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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한 잔에 ‘시간’을 산다
[상상사전] ‘커피’
2020년 01월 13일 (월) 21:49:03 이나경 기자 greennforest21@gmail.com

# ‘취준생’ A 이야기

   
▲ 이나경 기자

오늘 제출해야 할 이력서가 2개, 6시에는 아르바이트 출근. 언제쯤 이 생활이 끝나려나? 커피 한 잔 기다리며 생각에 잠긴다. 아메리카노 말고 다른 게 먹고 싶기도 하지만 ‘취준생’ 주제에 돈이라도 아껴야지. 내 앞에 사원증을 걸고 커피를 기다리는 회사원이 그저 부러울 뿐이다.

# 회사원 B 이야기 
겨우 눈만 붙이고 일어나 또 출근이다. 진한 아메리카노 한 잔으로 잠이라도 깨야겠다. 출근하자마자 처리해야 할 일을 생각한다. 언제쯤 이 생활이 끝나려나?

A와 B는 생김새도 성별도 나이도 직업도 어느 것 하나 겹치는 게 없다. 그러나 그들에게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언제나 바쁘다는 것, 언제나 ‘시간’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먹고 살기 위해 잠자는 시간까지 줄여야 하는 그들에게 커피는 하루를 다시 살아갈 수 있게 만드는 연명책이다. 그들은 염원한다. ‘원 없이 자봤으면…’

   
▲ 바쁜 현대인의 삶에 커피는 필수 요소가 돼버렸다. ⓒ Flickr

마르셀 에메의 단편소설 <생존 시간 카드>는 시간에 관한 재미있는 발상을 보여준다. 정부는 식량과 생필품 부족에 대처하기 위해 ‘생존 시간 배급제’라는 정책을 도입한다. 이는 비생산적인 소비자들로 분류된 이들의 생존 시간을 줄이는 제도이다. 물론 그들을 실제로 죽이는 것은 아니다. 단지 ‘쓸모 없는 사람’으로 분류된 이들은 한 달을 다 사는 게 아니라 무용(無用)성의 정도에 따라 정해진 일수만큼만 생존 시간을 발급받는 것이다.

문제는 부자들이 가난한 사람들에게서 생존 시간 카드를 사들이면서 발생한다. 가난하거나 병이 들어 고통스러운 이들은 더 나은 삶을 위해 자기 생존 시간 카드를 판매하게 된다. 결국, 식량을 조절하기 위한 정부 취지와는 전혀 다른 결과 때문에 생존 시간 배급제는 폐지되고 만다.

2020년 한국에서 1943년 프랑스 작가 에메의 상상 속 세상을 발견한다. ‘시간이 금이다’라는 말은 현실이 되어가고 있다. 시간을 아껴 쓰라는 본래 의미가 아니라, 말 그대로 시간이 경제적 가치를 갖게 되는 것이다. 가난한 이들이 생존 시간 카드를 판매하는 것처럼 사람들은 먹고 살려면 자기 시간을 팔아야 한다. 가족을 건사하기 위해, 또는 내 한 몸 건사하기 위해 언제나 바쁘게 움직여야 한다.

에메의 상상 속 세상에는 ‘쓸모 없음’으로 분류된 이들이 생존 시간을 적게 발급받았다. 그러나 현실 속 그들은 누구보다 열심히, 바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삶을 위해 자기 시간을 판매한 이들은 부족해진 시간을 메우기 위해 커피를 찾는다. 야근하기 위해, 업무를 처리하기 위해, 잠을 깨기 위해 커피는 필수다. 돈을 벌기 위해 다시 나의 시간을 판매하고 그 시간을 커피로 메우는 무한한 삶의 굴레에 갇히게 된다.

   
▲ 시간은 정말 모든 이에게 똑같이 흘러가는 걸까? ⓒ Pixabay

<생존 시간 카드>는 시간의 양극화를 보여준다. 가난한 이들은 시간이 점점 줄어드는 반면, 그들의 시간을 구매한 부자들은 원하는 만큼 더 많은 시간을 누리게 된다. 누군가 ‘생존’을 위해 커피를 찾는다면 어떤 이는 ‘향유’하기 위해 커피를 찾는다. 원두의 원산지를 따져 가며 커피의 풍미를 즐기는 이와 잠을 깨기 위해 커피믹스를 두 봉지씩 타는 이의 삶은 절대 같아질 수 없다.

문제는 그들이 커피를 찾는 주기가 점점 짧아진다는 것이다. 어쩐지 일하면 일할수록 시간은 줄어들고 그럴수록 마시는 커피 양은 늘어간다. 아무리 페달을 밟아도 앞으로 나아가지 않던 꿈속 자전거처럼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제자리에 머물러 있다는 생각이 든다. 오히려 뒤로 가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착각까지 든다. 더 열심히 페달을 밟아보지만 달라지는 건 없다. 시간을 아끼기 위해 커피를 찾지만, 어쩐지 마시면 마실수록 시간이 줄어드는 마법과 같은 경험에 어리둥절할 뿐이다. 그들은 오늘도 커피를 찾는다. 아니, 또 다른 하루를 살아가기 위해 시간을 구매한다.


보들레르가 ‘모든 능력들의 여왕'이라고 말한 상상력이 학문 수련 과정에서 감퇴하는 건 안타까운 일입니다. 저널리즘은 아카데미즘과 예술 사이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생각을 옥죄는 논리의 틀이나 주장의 강박감도 벗어 던지고 마음대로 글을 쓸 수 있는 상상 공간이 바로 이곳입니다. 튜토리얼(Tutorial) 과정에서 제시어를 하나씩 정리하다 보면 여러분만의 ‘상상 사전’이 점점 두터워질 겁니다. (이봉수)

편집 : 오수진 기자

[이나경 기자]
단비뉴스 청년부, 환경부, TV뉴스부 이나경입니다.
따뜻한 세상을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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