기 때문에 원격 교육 장비를 마련하기도 어렵다. 정부가 재난지원금을 마련할 때 어려운 국민의 삶을 강조했다. 정작 가장 어려움을 겪는 이들은 국민이 아니기에 외면받았다.

재난지원금을 쓰며 사람이 먼저라는 슬로건을 떠올렸다. 재난지원금은 사람이 먼저인 사회를 어느 정도 이뤄낸 결과물이라 생각했다. 평범한 취준생인 나조차 받았기 때문이다. 그건 착각이었다. 나는 사람이면서 한국인이기에 먼저였던 것이다. 고려인과 나 사이에는 국민과 비국민이라는 이름의 장벽이 있었다. 장벽 밖에서 재난에 노출된 이들의 아픔을 외면하며 ‘사람이 먼저인 나라’라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보들레르가 ‘모든 능력들의 여왕'이라고 말한 상상력이 학문 수련 과정에서 감퇴하는 건 안타까운 일입니다. 저널리즘은 아카데미즘과 예술 사이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생각을 옥죄는 논리의 틀이나 주장의 강박감도 벗어 던지고 마음대로 글을 쓸 수 있는 상상 공간이 바로 이곳입니다. 튜토리얼(Tutorial) 과정에서 제시어를 하나씩 정리하다 보면 여러분만의 ‘상상 사전’이 점점 두터워질 겁니다. (이봉수)

* 이 칼럼은 세명대 저널리즘스쿨의 ‘21기 예비언론인 캠프’에 참여한 이강원 씨가 과제로 보내온 글을 첨삭한 것입니다. 그는 전남대 사학과에 재학중입니다. 글이 채택된 학생에게는 이봉수 교수의 미디어비평집 <중립에 기어를 넣고는 달릴 수 없다>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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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 조한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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