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기자들의 시선 ⑯] 대통령에게 쓰는 편지 3 - ‘재벌개혁’

한국사회의 문제를 ‘청년기자들의 시선’으로 살펴보고 대안을 제시하는 이 기획은 언론을 바로 세워 세상을 바꾸겠다는 젊은 언론인들의 염원을 담아 기성사회에 실천을 요구하는 것이다. 세상은 여전이 암울하고 임기 중반을 넘긴 현 정권의 사회개혁 역량도 의심스럽지만 ‘진보 대통령’의 진정성을 아직은 완전히 저버릴 수 없기에 이 시리즈는 ‘대통령에게 쓰는 편지’ 4편으로 마감한다. 네 편지의 키워드는 ‘반려동물, 여성혐오, 재벌개혁, 저출산’이다. 젊은 언론학도들의 제언에 대통령이 작은 메아리라도 화답해주길 기대한다. (편집자)

문재인 대통령님, 안녕하세요. 저는 기자가 되기 위해 공부하고 있는 학생입니다. 아직 지식은 부족하고 경험도 일천하지만, 우리 사회 문제점들을 하나하나 배우는 중입니다. 오늘 저는 대통령님께 기대했던 개혁과제 중에 아직도 이뤄질 기미가 없는 경제 문제를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대통령 취임사에서 사람들은 ‘기회는 평등할 것입니다, 과정은 공정할 것입니다,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라는 문구에 주목했습니다.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겠다는 발언 역시 시민들의 관심을 끌었습니다. 시민들이 위 발언들에 감동할 때, 저는 다른 말에 주목했습니다. ‘재벌개혁에도 앞장서겠다’는 대통령님의 다짐이었습니다.

정경유착도 사라진다더니 왜 개혁 못 하는지…

우리나라 재벌구조는 세계 어디에서도 유례를 찾을 수 없습니다. 영어사전에도 ‘chaebol’이라 등록돼 있을 정도입니다. 기형적 재벌구조는 지난 두 정부에서 더욱 강고해졌습니다. 사용자와 대등한 권리를 가져야 한다는 노동자들의 주장은 탄압의 대상이 됐습니다. 전체 주식의 5%도 되지 않는 지분율로 기업 전체를 좌지우지하고, 노조파괴공작을 일삼는 모습은 전혀 개선되지 않았습니다. 이런 현실에서 과감하게 “재벌개혁에도 앞장서겠습니다, 문재인 정부 하에서는 정경유착이란 낱말이 완전히 사라질 것입니다”라고 말씀하신 대통령님의 결기는 진심으로 느껴졌습니다.

▲ 취임식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재벌개혁의지를 천명했다. ⓒ KBS

그 결기는 이제 의심의 대상이 됐습니다. 정부는 개혁의 적기인 임기 전반부를 그냥 흘려보냈습니다. 실효성도 별로 없는 스튜어드십 코드를 재벌개혁의 핵심 정책인 것처럼 자랑한 것을 제외하면 실현된 재벌개혁 정책은 없다시피 합니다. 경제가 좋지 않다며 재벌 총수들을 불러 일자리를 더 만들라고 이야기하는 일은 이번 정부에서도 반복되고 있습니다.

문재인 정부에 기대를 걸었던 학계와 시민단체는 재벌개혁이 아예 사라져버렸다고 입을 모읍니다. 박상인 교수는 <경향신문> 인터뷰에서 “문재인 정부의 재벌개혁은 F”라며 “박근혜 정부보다 개혁 성과가 부족하다”고 했습니다. 박근혜 정부는 신규순환출자를 금지한 최소한의 성과라도 있지만, 문재인 정부는 단 하나도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참여연대를 떠난 김경율 회계사는 “문재인 정부가 핵심 공약이었던 경제 민주화와 재벌개혁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은 채 이재용 부회장의 손을 잡고 사진 찍는 모습을 연출”했다고 비판했습니다.

국제노동기구 협약도 비준 못해

문재인 대통령님의 집권과 함께 바뀐 더불어민주당 강령에는 ‘기업의 한 주체인 노동자의 인격과 노동의 가치를 존중하는 사회를 만든다, 노동자의 경영참여를 활성화하여 대주주의 전횡과 독단을 방지하고 합리적 직장문화와 건전한 기업문화 조성을 위해 노력한다”는 문구가 있습니다. 또 ‘실질적인 노·사·정 협력을 통하여 사회통합적 일자리를 창출한다’고 했습니다. 문재인 정부에서 과연 이 강령대로 경제정책, 시장정책을 펼쳐왔는지는 의문입니다.

