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케치북] ‘비대면 현대사회’의 일상

A의 일기

▲ 양안선 PD

이 순간이 중요하다. 의식을 치르는 것 마냥 경건한 자세로 방바닥에 앉았다. 빨간색 녹음 버튼과 옆에 있는 재생 버튼을 누른다. 투명한 유리 너머로 하얀색 카세트테이프의 두 바퀴가 천천히 돌아가는 게 보인다. 흑갈색 셀로판지를 기다랗게 이어 붙인 것 같은 테이프 줄이 빠르게 지나간다. 3분 30초. 카세트 플레이어로 나오는 god 오빠들의 ‘하늘색 풍선’을 따라 부르다 보면 시간은 금세 지나간다. 초등학교 내내 같은 반인 B에게 줄 생일 선물이다. 6학년이 돼서도 god 해바라기다. 스승의 날 파티를 준비하며 풍선을 불 때도 하늘색 풍선은 제 것이라는 B. 당연히 가장 첫 번째 음악은 ‘하늘색 풍선’이어야 한다. 1주일 전부터 노래 리스트를 짜느라 골머리를 앓았다.

아침에 눈 뜨자마자 밤새 충전한 스마트폰을 들여다본다. 코로나바이러스 관련 톡이 맨 먼저 나를 맞는다. 어젯밤에 시시껄렁한 카톡을 나누다 잠든 친구의 톡도 와있다. 벌써 출근한 모양이다. 벌써 누군가가 만든 코로나 환자 이모티콘, 보건소에서 보낸 예방행동수칙이 전염병의 위험성을 실감나게 한다. 종합비타민, 밀크씨슬, 루테인, 30살을 넘어서자 달라진 몸 상태 때문에 먹기 시작한 약들이다. 뜯지도 않은 택배 상자 안에는 뭔지도 모를 약이 더 있다. 몸에 좋다는 SNS 광고를 보자마자 산 것들이다. 옆에 있는 라면 봉지를 보자 피식 웃음이 나온다. 저런 걸 먹으면 안 되는데 생각하며 약을 털어 넣는다. 

그 순간 뜬 카카오톡 알림, B의 생일이란다. 이맘때쯤 생일이었던 게 어렴풋이 기억난다. 선물하기 버튼을 누른다. 생일 카테고리에 들어가서 적당한 선물을 고르고 결제한다. ‘생일 축하해 친구야! from A’ 귀여운 라이언이 춤을 추며 내 메시지를 전달한다. 겨우 30초, 그의 생일 축하 순간까지 걸린 시간이다.

▲ 비대면 서비스가 영역을 넓히고 시장규모를 키우면서, 비대면 사회는 가속화한다. ⓒ pixabay

B의 일기

까똑! 

아침부터 생일 축하한다는 메시지가 넘친다. 내가 이렇게 친구가 많았나 잠시 갸우뚱하다 원인을 찾았다. 몇 년 전부터 메신저에 생일 알림이 생긴 뒤부터 축하 메시지가 많아졌다. 굳이 알고 싶지 않은 팀장의 생일 알림을 받았던 몇 주 전이 생각났다. 축하 선물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다 아메리카노 기프티콘을 하나 보냈다. 아침부터 쏟아진 축하 메시지에 허리를 굽힌 무지 이모티콘으로 감사함을 표현한다.

‘생일 축하해 친구야! from A’ 초등학교 친구인 A도 메시지를 보내왔다. 고맙다는 말과 함께 출근길 잡담을 카톡으로 이어갔다. 시도 때도 없이 야근을 강요하는 팀장 욕을 카톡에 쳤는데, 아뿔싸! 생일 축하 카톡을 보내온 팀장에게 보내버렸다. 생각 없이 카톡방을 왔다갔다한 탓이었다. 다행히 1이 없어지지 않았다. 팀장이 보기 전에 메시지를 삭제하고 고맙다는 카톡을 얼른 보냈다.

띵동!

저번 주에 다녀온 방콕 여행 사진을 SNS에 올렸다. 스마트폰 화면을 잠그고 오래지 않아 ‘좋아요’ 알림이 떴다. 빗질 한번 하니 띵동, 걸레질 한번 하니 띵동, ‘어느 세월에 청소하냐’는 엄마 잔소리가 들려왔지만, 알림이 울렸으니 SNS를 확인하지 않을 수 없다. ‘부럽다, 언제 돌아오세요?’ 방콕이 아니라 방구석에서 청소하고 있는 내 사정을 모르는 팔로워의 댓글이다. 저번 주를 지금으로 착각하게 하는 SNS의 마법 덕분이다. 생각 없이 (웃음)(웃음) 대댓글을 달고 다시 방을 청소하는데, 삐뚤삐뚤 내 이름이 쓰인 카세트테이프가 책장에서 툭 떨어졌다. 초등학교 시절 A가 줬던 생일 선물이다! 반가운 마음에 사진을 찍어 SNS에 올렸다. 

#유물발견 #레트로 #카세트테이프

무슨 노래가 들어있었는지 모르겠다. 기억을 잠시 더듬어 20여년 전 초등학생 시절로 돌아가 본다. 학교 앞 떡볶이집, A와 함께 다니던 피아노 학원, 롯데리아에서 생일 파티를 하자 A가 건넸던 카세트테이프...

띵동!

추억을 되새기는 시간은 찰나였다. A의 댓글이었다. 
‘헐! 대박! 어디서 발견했어?’ 
생각할 시간은 허락되지 않았다. 이제 댓글을 달 순간이다.


편집 : 김은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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