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케치북] ‘멘털 캐피털’ 시대로 가자

▲ 임세웅 기자

재화가 되면 안 되는 것들이 있다. 세계 석학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마이클 샌델 교수는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에서 사회가 시장경제화하면서 ‘돈으로 살 수 없는 인간의 도덕과 가치까지 돈으로 사고 팔린다’라고 비판했다. 칼 폴라니도 <거대한 전환>에서 토지와 노동이 화폐로 거래되면서 ‘인간이 돈에 좌우된다’고 했다. 옳은 통찰이지만, 힘은 없다. ‘강한 것’이 ‘옳은 것’을 이긴다. 자본주의는 직관적이다. 직관은 강하다. 진보 지식인들이 말하는 바를 성취하려면 직관적인 자본주의 논리를 써야 한다.

당위만으로는 힘이 없다. 전태일 열사가 ‘근로기준법 준수하라’며 온몸에 불을 붙이고 평화시장 앞을 달린 지 50년이 지났다. 노동자는 여전히 기본적인 삶을 보장하라는 주장을 투쟁이라는 방식을 통해 제기하고 있다. 노동력을 최소비용으로 사용하고자 하는 욕구 앞에 당위는 힘을 잃는다. 국가가 기초적인 사회안전망을 제공해야 한다는 당위 역시 마찬가지다. 국민 세금을 빈곤층 생존권을 위해 사용하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들 때문에 부양의무제가 존재한다. 빈곤층 부양책임을 가족에게 맡기는 것이다. 온 가족이 빈곤해질 뿐이다. 서울 중랑구 모녀 죽음, 관악구 모자 아사, 강서구 일가족 살해와 자살 등이 발생한 배경이다.

▲ 자본이 도덕을 압도하는 시대, 무너진 노동과 인권의 가치를 찾으려면 새로운 상상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 Pixabay

당위를 실현하기 위해선 인식을 바꿔야 한다. 이때 ‘자본’ ‘가치’라는 단어를 결합하는 방법이 유용하다. 노동력을 최대한 싼값에 이용하려는 기업에게 ‘기업가치를 증대하기 위해 노동자 복지가 필요하다’고 해 보라. 기업은 유급 휴직, 조기 퇴근 등 여러 복지 시스템을 만들어낸다. ‘노동권의 증진이 기업 자본의 증대를 가져온다’고 말하면, 노동이사제 등을 도입하려는 목소리가 조금이라도 힘을 얻는다. 복지를 ‘인적 자본에 대한 투자’라고 말하는 건 복지를 증진하는 좋은 방법이다. 부양의무제가 인적 자본의 개발 기회를 위축시킨다고 주장하면, 부양의무제는 한시 빨리 사라져야 할 제도가 된다.

영국이 앞서서 이를 실현하고 있다. 영국은 사람의 정신에도 ‘자본’을 붙여 ‘멘털 캐피털’이라는 용어를 만들어냈다. 2008년, 영국 싱크탱크 신경제재단은 ‘영국의 미래동력은 정신적 웰빙이다’라는 화두를 제시하면서, 정신적으로 건강하게 잘 사는 것이 21세기 영국의 신성장 동력이라고 주장했다. 그 이후, 영국은 국민의 정신을 관리한다. 지역 공동체를 조성하고, 문화∙예술 활동을 지원한다. 이는 실제로 의료와 건강보험에서 뚜렷한 비용절감효과를 가져왔다. 사람들이 병원을 찾는 횟수와 입원 횟수가 각각 37%, 27% 줄었다. 2년 전에는 ‘외로움 담당 장관’을 만들고, 국민의 정신적 외로움까지 보살핀다.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것에 자본과 가치라는 단어를 붙여보자. 정신에 ‘자본’을 결합해 삶의 질을 끌어올린 영국처럼. 도덕이 땅에 떨어진 것 같으면 ‘도덕 자본’, 불행하다고 생각하면 ‘행복 자본’, 삶의 질이 낮다고 생각하면 ‘삶의 질 자본’이라는 단어를 만들어 보자. 기후 위기를 부정하는 이들에게 ‘기후 자본’이라는 말을 붙여볼 수도 있겠다. 이런 접근 방식 또는 시각 변화를 통해 우리는 좀 더 진보한 삶을 누릴 수 있지 않을까?


편집 : 윤재영 PD

저작권자 © 단비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