노동자를 대변하는 대통령이 되어줄 거라 기대했지만, 대통령님의 행보는 달랐습니다. 대한민국은 현재 국제노동기구(ILO) 핵심 협약 8개 중 절반만 비준한 반쪽짜리 국가임에도, 정부와 여당은 나머지 협약을 비준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여당 원내대표가 “민주노총은 말이 안 통하는 고집불통”이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그 말이 일리가 있는지는 둘째 치고, 시장의 중요한 축인 노동자 대표에게 여당 원내대표가 이런 원색적 비난을 던질 수 있다는 자체만으로 노동에 관한 정부와 여당의 인식이 드러납니다.

현정부는 집권 초기 80% 넘는 지지를 받았고, 아직도 50% 가까운 지지를 받고 있습니다. 조국 전 장관 사태로 잠깐 휘청한 지지율은 금세 회복됐습니다. 아직 개혁의 동력은 꺼지지 않았습니다. 검찰개혁도, 선거법 개정을 넘어 더 중요한 과제도 실현할 힘이 아직은 남아 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님은 “이미 권력은 시장으로 넘어간 것 같다, 우리 사회를 움직이는 여러 가지 힘의 원천이 시장에서 비롯되고 있다”고 선언했습니다. 정부의 성패는 ‘시장을 얼마나 잘 관리하고 통제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뜻이겠지요. 이 ‘시장’의 실질적 주인인 재벌을 개혁하는 일이야말로 우리 사회의 가장 중대한 과제입니다.

대다수 재벌기업은 3대 세습을 완료해나가고 있습니다. 경제학자 케인즈는 3세대 이론을 이야기했습니다. 힘과 상상력이 넘치는 창업자가 기업을 일구면, 그 아들은 사업을 그럭저럭 이어가지만, 손자가 파산시킨다는 이론입니다. 창업자, 직속 후계자와는 달리 어릴 때부터 도련님으로 자라온 3대들이 할아버지만큼 똑똑하고 인격적일 가능성은 낮습니다. 한진해운 창업주의 3대 상속자는 땅콩회항 사건을 일으켰고, 한화그룹의 3대 상속자는 끊임없이 성추행과 폭력 사건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 (왼쪽부터) ‘땅콩 회항' 사건을 저지른 한진해운 3세 조현아, 술집 폭행과 성추행, 변호사 폭행 사건을 일으킨 한화그룹 3세 김동선, 운전기사 '갑질 매뉴얼'을 만든 현대가 3세 정일선. ⓒ KBS

재벌개혁, 이번이 마지막 기회

시장으로 넘어간 권력이 국가 전체를 흔드는 상황을 막기 위해서라도 재벌개혁의 칼을 다시 뽑아야 합니다. 세습 재벌이 무능한 상속자에 의해 하나 둘 흔들린다면, 진정으로 나라가 흔들리는 일이 벌어질 것입니다. 재벌이 가진 권력을 노동자와 나누어야 합니다. 선진국 상당수가 법률로 규정하고 있는 노동이사제는 필수입니다. 우리나라 노조가 임금인상만 고집하는 고집불통으로 낙인찍힌 것은, 노동자가 경영에서 떨어져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해외처럼 소유와 경영의 분리를 이룰 수 있도록 하는 시도도 해 나가야 합니다. 원경선 씨를 도와 풀무원을 창업한 남승우 전 총괄사장은 은퇴하면서 혈연관계가 전혀 없는 이효율 사장에게 자리를 물려줬습니다. 그러면서 “개인기업이면 몰라도 상장기업은 세습경영이 아니라 전문경영인에게 맡기는 것이 당연하다”고 이야기했습니다. 편법상속·증여만 막아도 지금처럼 무능한 3세들이 기업의 자산뿐 아니라 경영권까지 물려받아 기업을 망치는 사례는 줄어들 겁니다. 임기 반환점을 도는 지금 시작하지 않는다면, 재벌개혁 실패는 문재인 정부의 가장 큰 오점으로 남을 것입니다.

어느새 대통령님이 집권하신 이후 세 번째 겨울이 됐습니다. 만물이 움츠러드는 겨울은 인간에게는 사색의 시간을 늘려주는 계절이기도 합니다. 집무실로 장관을 비롯한 정책당국자들을 불러, 따뜻한 차를 대접하며 재벌개혁의 고삐를 바짝 잡아당겼으면 합니다. 이번 겨울이, 대통령님께는 재벌개혁을 시작할 마지막 기회니까요. 제 이야기를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편집 : 정재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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