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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위대한 쇼맨’
[상상사전] ‘아버지’
2020년 01월 05일 (일) 18:27:01 최유진 기자 gksmf2333@gmail.com
   
▲ 최유진 기자

영화 <위대한 쇼맨> 속 주인공 ‘바넘’은 가난한 양복사의 아들로 태어난다. 고객이던 부잣집 딸과 결혼하는데, 바넘은 늘 열등감과 동시에 오기를 품었다. 공연을 향한 열망을 품고 여러 사업을 시도한다. 훗날 그는 엔터테인먼트 업계의 대부가 된다. 하지만 야망이 컸던 남자는 때로 가족을 저버렸다. 그토록 공연 판을 벌이며 돈을 거둬들인 건, 결국 ‘가족’ 때문이었는데 말이다.

   
▲ 영화 <위대한 쇼맨>에서 P.T. 바넘(오른쪽)은 쇼 비즈니스로 많은 돈을 벌었지만, 가족과 소원한 관계가 되고 만다. 때로 야망이 소중한 존재를 앗아가기도 한다. ⓒ 이십세기폭스코리아

내 부모님이 부부로서 연을 맺으려 할 때 어떤 일들이 벌어졌는지 들은 적 있다. 영화 속 서사와 비슷하다. 당시를 상상해보면 아버지가 ‘바넘’ 같은 처지였다는 게 안쓰럽다. 그러나 가정을 꾸린 뒤 아버지는 영화 주인공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았다. 장인만 보면 이를 바득바득 갈았던 바넘과 달리, 아버지는 어머니 집안에 끔찍이 잘하는 사위였다고 한다. 외할아버지, 외할머니를 보진 못했지만, 지금도 외삼촌이나 이모들이 우리 아버지를 자주 찾고 입 닳도록 칭찬하는 걸 보면 짐작할 수 있다.

아버지는 ‘짧고 굵게’ 떼돈을 버는 바넘 스타일이 아니다. 정년이 가까운 나이지만, 계속해서 자신을 원하는 일터들이 있다. 그게 바로 아버지 스스로에게는 ‘성공’인 것 같다. 여전히 출근하는 게 즐겁다고 하니 말이다. 어머니도 “늙어서도 안 내보내는 데 다 이유가 있지”라고 아버지를 자랑스러워하는 표현을 자주 한다. 하지만 아버지에게 우선순위는 언제나 ‘집’이었다. 직장에 큰일이 있지 않은 이상 저녁 6시면 정확하게 퇴근했다. 저녁은 온전히 우리 삼 남매와 보냈다. 직장인이 아닌 ‘아버지’로서 더 바쁜 사람이었다. 야근도 마다하지 않은 경제발전의 주역인 ‘베이비붐 세대’답지 않았다. 어머니가 “그 시절에 안 잘린 게 용하다”고 말할 정도다. 그건 아마 남다른 ‘성실함’을 인정받아서가 아니었을까.

아버지는 장남으로서 일찍 생계 전선에 뛰어들었다. 살인적인 노동시간을 견디고 새벽에는 독학으로 회계를 공부했다. 책장 하나를 빼곡히 매운 스프링제본 노트가 증명한다. 첫 직장에 다닐 때 너무 힘들다 싶으면 불쑥 고향 집에 내려갔다. 부모들을 만나고 아버지 노트를 펼쳐보면 다시 나아갈 힘이 생겼다. 언젠가 아버지가 “그건 왜 꺼내”라고 물었다. “힘들어서”라고 답했다. 신기한 건, 언니도 이랬다는 거다.

“정직하고 부지런하면 뭐든 돼.” 누군가는 ‘꼰대의 잔소리’라고 여길 수 있지만, 나에게는 ‘아버지의 쓴소리’다. 어릴 때는 바넘처럼 화려한 무대에 서야 성공한 삶이라고 생각했다. 이제는 아버지처럼 나를 필요로 하는 작은 무대라도 계속 설 수 있으면, 그것도 엄청난 성공이란 생각이 든다.

지금까지 우리 사회가 ‘386세대’의 공로를 얼마나 칭송해왔는가? 지금 고위급 공직자들을 보면 대개 386세대다. ‘민주화’를 이뤄낸 주역들은 마땅히 큰 무대에 설 자격이 있다. 그러나 권력을 갖게 된 그들이 청년들에게 보여준 건 무엇인가? 공정을 저버리고 ‘계급 물려주기’, 진영 논리에 매몰돼 ‘편 먹고 싸우기’와 ‘민생 이슈 저버리기’ 등 오히려 무대에서 내려와야 할 일들을 벌이고 있지 않은가? 내 아버지는 60년대에 태어났지만 ‘고졸’에 ‘학생운동’에도 가담하지 않았으니 386세대가 아니다. 하지만 그들보다 더 ‘위대한 쇼맨’이라고 믿는다. 90년대생 최유진에게 몸소 ‘정의’를 보여준 사람이니까.


보들레르가 ‘모든 능력들의 여왕'이라고 말한 상상력이 학문 수련 과정에서 감퇴하는 건 안타까운 일입니다. 저널리즘은 아카데미즘과 예술 사이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생각을 옥죄는 논리의 틀이나 주장의 강박감도 벗어 던지고 마음대로 글을 쓸 수 있는 상상 공간이 바로 이곳입니다. 튜토리얼(Tutorial) 과정에서 제시어를 하나씩 정리하다 보면 여러분만의 ‘상상 사전’이 점점 두터워질 겁니다. (이봉수)

편집 : 박서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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