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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 땅에서 집을 구할 수 없다면…
[상상사전] ‘비혼’
2020년 07월 23일 (목) 12:24:34 김계범 기자 aiolos1001@naver.com
   
▲ 김계범 기자

일 년도 남지 않았다. 십 년 전 일기장을 펼쳐보니 서른 전에 결혼하기로 했는데…, 계획대로라면 지금쯤 언론사에 기자로 취업해 가정을 꾸려야 했다. 이제 서른 전 결혼은 고사하고 취업하는 게 간절한 소망이 되어버렸다. 어릴 적 ‘커서 뭐가 되고 싶니’라고 묻는 어른들 물음에 나는 줄곧 ‘우리 아빠처럼 좋은 아빠 되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성인이 돼서도 가끔 ‘꿈이 뭐냐’는 질문을 받으면 나는 ‘좋은 아빠’라고 말하곤 하는데 언제부터인지 대답이 망설여진다. 

청춘은 하염없이 흘러간다. 오래전 세상을 떠난 가객은 ‘서른 즈음’에 인생을 고민하고 성찰했는데 나는 자꾸 ‘먹고 사는 일’에만 집중하게 된다. 밥벌이 걱정을 하면서 대부분 일과를 취업 준비에 쏟다 보니 나도 모르게 울적해지곤 한다. 화가 치밀어 오르거나 자괴감이 들 때도 있다. 내 한 몸 온전히 건사하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결혼과 출산은 꿈같은 얘기다. 

‘1.1.’ 지난달 인구보건복지협회가 유엔인구기금(UNFPA)과 함께 발간한 '2020 세계 인구 현황 보고서' 한국어판에 나온 우리나라 합계출산율이다. 세계 198개국 중 꼴찌다. 우리나라 합계출산율은 1970년 4.53명 이후 계속 감소해왔다. 우리 정부는 지난 10여 년간 출산장려정책에 150조원 이상 예산을 투입했다. 출산, 보육 등에 금전적 지원을 해주는 방식으로 정책을 펼쳤는데 결과적으로 실패했다. 

통계청이 5년마다 실시하는 인구주택총조사 통계를 보면 2015년 우리나라 기혼여성 출산율은 2.2명이었다. 결혼하면 아이를 2명 이상 낳는다는 것이다. 저출산은 출산장려정책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 결혼을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거나 기피하는 사회 현상과 관련 있다. 청년들이 결혼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려면 사회 전반에 걸쳐 정책 변화가 필요하다. 낮은 출산율은 혼인 감소와 관련이 있다. 또 낮은 혼인 건수는 주거, 고용, 교육 문제 등과 맞물려 있다. 

   
▲ 정부의 계속된 부동산 정책에도 집값은 잡히지 않고 있다. 이제 청년 스스로 서울에서 집을 장만해 결혼하는 일은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 됐다. ⓒ Pixabay

“와··· 신혼집이 북한이라니 말 다 했네. 이젠 분단 현실 때문에 안 된다는 거구나. 통일이 되어야 가능한 거야, 그치? 결국 우리 결혼은 이 땅에서는 불가능하다는 얘기네. 싫으면 싫다고 하지. 됐어.” 

윤고은의 단편소설 ‘부루마불에 평양이 있다면’은 두 사람이 함께 살 집 한 채 구하기 어려운 우리 사회 많은 청년들의 현실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이 소설에서 9년을 사귄 연인 ‘나’와 선영은 미래를 함께하고 싶지만 남한에서 이들이 함께할 집을 구하는 일은 ‘하늘의 별 따기’다. 그래서 이들에게는 ‘초품아’(초등학교를 품은 아파트)는커녕 ‘전셋집이나 수도권의 미분양 아파트를 찾기에도 역부족’이다. 경색된 남북 관계를 생각하면 쉽지 않지만 대졸자 기준 서울 집 한 채를 장만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22년이라고 하니 소설 속 연인들 상황처럼 서울에서 내 집을 마련하는 일보다 개성이나 평양에서 집을 구하는 게 더 현실적일지도 모른다. 

임대주택 같은 공공주택 공급과 균형 발전을 중심으로 한 강력한 부동산 대책이 나오지 않고서는 혼인 감소 문제는 쉽게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려면 결혼해서 아이를 낳을 수 있게 하는 등 젊은이들이 가정을 꾸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살 수 있게 해야 한다. 지금처럼 생존 문제와 직결된 주거 문제를 복잡하게 고민해야 하는 현실이라면 결혼보다는 연애가 훨씬 합리적이고 매력적인 선택으로 보인다. 

며칠 전, 네이버 실시간 검색어에 ‘3040 문재인에 속았다’는 말이 1위로 올라왔다. 정부 부동산 정책에 반대하는 한 온라인 카페 회원들이 키워드를 집중검색해 순위를 띄운 것이다. 이 카페 회원 500여 명은 서울 도심에서 오프라인 집회도 했다. 이 정도로 부동산 정책에 큰 변화가 올까? 22번이나 부동산 정책을 내놓고도 집값은 잡힐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과거 반값 등록금 집회하듯 청년들이 단결해서 정부에 강력한 주거 대책을 마련하도록 촉구해야 한다. 주거는 생존 문제다. 주거권은 헌법에 보장된 모든 국민의 권리이며 국가는 이를 위해 노력할 의무가 있다. 

집은 한 사람이 여러 채 소유해서 부를 증식하는 투기 수단이 되면 안 된다. 집은 필요한 사람들에게 알맞게 공급돼 거주하는 공간이 돼야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모두 내 집 마련에 관한 꿈이 있다. 집은 생활을 위해 필요한 공간이지 꼭 ‘내 집’일 필요는 없다. 청년들도 집을 이제 소유하기 위해 매달리기보다 공유나 구독의 개념으로 생각할 필요가 있다. 인식 변화와 함께 정부는 공공임대주택 공급을 늘려야 한다. 

‘가난이 대문 열고 들어오면 사랑은 창밖으로 도망간다’는 말이 있다. 흔히 ‘결혼은 현실’이라는데 경제력이 뒷받침되지 않는 결혼 생활은 유지하기 어렵다. 지금 같은 현실이라면 청년들에게 결혼은커녕 연애도 쉽지 않다. 니체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몇 번이라도 좋다, 이 끔찍한 생이여, 다시 한 번”이라고 말했다. 지상에 제대로 된 방 한 칸조차 허락되지 않은 ‘지옥고(반지하·옥탑방·고시원)’ 속 청년들에게도 이 말이 먹힐까? 미래 세대가 자신들 삶을 긍정하고 서로 사랑하며 살려면 우리 사회가 주거와 같은 생존에 직결된 문제부터 시급히 해결해야 한다. 


보들레르가 ‘모든 능력들의 여왕'이라고 말한 상상력이 학문 수련 과정에서 감퇴하는 건 안타까운 일입니다. 저널리즘은 아카데미즘과 예술 사이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생각을 옥죄는 논리의 틀이나 주장의 강박감도 벗어 던지고 마음대로 글을 쓸 수 있는 상상 공간이 바로 이곳입니다. 튜토리얼(Tutorial) 과정에서 제시어를 하나씩 정리하다 보면 여러분만의 ‘상상 사전’이 점점 두터워질 겁니다. (이봉수)

    편집: 윤재영 PD 

[김계범 기자]
단비뉴스 청년부 김계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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