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회 '세명 저널리즘비평상' 공모전] 가작 수상작

<심사평> 

정치 권력을 감시하는 것은 어렵지만 정치를 비난하고 혐오하게 만드는 건 쉽다. 언론의 가장 중요한 책무 중의 하나는 시청자와 독자를 대신해서, 그리고 그들의 시각에서 정치 과정이 제대로 작동하는지를, 정치인들이 책임을 다하고 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다. 

제1회 세명 저널리즘비평상 공모전에서 가작으로 선정된 이화영 씨의 비평은 지난 21대 총선을 앞두고 각 정당의 공약 이행 문제를 분석했던 KBS <시사기획 창>을 다뤘다. 언론이 선거를 다루는 방식은 다양하지만 단순히 선거전을 넘어서서 장기간에 걸친 공약 이행률을 분석했다는 점, 나아가 공약을 이행하지 않아서 생긴 피해를 국민의 시각에서 따져봤다는 점 등 이 보도의 장점을 잘 짚었다. 이화영 씨가 지적한 것처럼 이런 보도가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고,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기를 기대한다. 아울러 언론이 제 역할을 하고 있는지를 차분하게 따져보는 이런 의미 있는 비평이 앞으로도 계속되기를 바란다. 

원제: <누구를 위하여 국회는 싸우나> : KBS <시사기획 창> 278회 [공약, 이번엔 믿어볼까요?] 


장면 하나.

적갈색 단상 앞으로 멀끔하게 정장을 차려입은 중년의 어른들이 겹겹이 엉겨서는 일그러진 표정으로 싸운다. 몸과 몸이 부딪히고, 삿대질과 고성이 오간다. ‘국회’를 생각하면 제일 먼저 이런 장면이 떠오른다. 십 년도 더 된 기억이지만 생생하다. 그렇게 TV 화면을 통해 처음 국회를 마주했다. 지난 20대 국회의 패스트트랙 정국은 오랜 기억의 데자뷔였다. 싸움의 내용은 달랐지만, 싸우는 장면만큼은 다를 게 없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질문은 하나다. ‘왜 싸우는 걸까?’ 이 물음에 답하기 위해선 국회 본연의 역할, 국회의원이 할 일이 무엇인지부터 살펴야 한다. 지난 4월 10일 방영된 KBS 탐사프로그램 <시사기획 창> 278회가 의미 있었던 건 바로 이 때문이다. [공약, 이번엔 믿어볼까요?]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 국회의원의 일을 ‘공약’으로 정리하고, 이행 여부를 따져 물었다. ‘누구를 위하여 국회는 싸우나’라는 국민의 물음에 답한 것이었다.

▲ 대한민국 국회. ⓒ KBS <시사기획 창>

국회는 국민을 위해 싸우지 않는다

국회가 싸우는 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궁금한 건 싸우는 이유다. 제각기 다른 정당들이 저마다 소중한 국민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것일까? <시사기획 창> 278회는 이 지점에서 국회 싸움의 보이지 않는 진실을 드러냈다. 핵심은 ‘국민을 위해 싸우지 않는다’는 것. 근거는 있다. 바로 공약 이행률이다. 시민단체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과 함께 각 정당의 공약 이행 여부를 수치화했다.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데이터로 국회의 책무 방기를 선명하게 드러냈다. ‘선거가 끝나면 잊히는 약속’, ‘뒷전으로 밀려나는 민생 법안들’, <시사기획 창>이 방송 초반 제기한 문제가 분명한 사실로 확인됐다. 지난 20대 국회를 살펴보면 법안 10개 중 4~5개는 폐기됐다. 더불어민주당 44.6%, 미래통합당 42.9%, 정의당 40.6%로 나타난 공약 미이행률이 그 증거다.

