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케치북] ‘자가격리’의 역설

▲ 유희태 PD 

코로나인지 코끼리인지에 관한 기억이 악몽만은 아니다. 어느 날 갑자기 질병관리본부역학조사반에서 문자가 왔다. ‘[Web발신] 코로나 확진자와 접촉 가능성이 있으므로 자가격리 대상입니다’ 부랴부랴 확진자 동선을 찾아봤다. 어쩐지 그날 농협 주차장 자리가 떡 하니 보이더라니, 운수가 좋은 날이었다. 그런데 곧이어 보건소 담당 직원에게 연락이 왔다. 목소리가 나긋나긋해 “네”만 하다가 통화를 마쳤다. 그렇게 14일간 ‘자가격리’가 시작됐다.

당연히 일상은 내가 정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과연 그런가? 매일 아침 호텔 조식을 즐기는 우아한 일상이 있는가 하면, 나처럼 집구석 컵라면이 일상인 사람도 있다. 내가 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컴퓨터 모니터 앞에 앉아 육개장 하나를 해치우고 회사에 전화를 걸었다. “사장님, 제가 코로나 자가격리 대상이 돼서요. 앞으로 14일 동안 출근을 못 할 것 같습니다.” 최대한 얌전하게 이야기하자, 사장도 온화하게 답했다. “그럼 어제 마무리 못 지은 거 정리해서 보내.” 후두부를 지나 치조골까지 욕이 올라오다가 선회했다. “ㅆ… 빨리해서 보낼게요.” 그래도 참아야지. 웹 디자이너는 갑과 을도 아닌 갑과 병, 정이다.

오랜만에 늦잠도 자고 편안한 일상이었다. 아주 편했지. 이게 일상이라면 나쁠 것도 없다. 그런데 사장은 나에게 ‘미션 임파서블’을 제안했다. “몰래 나와서 이것만 만져주고 가.” 그게 말처럼 쉬운가? 언제 점검을 나올지도 모르는 보건소 직원도 있는데… 다른 직원한테 시키면 되지 않느냐고? 우린 ‘건 바이 건’이다. 애초에 협업 시스템이 없어서 내가 벌인 일은 내가 끝내야 한다. 잠깐, 왜 내가 사장 편을 들고 있는 거지?

사장이 그렇게 앓는 소리를 하는데 넋 놓고 있을 수 없어 나왔다. ‘이러면 안 되는데’ 하면서도 잠깐 나와서 살짝 만지고 들어가려 했다. 그런데, 그런데! 왜 하필 그때 보건소 직원이 불시 점검을 나왔을까? 나는 몰래카메라가 아닌가 싶었다. 왜 옛날 어떤 프로그램에서 정지선 잘 지키면 쌀도 주고 냉장고도 주고 하는 것처럼, 자가격리 안전수칙 잘 지키면 상품 잔뜩 주는 그런 프로그램이 있었으면 정말 좋았을 텐데. 이건 꿈이 아니라 현실이었다. 나는 자가격리 중에 몰래 빠져나온 천인공노할 놈이 됐다.

주변 사람들에게 따가운 시선을 받기는 했지만, 차라리 잘 됐다 싶었다. 그 사건 이후 사장에게 문자 한 통 안 왔다. 자가격리 5일째였나? 검사 결과도 나왔다. 음성이었다. 감염이 안 돼도 14일을 꼭 채우라는 말에 관성처럼 반박했지만, 속으로는 웃었다. ‘사장놈, 어디 나 없이 고생 한번 해봐라.’ 그렇게 나머지 열흘도 편안하고 안전하게 자가격리 시간을 가졌다. 감염도 안 됐으니 더할 나위 없이 편안했다. 내가 겪은 자가격리는 여기까지였다.

▲ 코로나19로 '사회적 거리두기'와 비대면 소비가 확산되고있다. ⓒ Pixabay

나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전염병 덕분에 뜻밖에 참 좋은 시간 보냈다고 생각한다.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이름 모를 확진자분께 심심한 감사의 인사를 전하는 바이다. 한편으로는 그립기도 하다. 매일 짜증나는 사장 얼굴 안 봐도 되고, 야근에 회식도 없었으니 말이다. 목소리 나긋나긋한 보건소 직원에게 마지막에라도 감사하다는 이야기를 꼭 전해야 했는데, 끝끝내 짧게 “네”만 하다가 마지막 통화를 끝냈다.

지금은 어떻게 지내냐고? 열심히 회사 생활에 매진하고 있다. 복사기 돌아가는 소리, 쉴 새 없이 울리는 카톡 알림음에 전화벨 소리에다, 사장의 업무 지시에 따라 빡빡하게 돌아가는 일상을 보내고 있다. 자유롭고 자율적이던 한때는 사라졌다. 이곳이 내가 있을 곳일까?

기사에서 봤는데 사망자 부검을 진행한 중국인 의사가 이렇게 말했단다. “폐가 더는 폐가 아니었다.” 스펀지 같아야 할 폐 속을 다른 것이 대체하고 있는 느낌이라나. 나는 지금 숨 쉬고 있다. 더할 나위 없이 힘차게 공기를 빨아들이고 내뱉는다. 다시 한번 “후읍, 하~” 힘차게 공기를 빨아들이지만, 가슴 속을 다른 것이 대체하고 있는 느낌이다. 기분 탓일까?


편집 : 신수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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