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현장] 언론재단 수습교육 300기 기념식 김중배 대담

“지금은 제가 사퇴를 했을 당시의 사정보다 더 열악하죠. 참담하다고 난 생각합니다. 기사 거래가 횡행하고, 공공연하게 거래 사이트가 생기고. 그때는 그래도 그늘에서 음습한 거래가 이뤄졌는데 지금은 양지에 나온 느낌? 그때도 이미 언론에 가해지는 자본의 압력은 집요하고도 일상적이었지만 지금처럼 이렇게 몰염치하지는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영 몰염치한 현상이 됐고, 일부겠지만 현업 저널리스트가 광고 거래를 선도하는 그런 참담한 현실까지 벌어지고 있지 않습니까.”

6일 오후 6시부터 서울 중구 세종대로 한국프레스센터 20층에서 열린 한국언론진흥재단 수습기자 기본교육 300기 기념식. ‘선배언론인 대담’에 나온 김중배(86) 언론광장 대표가 목청을 높였다. <동아일보> 편집국장과 <한겨레> 사장, 문화방송(MBC) 사장을 지내고 언론민주화 운동에 앞장서 온 그는 대담 진행자인 제정임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장이 “요즘 자본과 언론의 관계는 어떻다고 보느냐”고 묻자 이렇게 답했다.

더욱 집요하고 몰염치해진 자본의 언론 통제

▲ <한겨레>와 MBC 사장을 지낸 김중배 언론광장 대표는 현업에 있는 후배들을 향해 “자본의 압력이 더욱 집요하고 몰염치해졌다”며 연대해서 맞설 것을 주문했다. ⓒ 한국언론진흥재단

김 대표는 동아일보 편집국장 시절 두산전자의 낙동강 페놀 오염사태를 집중 보도했다가 거대 광고주인 두산그룹의 압력으로 경영진과 불화를 겪었다. 그는 이 문제로 1991년 사표를 낸 뒤 “언론은 이제 정치권력보다 자본과 힘겨운 싸움을 벌이지 않으면 안 되는 시기에 접어들었다”는 이임사를 남겼다. 이 이임사는 이후 언론계에서 ‘김중배 선언’으로 불리고 있다.

그는 요즘 언론 현장에서 일상화한 광고주·경영진의 압력에 고민하는 후배들에게 “한 사람 한 사람의 평범한 노력이 모이면 단독으로 행동할 때에 비해 파장이 크다”며 “연대와 공동 작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 대표는 또 ‘조국 사태’ 이후 더욱 추락한 언론의 신뢰를 회복하는 방안을 묻는 질문에 “혁명적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뉴미디어의 약진으로 전통언론(레거시 미디어)이 위기에 몰리고, 공영방송들조차 수익 회복을 위해 중간광고에 목을 매는 상황에서 시민의 믿음까지 잃은 현실을 지적하며 경영개선과 신뢰회복 양면에서 획기적 노력이 필요함을 강조했다.

언론이 제 역할 힘쓰면 ‘기레기’ 논란 사라져

 
김중배 대표와 제정임 원장의 대담에 100여명의 청중이 귀 기울이고 있다. ⓒ 이정헌 한국언론진흥재단

“작물을 정말 힘있게 기르면 잡초가 좀 침범해도 다 억누르고 자랄 수 있습니다.”

그는 특히 ‘기레기’라는 멸칭이 노골적으로 회자될 정도가 된 언론 상황과 관련, ‘농사의 철학’을 거론했다. 작물을 힘있게 기르면, 즉 대다수 기자들이 올곧게 일하면 잡초(기레기)가 좀 있더라도 언론이 제 구실을 하면서 사회적 신뢰를 회복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는 “우리가 (먼저) 제대로 크는 길을 가고자 노력하고, 그 길을 함께 가는 동기 저널리스트들도 각기 노력을 하면서, (다음으로) 기레기를 욕하는 것(잡초를 뽑는 것)이 현명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 대표는 동아일보 논설위원이었던 1987년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을 보고 ‘하늘이여, 땅이여, 사람들이여’라는 칼럼을 썼으며, 이 글은 6월항쟁으로 이어지는 도화선 중 하나가 됐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는 이런 글들로 인해 정보기관에 끌려가거나 가족이 협박을 당하는 등 고초를 겪었지만 결국 자신도 제 구실을 못한 구시대 언론인일 뿐이라며 “부끄러운 선배의 전철을 밟지 말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번 행사를 기획한 박형철 언론재단 언론인연수팀장은 “권력과 자본에 맞선 김중배 선생님을 후배 기자들이 만날 기회를 갖도록 하고 싶었다”며 “실무능력도 중요하지만 (기자들이) 저널리즘 정신을 새겼으면 한다”고 말했다.

1981년 이후 7400여명 거쳐 간 기본 연수

이날 대담에 앞서 민병욱 한국언론진흥재단 이사장은 환영사를 통해 “1981년 이후 40여년간 300기, 7400여명의 수습기자교육 수료생을 배출했다”고 소개하고 “언론계에서 저널리즘원칙과 취재보도실무를 가르치는 필수 교육과정으로 자리 잡았다”고 자평했다.

153기 수료생인 오대영 JTBC 기자는 이어 팩트체크 형식으로 ‘수습기자 교육 40년’을 정리했다. 1980년대에는 정부 주도로 국가관·안보관을 강조하는 교육을 했으나 1987년 6월항쟁과 6.29선언을 거쳐 언론자유가 신장된 1990년대부터는 언론윤리와 취재보도 등 본격적인 실무교육이 이뤄졌다. 인터넷의 등장으로 미디어 환경이 급변한 2000년대에는 멀티형 역량강화 교육이 시작됐고 디지털 저널리즘이 떠오른 2010년대에는 디지털 콘텐츠 제작 방법론과 데이터저널리즘 등이 보강됐다.

 
이날 기념식에서는 민병욱 언론재단 이사장이 환영사를, 오대영 JTBC 기자가 ‘수습교육 40년’ 소개를 맡았고, 추첨을 통해 참석자에게 경품을 증정하는 순서도 마련됐다. ⓒ 김정민 이정헌 한국언론진흥재단

재단은 앞으로 성인지 감수성 등 젠더 관련 윤리교육을 강화하고, 3년 차 기자를 대상으로는 재교육 시스템을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이날 행사에는 수습교육을 거친 현직기자들과 역대 강사 등 100여명이 참석했다.


편집: 김정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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