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현장] 직업군인 자녀들의 떠돌이 학창시절

대전에서 대학원을 다니는 이아무개(29) 씨는 초중고등학생 시절 12년간 전학을 여섯 번 했다. 다닌 학교만 초등학교 다섯 곳, 중학교와 고등학교 각각 두 곳 등 모두 아홉 개나 된다.

이 씨는 1992년 서울 도봉구에서 태어나 다섯 살 때 청주로 이사 가서 유치원에 들어갔다. 일곱살에 다시 서울로 와서 수색에서 유치원을 다니다 여덟 살 되던 1999년 3월 강릉시 홍제동에 있는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초등학교만 다섯 군데 다녀

이곳에서 2학년까지 다닌 그는 3학년 올라가기 직전인 2001년 2월 대전시 신봉동에 있는 초등학교로 전학했다. 여기서 3학년을 마치고 4학년으로 올라가자 오산시 부산동에 있는 초등학교로 전학했고, 5학년 초에는 서울 신대방동에 있는 초등학교로 옮겼다. 이 학교에서 졸업을 하나 했더니 6학년 여름방학이 끝날 즈음 다시 청주시 율량동에 있는 초등학교로 전학 가서 졸업했다. 6학년 1학기를 마치고 전학하는 바람에 졸업사진을 두 번 찍어 졸업앨범이 두 권이다. 6년 동안 네번 전학하며 다섯 학교를 다녀, 학교를 다녔는지 전학을 다녔는지 모를 지경이 된 것이다.

▲ 군부대 근처의 한 초등학교 앞으로 학생들이 걸어가고 있다. 이 학교는 전교생 대부분이 군자녀다. ⓒ 이자영

중•고등학교 가면 나아질까 했지만 마찬가지였다. 이 씨는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청주시 율량동에 있는 중학교에 들어갔지만, 공부에 좀 탄력이 붙어가던 1학년 2학기 중간에 서울 노원구 중계동의 중학교로 전학했다. 다행히 이곳에서 졸업한 그는 같은 학군안에 있는 고등학교로 진학했다. 고등학교는 대입 진학에 유리한 서울에서 다니나 했더니, 2학년 초에 다시 충남 계룡시의 고등학교로 옮겨갔다. 여기서 졸업한 그는 서울에 있는 대학을 포기하고 대전의 한 사립대학에 입학했다.

친구도 없고 공부도 뒤져

이 씨가 이처럼 초중고 12년 동안 한두 해마다 전학을 다닌 것은 공군 장교인 아버지를 따라 가족이 이사를 했기 때문이다. 직업군인 중 육해공군 장교는 진급과 보직변경 등에 따라 근무지 변경이 잦아 가족이 2~3년에 한번씩 이사를 다닌다. 학교에 다니는 자녀들도 부모를 따라 자주 전학을 다닐 수 밖에 없다.

그는 갈아입은 교복만 여덟 벌이고, 빼곡하게 쓴 일기장이 수십 권이다. 학교를 옮길 때마다 느끼는 소외감과 외로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면서 겪은 마음고생을 매일 일기에 담아 달랬다. 전학 첫날 늘 하는 말인 ‘잘 부탁합니다’라는 인사도 지겨웠다. 새로 보는 친구들과 사이 좋게 지내려고 노력했지만 무리에 낄 수 없었고, 속마음을 나눌 친구가 없었다. 겨우 적응을 하고 친구가 생길 만하면 다시 다른 학교로 옮겨 초중고 동창생 친구가 거의 없다. 그는 속마음을 이야기하지 않는 습관이 생겼고, 혼자 있는 것이 편해지면서 말이 없는 성격으로 바뀌었다. 부모에게도 ‘같은 군인가족 친구들도 다 다니는 전학인데…’라고 생각하며 힘들다는 말을 꺼내지 않았다. 고등학교 때는 전학 한 뒤 환경변화에 따른 스트레스와 진학공부 부담으로 자퇴까지 생각했다.

▲ 이 씨의 초•중•고 생활기록부에 기록된 학적변경 사항을 시기별로 정리해보았다.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까지 12년간 6번 전학하면서 9곳 학교에 다녔다. ⓒ 이자영
▲ 이 씨의 전학 경로. 강릉에서 시작해 대전∙오산∙청주를 거쳐 서울로 갔다가 계룡시로 오는 등 강원∙대전∙충청∙경기∙서울 등 중부권을 오르락내리락한 경로가 복잡해 보인다. ⓒ 이자영

이 씨는 얼마전 갈까 말까 망설이다 중학교 동창회에 다녀온 뒤로 더 이상 동창회에는 나가지 않기로 했다. 자신은 친구들을 기억하는데 친구들이 자신을 알아보지 못할 거라는 걱정 때문에 주저했던 건데, 역시 자신이 갈 곳은 아니었다. 자신은 그 학교에 다닌 2년 간의 추억만 있는데, 다른 친구들은 초등학교부터 중학교까지 함께 다닌 추억을 공유하고 있으니 외톨이가 된 기분이어서 다시는 동창회에 나가지 않기로 했다.

진도 차이 등 학업에도 큰 애로

이 씨는 잦은 전학으로 학교생활에 적응하는 것도 힘들었지만 공부를 제대로 할 수가 없어 마음먹은 대학에 진학하지 못한 것이 큰 아쉬움으로 남아 있다. 전학할 때마다 학습진도가 달라 따라잡기가 힘든데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심리적 부담까지 겹쳐 학업성적이 부진할 수밖에 없었다. 12년간 옮겨 다닌 학교들 중 서울∙대전 등 대도시에 있었던 기간은 5년 남짓이어서 선행학습이니 조기교육 학원 수강 등의 기회가 적어 대입경쟁에서 뒤처질 수밖에 없었다는 얘기다.

