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케치북] ‘나’를 사랑하는 싸움이 시작됐다

▲ 강찬구 기자

화려한 조명이 그를 감싸서였을까, 무대 위에 선 그는 빛났다. 빛이 어디서 온들 어떠랴, 매질이 좋기에 반사된 빛도 좋았을 터. 키 크고, 어깨 넓고, 얼굴도 취향 불문 잘생겼다는 소리 일색이었다. 춤 재주야 말할 것도 없었다. 나눠 설명할 필요가 뭐 있을까. 그는 가수다, 연예인이다.

내가 그를 쫓던 시절, 그는 대단했다, ‘짐승돌’ 같은 말이 유행하던 시절이었다. 그는 무대에서 꼭 한번은 셔츠를 들어 올렸고, 그것만으로도 그가 무대가 선 이유는 생겼다. 그는 표정으로도, 노랫말로도 자신을 찬미했다. 스스로를 ‘오빠’로 부르며 대화를 시작하던 뭇 남자들에게 힐난이 흔하던 때, 그에게만은 자칭 ‘오빠’도 아무런 무리가 없었다. 윙크나 휘파람을 곁들여도 용인될 수 있었다.

그는 내 것이 됐다. 지난한 과정, 마술같이 깜짝 맺어졌던 인연에 관한 이야기는 생략하자. 나는 그가 한참 빛나던 시절 통째로 그를 얻었다. 아침에 눈 뜨면 그가 있었고, 나갔다 들어와도 그가 있었다. 전파도 수상기도 랜선도 더는 우리 사이에 필요 없었다. 스타와 결혼한 팬, 나는 ‘성덕’했다. 신혼은 더할 나위 없었다. 우리 관계를 하고 싶은 대로 꾸며 주위에 가감 없이 보여줬다. 가고 싶은 데로 갔고, 들이고 싶은 것을 들였다. 주변과 스크린 너머의 질시, 악의 어린 풍문마저 내심 즐거웠다. 그러나 시간은 흐른다.

오늘로 3년째 접어들었다. 이쯤이면 아무래도 신혼이라기엔 무리다. TV에서도 주변에서도 이제 우리 관계는 새로운 소식이 아니다. 기정사실이 됐다. 나와 그의 결혼을 인정할 수 없다던 ‘사생팬’들도 이젠 없다. 그새 꾸러기 표정을 짓는 댄스 가수에게 ‘오빠, 오빠’ 하며 대책없이 애정을 쏟아주던 팬들의 취향이 변하기도 했지만, 그는 애저녁에 그 자리에서 내려왔다. ‘아재’니까. 아직은 부르는 곳도 부업으로 벌여놓은 사업도 많지만, 그는 집에 있는 날이 점점 많아졌다.

잘났던 게 몇 년 만에 다 없어질 리야. 그는 여전히 자신을 많이 사랑한다. 그러나 날이 갈수록 그런 그가, 언젠가부터 일상에 스며든 끈적함의 일부인 것만 같다. 아침에 일어나면 그의 삐쳐 나온 코털로 눈길이 간다. 화장실 거울 앞에서 다각도로 비춰보며 자신과 대화하는 그의 내면, 지루하면서도 그 끊이지 않음에 살짝 겁이 난다. TV 너머서 하던 것들, 제스처와 표정 하나하나가 근골에 박힌 채 내 앞에서 그대로 펼쳐지고 있는데, 그의 눈 밑에 새겨지는 주름, 그리고 그 자신의 마음속에나 남아있을 복근 위를 덮은 지방만이 새로움을 더하고 있다.

▲ 물에 비친 달 Ⓒ Unsplash.com

어느 날,

시를 한 편 봤다.

달빛을 탐내는 스님

물과 함께 물동이에 긷다

절에 와 깨달으리

물 쏟자 달도 없음을.

실망한 스님에게 큰스님은 아마도 말했을 것이다. 달이 비친 곳은 우물도, 물동이 안도 아닌 네 마음속이었다고. 일체유심조, 가르침의 말을 던졌겠지.

물을 쏟아내자 달은 사라졌다. 그래 어쩌겠나. 그 옛날의 너는 너대로 두고, 오늘은 오늘의 너와 살아야겠지. 물을 길으면 이제 달보다 내 얼굴을 담아야겠다.


편집 : 권영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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