공약 이행 여부를 데이터로 정리한 건 문제를 가시화한 것 이상이다. 국회가 갖는 입법 권력을 감시한다는 점에서다. 언론의 제1 역할은 권력 감시와 견제다. 지난 정부의 국정농단 게이트는 언론이 제 역할을 하지 못했을 때 최악의 결말이 무엇인지를 보여줬다. 행정부, 입법부, 사법부는 국민의 주권을 위임받은 대표적인 권력기관이다. 바깥의 감시와 견제가 약해질 때 권력은 부패하고 만다. 그렇기에 언론의 감시와 견제는 곧 권력의 주인인 국민의 힘을 키우는 의미가 있다. <시사기획 창>은 탐사프로그램으로서 이러한 언론의 기본 책무에 충실했다. 국민의 편에서 보도했기 때문이다. 선거 보도에서 대다수의 언론 보도는 정당 혹은 정치인의 목소리를 받아쓰고, 각 정당이 내건 공약을 따라 말하는 데 그친다. 달리 말하면 국민의 관점은 빠져 있다. 국민 편에서 어떤 공약이 중요한지, 공약 실천 의지는 있는지 살펴보는 작업이 미진하다. 탐사프로그램 <시사기획 창>은 기존 선거 보도의 한계를 극복하려 했다.

공약으로 책임 윤리를 묻다

<시사기획 창>은 국민의 관점을 살리는 동시에 국민의 이익을 높이는 데도 목소리를 냈다. 공약이 이행되지 않음으로써 피해 보는 국민의 발언권을 살리면서다. 대표적인 게 노동 공약이었다. ‘동일노동, 동일 임금’ 원칙을 담은 더불어민주당의 공약은 지켜지지 않았고 그 결과는 비정규직의 억울한 죽음이었음을 보여줬다. 고 이재학 청주방송 PD는 프리랜서로 비정규직의 처우 개선을 요구하다 부당해고를 당했고 억울함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더불어민주당은 12년간 비정규직의 처우를 개선하겠다며 ‘동일 노동, 동일 임금’을 공약으로 반복했지만, 공염불이었다. ‘소중한 한 표와 맞바꾼 내 삶을 바꿔줄 공약’. 방송 초반 <시사기획 창>이 공약의 중요성을 설명하며 이렇게 정리했다. 그리고 실제 사례를 통해 국민의 삶이 걸린 문제라는 걸 확인시켜줬다. 주거권 공약, 소상공인 공약 등 여야를 막론하고 12년간 말뿐인 공약으로 피해 본 국민의 편에 섰다.

국민의 이익을 높이기 위해 국회가 할 일은 분명해졌다. 말뿐인 공약이 아니라 실행에 옮겨야 한다는 것이었다. <시사기획 창>이 국민의 편에서 던지는 메시지였다. 막스 베버는 <직업으로서의 정치>에서 정치인의 자질로 행위의 결과까지 책임지는 것, 즉 정치인은 결과로 보여줘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그런 점에서 공약 미이행으로 피해 본 국민의 발언권을 살리는 건 국회의원 개개인에게 책임 윤리를 묻는 일이었다. 국민을 대신해 국회가 달라져야 한다고 자성하길 촉구한 것이었다.

국민을 위해 일하는 국회가 되려면

‘사회의 불의와 부조리를 끝까지 파헤친다’. <시사기획 창>이 내건 기획 의도 중 하나다. 287회 [공약, 이번엔 믿어볼까요?]는 그 가능성을 충분히 보여줬다. 하지만 한 번의 방송으로는 부족하다. 기획 의도에서 밝혔듯 앞으로 <시사기획 창>이 ‘끝까지’ 나아갈 수 있어야 한다. 예컨대, 영국 공영방송 BBC는 공약과 관련해 ‘Policy guide(정책 가이드)’를 만들어 유권자로부터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정책 분야를 조사하고 이에 따라 정당별 공약 내용과 이행상황을 점검한다. 국민과 함께 필요한 정책 분야를 정리하고, 그에 맞춰 정당이 공약을 만들고 이행하도록 하는 것이다. 탐사프로그램 <시사기획 창> 역시 지속해서 정당별 공약 이행률을 점검함으로써 기획 의도를 온전히 구현할 수 있다. 12년간의 국회 무능이 이어진다면 또다시 피해 보는 건 국민이다. ‘누구를 위하여 국회는 싸우나’, 다시 묻지 않을 그 날이 오길 바란다. 한 명의 국민으로서, 한 사람의 시청자로서 앞으로의 <시사기획 창>을 기대하는 이유다. 그간 당리당략에 빠져 자신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싸웠던 국회를 ‘국민을 위해 일하는 국회’로 바꾸는 것이다. 


편집 : 권영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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