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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화’와 ‘평화’의 나라는 언제쯤?
[상상사전] ‘삼일절 아침에’
2020년 03월 01일 (일) 12:10:19 조현아 PD joninja@naver.com
   
▲ 조현아 PD

‘코로나19’의 환난 속에서 맞는 삼일절. 2019년에 발생해 ‘코로나19’로 명명했다는데, 나를 1919년 3.1운동 당시로 소환하는 것은 지난해 MBC가 방영한 <기억록>이다. <기억록>은 1919년 항일투쟁을 벌인 독립열사 100인을 모두 3분짜리 짧은 영상으로 소개했다. 2019년의 연예인, 체육인, 문화인 100명이 직접 100년 전 독립열사들을 소개하는 포맷이다. 드라마, 뮤지컬, 플래시몹 등 다양한 형식으로 방영된 인물 중에는 유관순, 김구 열사처럼 유명한 인물도 있지만, 기생, 학생, 노동자, 농민, 종교인 등 처음 듣는 숱한 이름들이 있다. 3.1운동에는 인구 10분의 1 이상이 참여했고, 여성이라는 성별이나 기생·백정 등 천민이라는 직급을 뛰어넘어 온 민족이 함께 대한독립을 부르짖었다. 엄청난 인원이 비폭력 노선으로 민족해방운동을 벌였다는 것은 세계 혁명사에서도 없었던 일이다.

‘오등은 자에 아 한반도가 평화국임과 개개인이 평화인임을 선언하노라.’ ‘우리는 오늘 한반도가 평화의 땅이며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평화의 개척자임을 선언합니다.’ 3.1운동 정신을 기록한 독립선언문은 ‘대한’ 독립이 민족자결주의, 인도주의 원칙에 따른 것이며, 단순히 한 국가의 독립을 넘어 동양 평화와 인류 평등을 위한 것임을 분명히 말한다. 실제 3.1운동은 중국 5.4운동을 비롯해 인도와 이집트, 중동과 아프리카 제국의 반식민지 해방 투쟁에 영향을 주었다. ‘약소국’이라 불리던 많은 나라들이 패권주의 침략성을 폭로하고 나섰다. 3.1운동은 제국주의의 패권 싸움 속에서 평화주의 노선을 분명히 제시하며 동아시아와 세계 각국에 평화의 불씨를 타오르게 했다.

3.1운동의 더 큰 의미는, 국제 평화뿐 아니라 국내 평화를 이루어냈다는 점에 있다. ‘대한 독립이 안으로는 모든 이에게 동등한 권리와 균등한 부를 베풀기 위한 것이며, 정의, 자유, 평등 원칙에 기초한 새로운 민주주의 국가를 건설하기 위함’이라고 대한독립선언문은 말한다. 임시헌장 또한 제3조 ‘대한민국 인민은 남녀, 귀천 및 빈부의 계급이 없고 일체 평등하다’, 제4조 ‘대한민국 인민은 종교, 언론, 저작, 출판, 결사… 신체의 자유를 향유한다’고 자유와 평등의 가치를 천명한다. 전근대적 계급과 신분을 타파하고 성별을 포함한 각종 차별을 없애 모두가 동등한 주인이 되는 ‘나라’, 서로가 동등한 인권을 지닌 주체로 공존하는 ‘평화’를 3.1운동은 이루고자 했다.

그 ‘평화’의 핵심 가치는 ‘공화주의’다. 임시헌장 제1조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제로 함’이라 했다. 모두가 동등한 사회구성원으로 공존하는 평화를 누리려면, 민주와 함께 ‘공화’가 필요했다. ‘공화주의’는 시민이 주인인 정치체제인 동시에 공공성, 공존, 균형을 추구하는 ‘이념’을 말한다. 공공성에 헌신하는 자유롭고 평등한 시민들의 적극적인 참여로 사회 발전이 이루어진다는 것이 핵심 내용이다. 본디 라틴어로 ‘공화국’(res publica)은 ‘공공의 나라’를 말하는데, 임시정부 창립자들 역시 그런 공화국을 만들고자 했다. 공공의 이익과 법, 공공선에 무게 중심을 두고 그것을 추구할 자유와 평등이라는 권리를 모두에게 주려 했다. 그 바탕 위에서 진정 ‘나라다운 나라’, 착취나 지배가 아닌 공존과 평화를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 1945년 11월 23일 귀국 직후 대한민국 임시정부 요인들. 조소앙(앞줄 오른쪽 세번째)과 그 왼쪽으로 김규식·김구·이시영. ⓒ 항일독립운동가단체연합회

