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회 '세명 저널리즘비평상' 공모전] 가작 수상작

<심사평>

‘조국 사태’를 계기로 사회적으로 큰 주목을 받았던 ‘공정’이라는 가치는 실질적으로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일까? 언론은 이 가치를 어떤 사람들의 눈과 목소리로 바라보고 전해왔을까?

제1회 《세명 저널리즘비평상 공모전》에 출품된 비평들 가운데는 ‘조국 사태’를 직접 다룬 것은 물론 여기서 파생된 사회적 논란이나 현상을 다룬 응모작들도 많았다. 가작으로 선정된 강일구 씨의 비평은 ‘조국 사태’ 와중에 제기된 ‘공정’의 문제를 청년 100명의 목소리로 살펴본 한겨레 기획 보도를 다뤘다. 사회적 공론장에서 소외된, 이른바 ‘인서울, 스카이’에 속하지 않는 청년들의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담은 언론의 노력에 주목한 글이다.

이 글로 이번 제1회 《세명 저널리즘비평상 공모전》 수상작들에 대한 연재를 마친다. 이번 《공모전》을 개최하면서 밝힌 것처럼 소비자들의 언론에 대한 평가가 감정과 인상에 치우친 ‘인상 비평’을 넘어서야 언론의 질도 높아진다. 이런 취지에 공감해 이번 공모전에 참여해주신 분들은 물론 다섯 편의 수상작들을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린다. 다음에 열릴 제2회 《공모전》에도 많은 참여를 기대한다.

원제: <주제 그리고 내용 모두에서 ‘창조적 파괴’를 하다>

비평 대상: 한겨레 2019. 12. 2. ~ 12. 12. <한국의 청년이 100명이라면> 기획 보도


정치적으로 ‘창조적 파괴’가 일어난 순간이었다. 광장은 조국 수호와 퇴진을 따라 갈라졌고, 공화주의가 증발된 의회에서는 정당간 총력전이 펼쳐졌다. 진영을 중심으로 분열된 사회는, 민주주의가 독재 외의 방법으로도 ‘파괴’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파괴적이었던 권력 게임은 모순적인 현상을 떠오르게 만들었다. 그 현상은 진영 갈등보다 조용하지만 민주주의를 구조적으로 훼손하는 것이다. ‘20대 80의 사회’, ‘세습 중산층’, ‘상인 우파와 브라만 좌파’ 같은 말로 불리는, 새로운 불평등이 조국 사태를 거치며 공론화됐다. 진영 갈등이란 파괴적 에너지가 불평등 문제에 불을 붙인 것이다. 불평등의 수혜를 입은 자라면 보수‧진보 할 것 없이 누구도 좋아하지 않았을 의제가, 창조적 방법으로 공론화됐다.

정치권의 의도치 않은 ‘창조적 파괴’ 이후, 언론의 시간은 찾아왔다. 권력이 그린 ‘파괴’의 궤적을 따라가는가? 아니면 새로운 불평등이란 ‘창조’의 궤적을 따라가는가? 조국 사태를 보도하는 언론 앞에 놓인 선택지였다. 다수 언론은 검찰과 정치권에서 나오는 의혹을 받아쓰며 ‘파괴’의 궤적을 따랐다. 불평등을 의제로 받아 보도한 곳은 드물었다. 물론, 다루기 쉬운 의제도 아니었다. 갈라진 여론의 광장에서 주목받을 수 있는가? 양극화 피해자인 장삼이사에게 생산적인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가? 2019년 12월 2일 ~ 12일까지 보도된 한겨레의 <한국의 청년이 100명이라면>은 이런 고민들을 안고 기획되지 않았을까?

한국 청년이 100명이라면

한겨레는 우리사회에서 20보다 80에 속할, G세대보다는 N포세대에 속할 청년들의 삶에 깊숙이 들어갔다. 조국 사태 당시 ‘박탈감의 박탈감’을 느꼈다는 청년들이다. 이들의 일상에는, 존중보다 무시가, 연결보다 고립이, 기회보다 차별이 더 가깝게 자리 잡고 있었다. 한수정은, 대학 졸업장 없는 청년들이 일터에서 겪는 차별을 전했다, 조지훈은, 지방이란 고립된 환경에서 공부하는 학생이 마주한 장벽을 전했다. 황희주는, 불황에 빠진 도시에서 불안정한 노동을 하는 삶을 전했다. 새로운 불평등이 정착된 사회에서, 계층 이동이 “사회경제적 배경보다, 노력이란 평범한 생활 방식에 좌우된다”는 통념이 얼마나 기만적인지, 이들의 일상을 통해 기사는 전한다.

계층 이동이 노력을 통해 원활했던 시기가, 한국 전쟁 이후 일시적으로 형성된 적은 있었다. 하지만 현재 우리 사회에서 계층은 조귀동이 <세습 중산층 사회>를 통해 이야기한 것처럼, 어떤 인적자본을 얼마나 축적했는지에 따라 갈린다. 경제자본은 이를 뒷받침할 뿐이다. 안정된 계급에 속한 사람들은 이를 유지하기 위해 명문대 입학과 스펙을 놓고 경쟁을 벌이며, 다층의 유리바닥을 형성한다. 불평등은 세밀하고 고도화됐다.

