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발언대]

▲ 김은초 기자

'부모 찬스'를 기대할 수 없는 평범한 청년이 '돈 벌어 내 집을 장만하겠다'는 꿈을 꾼다면 비웃음을 사는 세상이 됐다. 정부의 전세금 지원을 받거나 공공임대주택에 입주할 기회만 얻어도 감지덕지해야 한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에 따르면 2018년을 기준으로 가구소득대비 주택가격비율(PIR), 즉 가구당 수입을 한 푼도 안 쓰고 모을 때 몇 년 만에 집을 살 수 있는지 보여주는 지수가 서울의 경우 11.2년이다. 영국 런던(8.5년), 미국 뉴욕(5.7년), 일본 도쿄(4.8년) 등 세계적으로 소득수준이 높은 도시들을 훌쩍 앞선다. 또 케이비(KB)주택시장동향을 보면 지난달 기준 서울의 평균 아파트 가격은 8억9864만원으로 2018년 기준 노동자 연평균 급여액(국세청) 3650만원의 24.6배다. 일자리가 몰려있는 서울에서 노동자 평균 연봉으로 아파트 한 채를 사려면 '숨만 쉬고 모아도' 약 25년이 걸린다는 얘기다.

이렇게 비현실적으로 높은 집값은 상당수 청년들을 '3포 세대', 즉 연애와 결혼과 출산을 포기한 세대로 만든 주원인 중 하나다. 도대체 우리나라 집값은 왜 이 지경이 된 것일까. 지난 수십 년의 고도성장기에 '배추밭이 공장이 되고 무밭이 아파트가 되는' 과정에서 '부동산 불패신화'가 우리 조부모와 부모 세대를 지배하게 됐기 때문일 것이다. 지난해 3월 통계청 가계금융복지조사를 보면 한국인의 투자자산에서 부동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75.5%로 일본의 50~60%에 비해 매우 높다. 집이 '거주지'를 넘어 '사고파는 자산'으로 더 큰 의미를 갖고 있다는 얘기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2018년 우리나라 주택보급률은 전국기준 104.2%, 수도권기준 99.0%로 전 국민이 자기 집을 가질 수 있는 수준인데, 실제 집 가진 사람은 전국 61.1%, 수도권은 54.2%에 불과하다. 다주택자 219만2천여 명이 여분의 집을 틀어쥐고 사고팔면서 재산을 불리고 있기 때문이다.

▲ 주택보급률은 100%를 넘지만, 실제 집을 가진 사람은 열 명 중 대여섯 명에 불과하다. 집값 고공행진이 계속되면 평범한 청년들의 '내 집 마련'은 실현 불가능한 꿈으로 남는다. ⓒ Pixabay

이런 현실을 바꾸려면 세금구조를 과감히 개혁해야 한다. 청년이 열심히 벌어 언젠가 자기 집을 장만하는 것이 '실현 가능한 꿈'이 될 수 있도록, 재산세와 종합부동산세 등 보유세를 높이고 양도소득세와 취득세 등 거래세는 낮춰 집값을 떨어뜨려야 한다. 문재인 정부는 지난달 2·20 대책까지 포함해 19번이나 부동산 투기억제 대책을 내놓았지만 보유세는 미지근하게 올렸고 거래세는 충분히 내리지 않았다. 한국조세재정연구원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보유세 실효세율(각종 공제를 제외한 실제 납부 세율)은 2015년 기준 0.16%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요 13개국 평균(0.33%)에 훨씬 못 미친다. 일본은 0.57%, 영국 0.78%, 미국 0.71%, 캐나다 0.87%, 프랑스 0.57% 등이니 우리나라 보유세 실효세율은 주요 선진국의 3분의 1에서 5분의 1밖에 안 된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월 신년사에서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까지 선포하며 집값을 잡겠다는 의지를 다졌다. 그러나 그 이후 나온 부동산대책도 대출규제와 인허가규제 등을 동원할 뿐 '보유세 본격 강화'라는 정공법이 아니었다. 그리고 시장은 보란 듯 이곳저곳에서 가격상승의 '풍선효과'를 보여주고 있다. 이제 더 이상 보유세 인상을 미뤄선 안 된다. 땅과 집은 수요가 많아도 더 만들어낼 수 없는 한정된 자원이므로 '공공성'의 원칙을 적용할 필요가 있다. 돈을 벌겠다고 2채 이상 주택을 틀어쥔 이들에겐 '허리가 휠 만큼' 무거운 세금을 물리는 것이 정당하다. 그래서 여분의 집을 팔려고 내놓았을 때는 양도세, 취득세 등 거래에 따르는 세금을 지금보다 줄여줄 필요가 있다. 청년들이 소박한 임대주택에 살면서 몇 년 열심히 일하면 크게 부담스럽지 않은 대출을 끼고 내 집을 마련할 수 있는 사회가 정상 아닌가. 보유세 강화라는 정공법을 더 이상 미루지 않기 바란다.


편집 : 김정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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