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사전] ‘몸냄새’

▲ 조한주 기자

나도 모르게 고개를 돌렸다. 지하철 끝자리에 앉아있다가 피부가 까무잡잡한 외국인 여성이 타자 내가 저지른 짓이다. 코를 찌르는 알 수 없는 체취를 못 참아서 그랬다. 내 왼쪽에 선 그 여성이 나를 보고 서툰 한국어로 사과했다. “재성합니다.” 냉방칸으로 옮기고 싶을 만큼 얼굴이 달아올랐다.

중국에 교환학생으로 갔을 때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기숙사에 짐을 풀고, 생활용품을 사러 마트 근처에 갔을 때였다. 코를 찌르는 냄새에 나도 모르게 짜증을 냈다. “아, 이 하수구 냄새는 대체 뭐야?” 알고 보니 취두부 냄새였다. 그냥 음식 냄새였는데 그 냄새를 모르니 짜증을 낸 거였다.

냄새에는 문화가 담길 때가 있다. 외국에 도착하면 공항에서부터 그 나라 특유의 냄새를 맡으며 외국에 왔다는 걸 실감한다. 사람의 정체성을 나타내기도 한다. 영화 ‘기생충’에서 잘나가는 IT 기업의 박사장이 운전 기사로 일하는 기택의 정체를 의심하게 된 계기는 반지하방 냄새였다. 그 사람이 평소 어디에 있는지, 어떤 생활을 하는지, 주로 뭘 먹는지, 자기도 모르는 사이 냄새가 밴다. 곰팡이 가득한 반지하에서 사는 사람들은 특유의 눅눅한 냄새가 몸에 배고, 수산시장에서 생선을 손질하는 상인의 몸에는 생선 냄새가 난다.

냄새가 죄는 아니다. 그러나 문화가 아닌 ‘정체성’을 담을 때는 대부분 배척의 계기가 된다. 자기도 모르게 피부에 스며든 냄새 때문에 차별을 당한 사례는 많다. 한국인만 해도 “마늘 냄새 난다”거나 “김치 냄새 난다”는 외국인 말에 가슴 아파하지 않는가?

▲ 우리 사회에 좀 더 다양한 문화가 있어서 편견 없이 친구가 될 수 있는 사회가 만들어지길 바란다. ⓒ Unsplash

나는 지하철에서 만난 외국인 여성의 몸에서 풍기는 냄새를 나중에 이태원 거리에서도 맡았다. 한국에서만 살고 이태원을 가보지 못한다면 평생 이름을 들어보지도 못할 만큼 생소한 향신료 냄새였다. 취두부처럼, 누군가에게는 먹을 것이 내게는 너무나 생소해 고개를 돌리게 하는 냄새였던 것이다. 사과를 할 정도로 잘못한 것도 아니고, 그냥 ‘다른’ 문화 때문에 밴 냄새일 뿐인데 그게 그 여성에게는 사과할 일이었다. 한편으로 얼마나 부정적인 말과 태도를 접했으면 그렇게 기민한 눈치를 갖게 되고 반사적으로 사과를 하게 됐는지 안쓰럽다.

바람이 있다면 우리 사회에, 거리에 더 다양한 냄새가 있었으면 좋겠다. 매일 똑같은 냄새, 하나의 문화만 있는 게 아니라 더 다양한 문화가 우리 거리에 섞이면 좋겠다. 내가 다시는 익숙하지 못한 냄새에 고개를 돌리지 않도록.


보들레르가 '모든 능력들의 여왕'이라고 말한 상상력이 학문 수련 과정에서 감퇴하는 건 안타까운 일입니다. 저널리즘은 아카데미즘과 예술 사이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생각을 옥죄는 논리의 틀이나 주장의 강박감도 벗어 던지고 마음대로 글을 쓸 수 있는 상상 공간이 바로 이곳입니다. 튜토리얼(Tutorial) 과정에서 제시어를 하나씩 정리하다 보면 여러분만의 '상상 사전'이 점점 두터워질 겁니다. (이봉수)

편집 : 김태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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