이 같은 상황 해결을 위한 기준이 되어야 할 ‘공정’이라는 가치는 편향돼 작동하고 있다. “한국의 청년은 ‘인서울 4년제 대학생’을 말한다. 주류는 스카이 대학생이다”라는 기사 속 문장은, 공정에 대한 목소리가 어떤 집단에 의해 주도되는지 알려준다. 이들은 공정을 자신들에게 익숙한 ‘노력과 보상’ 같은 비례의 원리로 이해한다. 공정에 대한 치우쳐진 이해는, 보편적 평등의 권리로서의 공정을 간과하게 만든다. 현재 인천국제공항 갈등의 원인이다. 불평등 해결의 열쇠인 공정마저 쏠렸으니, 계층 간 격차는 더욱 벌어질 수밖에 없다.

한겨레의 기획은, 달의 한 면밖에 볼 수 없는 지구에서 우주인을 보내 그 뒷면의 지형을 조사하록 한 임무로 비유해도 적절할 것이다. 산재와 같은 참사가 벌어지기 전까지, 80에 속한 청년들은 목소리가 능동적으로 다뤄진 적 없던 존재들이다. 과거 「한겨레21」 기자들이 최저임금을 받는 노동자가 돼, 사회의 그늘진 곳을 비춰 호평을 받던 <4천원 인생>을 상기시키는 작업이다.

하지만 해당 보도는 다뤄지지 않았던 목소리를 전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청년은 사회와의 관계에서 (상대적으로) 수동적 위치에 있기에, 우리 사회의 모순이 순수하게 투영한 존재이기도 하다. 이는 하위 80에 속할 청년만이 아니라 상위 20에 속할 청년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청년 100명과의 만남은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표본은 아니나, 사회 모순을 그대로 받아들인 존재를 통해 정성적으로 불평등을 탐사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청년 100명의 현재 상태, 지역간 격차, 계층 이동 기대 수준, ‘조국 사태’ 반응 등은, 청년이란 좌표를 통해 불평등이 어떤 방향(vector)과 어느 정도(scalar)인지를 밝히고, 그 상호성을 드러낸 작업이었다.

지난 가을, 광장을 달궜던 허무한 열기는 재판정에서 식고 있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불평등이 발단이 된 갈등들은 예열되기 시작했다. 인천국제공항 사건은 그 서막이다. 단순히 공정에 예민한 청년 문제로 보도해서는 안 된다. 앞으로 다가올 언론의 시간에는 우리사회 불평등의 맥락을 다층적으로 드러내, 공동체가 어떤 협력을 해야 하는지 논의할 수 있는 공론장을 만들어야 한다. 한겨레가 7개월 전에 보도한 기사지만, 현재, 그리고 앞으로 우리 사회의 모순을 가장 와닿게 이해할 수 있는 보도다.

▲ 언론의 공정성은 편향된 판단을 방지하는 데 의미가 있다. ⓒ Pixabay

공정 보도란 무엇인가

모든 의제는 평등하다. 다만, 이를 다루는 집단의 힘이 균등하지 않을 뿐이다. 공정 보도가 어려운 이유는, 언론이 다양한 의제 사이에서 균형을 고민하기보다, 조직된 힘을 가진 집단이 공론화한 의제 안에서만 이를 고민하기 때문이다. 조국 사태 당시, 언론이 조국 수호와 퇴진을 중심에 놓고 기계적 균형을 유지한 게 대표적이다.

한겨레는 조국 사태를 두 진영이 주도한 의제가 아닌, 불평등을 통해 보도했다. 조직된 힘이 없어 두 진영이 제시한 의제와 경합하지 못했던 문제를, 언론이 목소리를 모아 공론화시킨 것이다. 특정 집단들의 과잉 대표된 의제를 다루기보다, 소외된 의제를 언론이 발로 뛰어 공론화시키며, 왜곡된 민의 형성을 바로잡는 데 기여했다. 해당 기획에서 다룬 공정의 문제도 마찬가지다. 인서울 대학 바깥 혹은 고졸 청년들이 생각하는 공정에 대해 다루며, 가치를 입체적으로 볼 수 있는 기회를 시민들에게 제공했다.

언론의 공정성은, 시민들이 ‘치우친 정보’에 의해 편향된 판단을 방지하는 데 의미가 있다. 사회 전체가 특정 집단에 의해 쏠린 정보를 소비하고 있는 상황에서, 그 안에서의 공정성에 대한 고민은 불공정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한겨레는 보도 공정성을 특정 세력이 만든 좁은 의제의 틀에서, 자신들이 비난받지 않을 황금률을 찾는 것으로 축소하지 않았다. 대신 그들이 만든 의제 바깥으로 나가, 사회 전체에 존재하는 의제 스펙트럼의 차원에서 고민한 보도를 했다.

언론의 공정 보도는 다양한 의제들 중에서 공동체 유지에 기여할 수 있는 것을 공론화해, 그 균형을 찾는 것이다. 한겨레의 이번 기획은 저널리즘 측면에서 의미 있는 보도였다.


편집: 민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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