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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과 노동 문제는 '법대로'만 해도 해결
[사회교양특강] 김태동 성균관대 명예교수
주제 ① 경제민주화의 과제
2019년 08월 10일 (토) 11:42:37 홍석희 강도림 기자 mufc1001@naver.com

“앞으로 앞으로 앞으로 앞으-로.” 동요 ‘앞으로’ 중 일부다. 김태동 성균관대 명예교수는 이 동요를 “법대로 법대로 법대로 법대-로”라며 바꿔 부르며 강연을 시작했다. 국정농단에 연루돼 대법원 판결을 앞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법대로’ 처리해야 한다는 의미다. 언뜻 희화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한국 현대경제사를 온몸으로 겪은 노교수의 ‘감각’은 정확했다. 4월 30일 문재인 대통령은 삼성전자 화성사업장에서 이 부회장을 만났고, 재판에 영향을 줄 것이라는 우려가 쏟아졌다.

   
▲ 김태동 성균관대 명예교수가 세명대 저널리즘스쿨에서 ‘경제민주화의 과제'라는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 홍석희

왜 2019년에도 ‘경제민주화’인가?

1987년 헌법에 ‘경제민주화’가 처음 삽입되고 32년이 지났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에 온전히 뿌리내리지 못했다. 각 정당은 선거 때마다 ‘경제민주화’를 외치지만, 실천은 다른 문제다. 이제는 ‘경제용어’보다 ‘정치 구호’로 전락한 모양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경제민주화를 전면에 내세워 당선됐지만, 재임 기간 경제민주화는 더 후퇴했다.

김대중 정부에서 청와대 경제수석과 대통령자문정책기획위원장을 역임한 김태동 교수는 “우리나라 경제권력은 과연 누구에게 있나”라는 질문을 던진 뒤 “헌법상 보장된 주권자인 국민에게 경제권력이 있는지 돌아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형식적인 법률이나 규정보다 더욱 근본적인 원인이 있다. ‘국민들이 현재 경제 패러다임에 만족하고 있느냐’다. 김 교수는 다양한 근거를 들며 그렇지 않다고 주장했다. 그는 “최근 들어 희망을 포기한 사람들이 많다”며 “‘3포세대’라는 용어는 그런 현상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고 말했다. ‘3포세대’란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한 사람을 뜻한다. 김 교수는 “젊은 이들이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하는 이유는 안정적인 경제력을 갖지 못하기 때문”이라며 “불안정한 일자리, 치솟은 집값 등을 해결하지 못하면 이런 현상이 지속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 우리나라는 1인당 GDP 3만달러를 기록했는데도 비슷한 수준의 다른 국가보다 행복도가 낮다. ⓒ 김태동

‘행복지수’는 그 사회가 얼마나 건강한지 평가할 수 있는 중요한 지표다. 여러 연구에서 우리 사회는 낮은 행복도를 기록했다. 김 교수는 ‘소득불평등과 행복’의 상관관계를 언급하며, 경제민주화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그는 “2016년 우리나라 행복지수가 2015년보다 11계단이나 하락했으며, OECD 회원국 중에서는 최하위권에 속한다”고 말했다. 또한 “한국은 1인당 GDP가 비슷한 수준인 나라들에 견주어 낮은 행복도를 기록하는데, 이는 ‘경제민주화’를 제대로 실천하지 못해 ‘소득불평등’이 심화된 탓”이라며 “1퍼센트만 행복하고 99퍼센트가 불행하면 그런 경제는 민주적인 경제라고 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헌법으로 되새기는 ‘경제민주화’

좁은 의미의 경제민주화는 ‘헌법 제119조 제2항’을 의미한다. 그러나 헌법 한 조항에 경제민주화를 모두 담을 수는 없다. 김 교수는 “민주주의 원칙, 즉 1인1표에 의하여 경쟁질서, 복지제도 등 경제시스템을 공정하게 만들고 유지하는 것이 경제민주화”라고 말했다. 또한 “참여를 통해 각종 불공정이 만연한 경제 영역을 혁신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여러 헌법 조항을 언급하며 “헌법을 통해 경제민주화를 파악할 수 있다”고 말했다.

‘삼균주의’는 임시정부 조소앙이 독립운동 내부 좌•우익 사상을 종합하여 독립운동의 기본방략으로 삼고자 체계화한 민족주의적 정치경제사상이다. 삼균주의에 따르면, 정치•경제•교육의 개인간 균등을 실현할 수 있다. 비록 조소앙, 김구 등이 1948년 단독선거에 참여하지 않아 제헌헌법에 미흡하게 반영됐지만, 이후 우리 헌법에 큰 영향을 미쳤다. 김 교수는 “현행 헌법 제119조 제2항과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제헌헌법에는 차원 높은 경제민주주의 이념이 구체적으로 규정돼 있었다”고 말했다.

   
▲ 김 교수가 강조하는 헌법 전문. 그는 자본주의는 헌법용어도, 법률용어도 아니다고 말했다. ⓒ 김태동

김 교수는 경제민주화 공부를 위해 학생들에게 헌법 전문(前文)을 읽을 것을 권했다. ‘(전략)…정치•경제•사회•문화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각인의 기회를 균등히 하고, 능력을 최고도로 발휘하게 하며, 자유와 권리에 따르는 책임과 의무를 완수하게 하여, 안으로는 국민생활의 균등한 향상을 기하고…’ 헌법 전문 중 일부다. ‘기회균등’, ‘국민생활의 균등’처럼 ‘경제민주화’와 일맥상통하는 표현이 많다. 김 교수는 “제119조 제2항뿐 아니라 헌법 곳곳에는 ‘경제민주화’가 녹아 들어 있다”며 “얼마 전 논란이 된 ‘토지 공개념’도 헌법에 정확하게 규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한민국은 이건희·이재용 왕국