대부분 중소도시에서 보낸 기간에는 학원이 멀어 부모들이 돌아가며 카풀을 해서 다녔지만 아무래도 역부족이었다는 것이다. 어떨 때는 학원도 가고 싶은 곳 보다는 친구들 몇 명 이상을 모으면 통학차를 보내주는 학원을 다니기도 했다.

전방 근무 많은 육군 자녀들이 더 열악

이 씨처럼 부모가 공군이나 해군 가족이면 해군기지나 공군기지가 대개 중소도시 이상인 곳에 있어 그나마 나은 편이다. 대부분 부대가 휴전선 전방에 몰려 있는 육군 군인가족 자녀들의 학업환경은 훨씬 더 열악하다. 중소도시가 거의 없는 군 단위 지역에 근무하는 육군 가족들은 근무지 현지에서 자녀 진학지도는 포기해야 할 정도로 교육여건이 열악하다. 그 때문에 상당수 육군 군인 자녀들은 초등학교 시절에는 부모들 근무지를 따라 전학하는 경우가 많지만 중학교 들어가서부터는 중소도시나 대도시로 나와 학교에 다니거나 아버지만 전방으로 들어가고 가족은 도시로 나와 두 집 살림을 하는 경우가 많다.

▲ 육군 부대들이 주둔해 있는 강원도 양구읍에는 군인 자녀들이 다닐 만한 학원 등 교육기반시설이 거의 없어 도시에서 따로 살기도 한다. ⓒ 유선희

서울에 있는 대학에 다니는 김아무개(22) 씨는 아버지가 육군 장교로 근무한 강원도 홍천의 시골 초등학교에 입학해 3학년이 돼서야 홍천읍내로 전학했다. 아버지는 홍천읍에서 멀리 떨어진 전방부대로 두세 번 전출을 갔지만 자신은 어머니와 함께 읍내에 살면서 중학교까지 다녔다. 고등학교 때는 아버지가 경기도 용인근처 부대로 전출돼 그때부터 용인에서 공부를 해서 대학에 진학했다. 그는 “중학생이나 고등학생이 되면 진학 공부 때문에 아버지와 떨어져 사는 친구들이 많다”며 “그래도 초중고 다니면서 서너 번씩은 전학을 다니기 때문에 공부에 지장이 많다”고 말했다.

이런 사정이다 보니 자녀의 공부와 장래를 위해 일찍 전역하는 이도 있다. 여군 장교 출신인 최아무개(32) 씨는 “남편도 직업군인이라 이동이 잦을 수밖에 없다”며 “아이에게 집중하기 위해 의무복무기간만 채우고 전역했다”고 말했다. 부부 모두 군인인데다 근무지가 서로 달라 가족이 뿔뿔이 흩어져 살아야 하는 상황이라 어쩔 수 없이 그만두었다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전근이 많지 않고 한 부대에서 장기간 근무하는 준사관이나 부사관 자녀들보다 진급과 보직변경에 따른 이동이 잦은 장교 자녀들에게서 더 많이 일어난다.

군인 자녀 학생 7만2천여명

한국국방연구원 국방인력연구센터 자료에 따르면 2017년 기준으로 군인 자녀 학생수는 72,508명이다. 이 중 초등학교 1학년이 7,532명이고 고등학교 3학년이 5,046명이었다. 국방연구원 박동호 연구원이 작년 12월 하순 발표한 ‘군인자녀 교육환경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 장교 자녀는 평균 6회, 준사관이나 부사관 자녀는 평균 3회 전학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박 연구원은 “취학 자녀가 있는 군 간부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전학으로 성적이 떨어졌다’는 응답자가 고등학생은 41~45%에 이르렀다”며 “초등학생은 비율이 그리 높지 않은데 중학교 2학년부터 현저히 비율이 높아졌다”고 밝혔다. 전학 전후 학습진도 차이로 어려움을 겪었다는 응답자도 전체의 63%에 이르렀다. 취학자녀를 둔 군 간부들은 36.9%가 읍∙면 이하 단위 지역에 거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 경기도 파주시 광탄면에 있는 한민고등학교 전경. 전체 1045명의 학생 중 70%인 730여명이 군인 자녀들이다. ⓒ 한민고 홈페이지

잦은 근무지 변경에 따른 군인 자녀들의 불안정한 학습환경 개선을 위해 김태영 전 국방장관 등이 나서서 경기도 파주시의 지원 등을 받아 지난 2013년 설립된 군인 자녀들을 위한 기숙학교인 ‘한민고등학교’가 지금 운영되고 있기는 하다. 전체 학생수가 1,045명이다. 1학년 371명, 2학년 351명, 3학년이 323명으로 갈수록 학생수가 늘어나고 있다. 이 중 30%는 경기도 지역 출신이고 70%가 군인 자녀들이다. 3학년은 323명 중 220여명이 군인 자녀들인데, 2017년 기준 전체 군인 자녀 중 고등학교 3학년생이 5,046명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전체의 4% 남짓밖에 수용을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국군복지단에서도 근무지 이동으로 이사를 가야 하는 군인 자녀들을 위한 기숙사를 지역별로 12군데 운영하고 있지만 역시 수용인원에 한계가 있다. 군인의 아들딸로 태어났다는 이유로 보통학생들과 같은 학교생활을 하지 못하고 학업과 대학 진학에서 불이익을 받고 있는 현실을 감안해서 국가가 이들의 고충을 시급히 해소해 주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편집 : 김정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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