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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추흰나비로 ‘우화’를 꿈꾸며
[글케치북] 호접몽
2019년 12월 31일 (화) 16:59:05 임세웅 기자 sewoongim@naver.com
   
▲ 임세웅 기자

네거리 신호등이 노란불로 바뀌었다. 앞차들이 속력을 줄이기 시작했다. 그들을 따라 속력을 낮출 순 없다. 그들의 속력은 내가 속한 세상의 것이 아니다. 핸들을 약간 틀어 차들 사이를 지날 준비를 한다. 속력은 줄이지 않는다. 잠을 못 자 나른하던 정신이 살짝 곤두선다. 기분 좋은 긴장감이 온몸을 휘감는다. 지금, 달린다. “야, 이 새…” 욕설은 언제나처럼 내 귓가까지 닿지 못한다. 차들이 운전석 창문을 내리고 욕설을 내뱉는 동안 나는 이미 그들을 지나치기 때문이다. 횡단보도를 통과했다. 속력을 줄이지 않고 노란불을 통과한 짜릿함이 온몸을 휘감았다.

“빨리 좀 와요! 피자 다 식잖아요!”

주문을 받은 피자집에 도착하니 사장이 내게 고함쳤다.

“죄송함다.“

손으로는 피자를 빠르게 받아 스쿠터 뒤 배달통에 넣으면서 입은 자동응답기처럼 반응했다. 아무리 빠르게 움직여도 그들은 언제나 빠르지 않다고 고함친다. 우리 세상에서 시간은 문자 그대로 돈이다. 1분 1초라도 빨라야 더 많은 주문을 받아 더 많은 돈을 번다. 얼마 안 되는 돈이기에 더욱 소중하다. 빠름은 절대선이요, 늦음은 죄악이다. 피자 배달만 하고 일을 끝내야겠다. 근처 원룸촌에 피자 배달을 마쳤다. 시계를 보니 밤 10시 30분, 집으로 향했다.

씻고 나니 11시다. 지금부터는 꿈꾸는 시간이다. 국어, 한국사, 헌법, 행정법, 행정학, 경제학을 한 시간씩 공부하면 새벽 5시다. 한 과목을 한 시간 공부하고 10분 쉬는 공부 패턴을 생각하면, 새벽 5시 50분에 끝난다. 아침엔 배달이 없어 네 시간은 잘 수 있다. 몇 달째 이어온 생활 패턴이다. ‘200충’을 벗어나기 위해 7급공무원을 택했다. 언제까지 벌레로 남을 순 없다. 나비가 될 거다. 화려하지 않고, 다른 이들처럼 평범하게 살고 싶으니 굳이 따지면 배추흰나비를 목표로 한다. 차 안에서 노란불이 뜨면 속력을 줄이고, 옆으로 지나가는 스쿠터를 보며 혀도 차는, 벌레가 아니라 평범한 나비를 꿈꾼다.

   
▲ 어떤 청년들은 배추흰나비라는 꿈에 모든 것을 건다. ⓒ pixabay

신호등이 노란불로 바뀌었다. 앞차들이 속력을 줄인다. 왠지 느낌이 좋지 않다. 하지만 멈출 수 없다. 저속은 죄악이니까. ‘나는 나비가 될 거야.’ 중얼거리며, 언제나처럼 차들 사이를 쌩하니 통과했다. “야 이 새끼야!” 오늘은 욕이 들린다. 느렸나 보다. 그렇다면 이어지는 건 신호를 받고 달려오는 옆 차들과의 충돌이다. 쿵! 오른쪽에서 달려온 차가 스쿠터를 살짝 쳤다. 왼쪽으로 날아갔다. 아득하다. 월세와 공과금, 스쿠터 리스비와 기름, 핸드폰비를 내고 나면 남는 게 없던 통장, 벌레 소리를 듣는 내 세상을 벗어나려고 서너 시간만 자며 공부하던 지난날들이 빠르게 머릿속을 스쳤다 사라진다. 이건 꿈일 거다, 제발…

헉- 스프링처럼 몸을 튕겨 일어났다. 몸이 땀으로 푹 젖었다. 평소와 같은 꿈이다. 시계를 보니 10시 10분. 샤워로 땀을 씻어내고 온몸을 보호장구로 둘둘 말며 주문을 받는 앱을 켠다. 주문을 받았다. 스쿠터를 타고 음식점으로 향했다. 앞차들이 속력을 줄인다. 노란불이 켜진 거다. 언제나처럼 달렸다.

“야 이 새끼야!”

또렷이 들었다. 빠앙! 나비처럼 몸이 날았다.

“119 불러, 빨리!”

온몸이 찢긴 듯하다. 정신이 아득해진다. 이것도 꿈일 거다. 꿈이어야만 한다.


편집 : 이정헌 기자

[임세웅 기자]
단비뉴스 청년부, 시사현안팀 임세웅입니다.
벽처럼 단단한 시민들의 생각에, 사회시스템에 균열을 내는 글을 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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