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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자연의 ‘거리두기’가 해법이다
[상상사전]‘바이러스’
2020년 08월 08일 (토) 21:13:53 김정민 기자 akimmin37@naver.com
   
▲ 김정민 기자

1930년대 초반 독일 과학자 게르하르트 도마크가 제약회사 바이엘 실험실에서 설파제의 항균 효과를 발견하기 전까지 인류는 세균의 먹잇감이었다. 연쇄구균에 의한 감염, 성홍열, 수막염, 폐렴, 산욕열 등 지금이라면 가볍게 앓고 지나가는 세균성 전염병을 이겨내지 못하고 수많은 사람이 속수무책으로 숨졌다.

그러나 열정적인 과학자들이 실험실에서 수도 없이 화학분자를 자르고 조립해 마침내 인간의 세포는 보호하면서 인체에 침투한 세균만 감쪽같이 죽이는 설파제를 발명하자 상황이 반전됐다. 감염에 따른 사망자 수가 급전직하했다. 수많은 세균성 전염병이 자취를 감추었고 해마다 수백만에서 수천만명 이상이 목숨을 구했다. 설파제의 발명은 ‘세균과의 전쟁’에서 인류가 마침내 승기를 잡은 첫 사건이었다. 이 최초의 발명과 발견으로 인간은 질병의 역사를 바꾸고 현대의학의 시금석을 놓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안타까운 사실은, 인류가 세균은 극복했을지 몰라도 또 다른 보이지 않는 살인자인 바이러스 앞에서는 속수무책이 됐다는 점이다. 무슨 일이든지 과하면 부족함만 못하기 때문에 균형을 유지하는 일이 중요하다. 설파제의 발명은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바이러스의 시대를 열었다.

설파제는 닭, 돼지, 소 등의 사료에 첨가되었고 오늘날 밀집형 ‘공장식 농장’ 시스템을 탄생시켰다. 세균 감염의 위협에서 벗어난 동물들은 대규모로 밀집사육되면서 어마어마한 양의 메탄을 뿜어내 온실가스 증가로 지구온난화를 유발하는 요인으로 지목됐다. 지구가 뜨거워지자 열대지방에 서식하던 박쥐들이 온대지방으로 점점 이동하면서 바이러스도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 설파제의 발명으로 인류는 세균성 감염병을 극복했지만, 무분별한 환경파괴를 지속한 탓에 전지구적 규모의 바이러스 감염병에 시달리게 된다. ⓒPixabay

바이러스로서는 77억명이 바글거리며 사는 인간과 인간이 밀집사육하는 소, 돼지, 닭, 양 등 가축들은 ‘블루오션’이나 다름없다. 해마다 발생하는 조류독감이나 구제역, 돼지열병 등이 그 증거다. 인간도 1918년 스페인독감을 비롯해 20세기 내내 홍콩 독감과 콜레라 등을 이삼십년 주기로 겪었고 21세기 들어와서는 사스, 메르스, 지카, 진드기, 에볼라 등 전염병의 습격을 2~3년 주기로 겪고 있다. 코로나19도 그 일환이다.

바이러스는 세균보다 구성이 단순하고 변이가 빨라 항바이러스제를 만들기 어렵다. 최재천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석좌교수는 전문가들과 정책입안자들이 효과적인 백신 발명을 기대하고 있지만 효율이 60~70%되는 독감 백신을 만드는 데 70~80년이 걸렸다며 코로나19의 백신을 기대하는 게 시기상조라고 말했다. 바이러스 세계에서는 설파제 같은 기적의 약물을 기대할 수가 없다는 뜻이다. 인간이 약물로 승기를 잡을 수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결국 생활 속에서 실천하는 ‘사회적 거리두기’가 바이러스에 대처하는 적절한 해법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까? 우리는 언택트 경제와 비대면 생활의 활성화를 통해 감염 차단을 모색하고 있다. 하지만 거리두는 생활을 오랜기간 버틸 수 있는 사람은 정해져 있다. 물류센터, 콜센터, 다단계 노동자 등 비대면을 결코 생활화할 수 없는 우리 사회의 약한 고리들이 재난을 견디지 못하고 파괴되어 가는 동안 모니터 너머로 소통하며 작업하는 것이 가능한 중상위 계층만 안전하게 살 수 있게 된다. ‘사회적 거리두기’는 필요하지만 그것만 해법처럼 여기는 것은 윤리적이지 못하다.

진정한 거리두기는 인간과 자연생태계 사이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숲에 길을 내고, 야생동물 서식지를 침범하고 생태를 파괴하는 난개발을 이어온 인간 자신의 과오와 실책이 바이러스를 문명 속으로 끌어들였다. 여기에 무분별한 개발과 석탄화력발전, 공장식 축산 등이 복합적으로 더해져 바이러스의 위협 앞에 우리 스스로를 노출시켰다. 개발가능성도 확실치 않은 약물로, 상황이 진정될 것을 기대하는 거리두기로 코로나를 돌파하려 할 게 아니라, 산업혁명 이후 우리가 살아온 방식이 지속가능한지 점검하고 근본 경로를 바꿔나가야 한다. 앞으로 더한 대재앙이 수시로 몰아닥칠 것이라는 과학자들의 경고를 귀담아듣지 않는다면, 인류를 바이러스 감염병의 수난에서 구해낼 길은 요원해질 것이다.


보들레르가 ‘모든 능력들의 여왕'이라고 말한 상상력이 학문 수련 과정에서 감퇴하는 건 안타까운 일입니다. 저널리즘은 아카데미즘과 예술 사이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생각을 옥죄는 논리의 틀이나 주장의 강박감도 벗어 던지고 마음대로 글을 쓸 수 있는 상상 공간이 바로 이곳입니다. 튜토리얼(Tutorial) 과정에서 제시어를 하나씩 정리하다 보면 여러분만의 ‘상상 사전’이 점점 두터워질 겁니다. (이봉수)

편집 : 유희태 PD

[김정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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