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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막농성을 더 춥게 만드는 사람들
[단비발언대]
2020년 02월 02일 (일) 20:17:28 최유진 기자 gksmf2333@gmail.com
   
▲ 최유진 기자

“밤에는 뭐 챙겨 먹으며 하는 거잖아.” 영화 <블랙머니>에서 검사는 단식농성을 벌이다 기력을 잃어가는 노조위원장에게 그런 핀잔을 준다. 이 영화는 론스타의 외환은행 매각사건을 모티브로 했다. 관객은 부패한 ‘모피아’를 중심으로 한 ‘기득권 동맹’에 분노한다. ‘정경유착’은 당연히 비난받을 문제이지만 관객의 분노가 이에 그쳐서는 안 된다. 우리 사회는 거리에 천막 치고 목소리 높이는 노동자들을 경원시해왔다. 거대권력에 맞서보겠다고 최후 수단으로 호소하는데도 거들떠보지도 않거나 흘겨보는 시선들이 그들에게는 더 참기 힘들었을 것이다.  

1995년 5·18부상자회와 5·18유족회가 175일간 천막농성을 벌여 ‘5·18 특별법’ 제정을 끌어냈다. 이들은 군부독재에 희생돼 억울하게 죽어간 시민들을 기리고, 헌정질서를 어지럽힌 범죄자들을 제대로 처벌하기 위해 거리에 몸을 내던졌다. 우리 사회는 ‘잘못하면 벌 받아야 한다’는 소박한 정의감도 잘 관철되지 않는 곳이다. 1998년 ‘국민의 정부’가 출범하면서 국회 주변에 천막촌이 형성됐다.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는 1998년 11월4일부터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 등에 관한 특별법’과 ‘의문사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며 422일간 천막농성을 벌였다.

참여정부 때는 ‘4대 개혁 입법’을 놓고 수백 개 시민사회단체가 천막을 치고 의사당 일대를 장악했다. 그러나 한나라당은 노무현 대통령이 개혁하겠다고 내놓은 법안을 ‘4대 국론 분열법’으로 규정하고 저지했다. 국회 안에서는 모든 걸 걸고 가진 걸 지키려 했고, 밖에서는 모든 걸 걸고 가진 걸 나누자고 투쟁했다. 부와 명예를 가질 기회조차도 천막 안 사람들에게는 오지 않았다.

천막농성은 ‘살아있는 민주주의’다. 천막 안에는 찬 바닥에 몸을 뉘며 기회의 균등, 과정의 공정, 최소한의 정의를 쟁취하려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겉모습만 그럴듯한 민주주의의 내실을 채우고자 ‘이 나라 주인이 여기 있다’며 몸뚱이를 투쟁 도구로 삼는다. 천막농성은 억눌린 자가 억누른 자에게,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약자가 강자에게 저항하는 수단이다.

그런데 천막농성의 의미를 훼손하는 이들이 있다. 지난 11월 20일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청와대 앞에 천막을 치고 단식농성에 들어갔다. 지소미아 파기를 철회하고, 국회 선거법과 공수처법 패스트트랙을 저지하는 게 목적이었다. 그는 억눌린 자인가, 피해자인가, 약자인가? 누구도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민주화 운동을 억누른 자였고, 공안사건의 가해자였고, 막강한 권력인 제1야당의 대표이다. 자기들이 만든 법절차에 따라 패스트트랙에 오른 법안들이었고 4+1 세력보다 숫자에서는 밀렸지만 협상하면 일부 의견을 반영할 여지도 있었다. 황 대표의 속셈이 흔들리는 자리를 확고히 하려는 것이었다면 성공작이다. 언론이 단식농성을 대서특필하자 당내 분란은 사라졌고 그의 위상도 높아졌다.

   
▲ 지난해 11월 24일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청와대 앞에 간이천막을 치고 단식투쟁을 이어갔다. 이후 천막을 몽골텐트로 바꿔 정의당 심상정 대표에게 비판받았다. ⓒ 자유한국당 홈페이지

언론과 시민의 시선이 향해야 할 곳은 그런 ‘특별한 농성’이 아니다. 국회 앞 거리에도, 재벌기업 사옥 앞에도, 일본대사관 ‘평화의 소녀상’ 앞에도 이 추운 겨울을 천막 속에서 버티는 이들이 있다. 그들을 더 춥게 하는 건 정치인과 자본가의 냉대, 극우파의 조롱만이 아니다. 어쩌면 일반 시민의 무관심이 그들의 등을 더 시리게 하는지도 모른다.


편집 : 임세웅 기자

[최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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