이런 공화 이념은 1930년대 이후 제헌헌법에도 투영됐다. 정치, 경제, 교육의 균등을 표방하는 조소앙의 ‘삼균주의’가 그것이다. 제헌헌법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각인의 기회를 균등히 하고, 능력을 최고도로 발휘하게 하며’ ‘국민생활의 균등한 향상을 기하고’ 등의 대목이 그것을 말해준다. 이들은 공공 복리를 기준으로 자유와 평등을 절충하려 했으며, 김구 선생이 말했듯 ‘전민적 정치, 경제, 교육 균등의 3대 원칙을 확립’하여 완전한 민주공화국을 건립’하고자 했다. 공공성이 강한 대생산기관이나 주요 산업시설은 국유화하자고 했다. ‘공화주의’는 5번의 제헌헌법 수정과 9번의 헌법 개정 때 한번도 빠진 적이 없는 핵심 가치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공화’는 여전히 대한민국 헌법 제1조에 자리한다. 하지만 지금 현실에 공화주의 정신이 있다고 할 수 있을까? 인권보호, 안전, 노동권, 사회적 약자 기회 제공, 대기업 중소기업 간 상생, 공동체 이익 실현… 공공성 실현의 핵심인 요소들은 한국 사회에서 희미해진 지 오래다. 세월호 사건, 가습기 살균제 등 공동체 구성원의 생명과 안전은 이윤 추구와 효율성 논리에 밀려 보호받지 못한다. 같은 이유로 산업 현장에서 사고가 반복되고, 위험의 외주화가 빈번히 일어난다. 재벌은 중소기업을 착취하고, 곳곳에서 ‘갑질’ 구조가 형성된다. 경제사회적 약자는 공공 안전망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사각지대에 방치되고, 현실 구조를 바꿀 수 없기에 서로 ‘혐오’의 감정을 지핀다. 우리 사회의 그런 면모는 코로나19 사태에서도 명백하게 드러났다. 신자유주의 논리와 경제 양극화는 공공성을 파괴하고 사회 갈등을 심화했다. 서로 계급이 나뉘고, 어쩔 수 없이 각자도생하며 ‘사익성’을 추구해야 하는 사회를 만들었다.

“3·1운동은 1차세계대전 이전부터 시작된 민주주의, 자유, 정의, 평화에 기반해 국제질서를 만들려는 국제적 운동이었다. 좀 더 인간적이고, 조화로우며, 평화로운 세계를 창조하려는 초국가적 평화 프로젝트였다."

센트럴미시간대 호프 메이 교수가 3.1운동을 재평가하며 한 말이다. 3.1운동과 독립선언은 항일, 반외세, 반제국주의에 맞선 외적 평화뿐 아니라 국가 구성원 사이의 '내적 평화'를 이루어내려 했다. 각 구성원이 동등한 권리를 쥐고, 계급을 넘어 함께 공공선을 추구할 수 있는 국가, 어떤 불평등을 뛰어 넘어 동일한 주체로 공존하는 나라를 꿈꿨다. 노르웨이 평화학자 요한 갈퉁은 단순히 폭력이 없는 상태는 ‘소극적 평화’에 지나지 않으며, 인간 사회 통합, 개인의 적극적 잠재 실현에 기여하는 것이 ‘적극적 평화’라고 말한 바 있다. 공공성이 붕괴되고 구성원 삶의 질 전반이 낮아진 지금, 3.1운동 1세기가 지난 오늘 한국 사회가 기억해야 할 ‘평화’의 정신은 무엇인가?


보들레르가 ‘모든 능력들의 여왕'이라고 말한 상상력이 학문 수련 과정에서 감퇴하는 건 안타까운 일입니다. 저널리즘은 아카데미즘과 예술 사이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생각을 옥죄는 논리의 틀이나 주장의 강박감도 벗어 던지고 마음대로 글을 쓸 수 있는 상상 공간이 바로 이곳입니다. 튜토리얼(Tutorial) 과정에서 제시어를 하나씩 정리하다 보면 여러분만의 ‘상상사전’이 점점 두터워질 겁니다. (이봉수)

편집 : 최유진 기자

[조현아 PD]
단비뉴스 지역농촌부, 미디어콘텐츠부 조현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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