삼성은 그룹 명운이 걸린 중대한 재판들을 앞두고 있다. 국정농단에 연루된 이재용 부회장의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과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소송이다. 자칫 민감할 수 있는 상황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4월 30일 이재용 부회장과 만났으며, 숱한 뒷말을 남겼다. 보수 언론은 대개 ‘삼성 띄우기’에 나섰고, 진보 진영은 재판에 관한 우려를 나타냈다. 둘의 만남은 강연 이후 이루어졌지만, 김 교수는 마치 예상이라도 한 듯 삼성을 비판했다. 그는 “에버랜드 전환사채 사건 ‘무죄’,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사기 사건 ‘가처분 수용’ 등 사법부 판결을 이해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이외에도 여러 삼성그룹 현안을 언급했다. 그는 “이재용과 그 일가의 범죄행위는 너무 많고 중차대하고, 다른 재벌 기업들과 함께 경제 생태계 전반에 부정적 영향을 끼친다”며 삼성의 노조 파괴 행태, 반도체 공장 백혈병 문제 등을 지적했다. 김 교수는 ‘삼성공화국’도 틀린 말이라며, ‘이건희∙이재용 왕국’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사법부, 검찰, 국회, 언론 등등 기득권 사회 곳곳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삼성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 청와대는 문재인 대통령과 이 부회장 만남에 관한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이 부회장의 다음 재판에 귀추가 주목된다. ⓒ KBS

경제민주화로 해야 할 일

경제민주화가 정치적 구호로 전락하는 것을 막으려면 구체적인 개혁과제가 필요하다. 김 교수는 “질병을 고치려면 병원균을 제거해야 하듯, 비정상경제를 고치려면 그 원인을 제거해야 한다”며 “그래야 지옥처럼 고통받는 삶에서 행복한 삶으로 변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첫 번째로 재벌총수에게 엄정한 법치주의를 적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능력 있는 경영자가 기업 경영을 맡으면 기업 실적도 개선되고 일자리도 늘어날 것”이라며 “부패 세력 대신 진정한 사업가들이 활개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부동산 개혁도 우리 사회 경제민주화의 중요한 축이다. 높은 집값은 낮은 출산율의 원인이며, 국민 행복지수를 떨어뜨리는 요인이다. 김 교수는 “지역균형발전도 최우선적 과제”라며 “2004년에 신행정수도를 세종시로 옮긴다고 했을 때 멀쩡한 실정법을 두고 관습법으로 위헌 판결이 났다”고 비판했다. 또한 ‘재건축∙재개발 전면 중단’, ‘부동산 과세표준 100% 현실화’, ‘다주택자 가계대출 금지’ 등을 구체적 정책으로 제시했다. 그는 “최근 들어 그나마 부동산 집값이 안정세를 보이는 것은 다행”이라며 문재인 정부의 공을 일부 인정했다.

김 교수가 다음으로 강조한 분야는 ‘노동’이다. 그는 “문재인 정부가 임기 초반에는 ‘비정규직 문제 해결’, ‘최저임금 상승’ 등으로 노동 개혁에 힘썼지만, 2년이 지난 지금은 의지가 많이 꺾인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또한 “기존 노동정책을 잘 보완하는 한편, ‘노동 3권 ILO 기준 입법화’, ‘위험의 외주화 금지 입법’, ‘연대임금제 도입’ 등을 추가로 실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촛불 기대에 현저히 못 미치는 문재인 정부

최근 문재인 정부 경제 정책이 친기업적으로 ‘우클릭’하는 경향을 두고, 진보 진영은 우려를 표시하고 있다. 김 교수도 “소득주도성장, 혁신성장, 공정경제 어느 하나 제대로 돌아가지 않자, 2018년 하반기에 ‘포용성장’을 내세웠다”며 “문 대통령은 주권자들의 촛불혁명을 통한 명령을 까먹고, 지지율 하락이 홍보부족 탓이라고 오해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인터넷 은행을 빙자하여 은산분리를 완화하고, 박근혜 전 대통령도 못한 ‘규제프리존법’을 ‘규제샌드박스’로 바꾸어 시행하는 모습에 실망했다”고 비판했다.

   
▲ 김 교수는 수많은 비판을 하면서도 '국민연금 스튜어드십 행사' 만큼은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 KBS

그러나 김 교수는 문재인 정부에 관한 희망을 완전히 놓아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 행사는 올바른 방향”이라며 “비정규직 노동자 대표에게 ‘암적 존재’ 운운하는 경찰과 검찰을 파면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공정경제 실현에는 기득권 세력의 저항이 클 것이므로, 이에 대비해 장관, 수석 등을 개혁인사로 채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끝으로 “99%가 깨어나 뭉치면 경제민주화는 반드시 성공한다”며 “그 과정에서 언론인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고 말하며 1부 강연을 마무리했다.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특강은 [인문교양특강I] [저널리즘특강] [인문교양특강II] [사회교양특강]으로 구성되고 매 학기 번갈아 가며 개설됩니다. 저널리즘스쿨이 인문사회학적 소양교육에 힘쓰는 이유는 그것이 언론인이 갖춰야 할 비판의식, 역사의식, 윤리의식의 토대가 되고, 인문사회학적 상상력의 원천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2019년 1학기 [사회교양특강]은 장해랑 하상윤 김준일 김태동 조홍섭 이태경 성일권 선생님이 맡았습니다. 학생들이 제출한 강연기사 쓰기 과제는 강연을 함께 듣는 지도교수의 데스크를 거쳐 <단비뉴스>에 연재됩니다. (편집자)

편집 : 이자영 기자

[홍석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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