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기자들의 시선] ⑫

교수신문이 올해의 사자성어로 ‘공명지조’를 뽑았다. 한 몸에 머리를 둘 가진 새가 있었다. 낮에 활동하는 머리는 건강한 음식을 찾아 먹는데, 밤에 활동하는 머리가 질투해 독초를 먹어버렸고 결국 새는 죽고 말았다. 오늘 이 나라를 명징하게 드러내는 말이다. 주위를 돌아보면 정상적인 곳이 하나도 없다. 정치도, 종교도, 법도, 언론도, 학교도, 사회도 다 비정상이다. 이번 주 <청년기자들의 시선> 주제는 ‘이게, 나라냐?’로 정했다. ‘국민, 가치의 법제화, 조각도, 긱경제’ 네 키워드로 다시 국가란 무엇인가, 정의란 무엇인가 묻는다. (편집자)

<키워드 셋, 조각도>

국가는 몽둥이다. 국민을 위협하는 것들이 있다면 두들겨 패거나, 겁을 줘서라도 국민을 보호해야 한다. 국가의 최우선 과제는 외침으로부터 보호다. 충분한 국방력을 갖추고, 외교력을 발휘해 전쟁과 폭력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해야 한다. 다음 과제는 내부의 범죄로부터 국민을 보호하는 것이다. 치안을 안정적으로 유지해 범죄 발생 자체를 낮추고, 범죄 피해가 생기면 복구에 적극 나서야 한다. 외침과 범죄로부터 국민보호는 국가의 기본 의무다.

▲ 외침과 범죄로부터 국민보호는 국가의 기본 의무다. 자유주의와 자본주의가 작동하는 사회에서 국가가 적절히 개입하지 않으면 불평등을 해소할 수 없다. ⓒ 국방부

사회문제와 직결된 사회 양극화

우리나라의 치안은 세계 최고 수준이고, 국방력이나 외교력도 준수하다. 몽둥이의 기능은 이미 충실하게 이뤄지고 있다. 몽둥이의 조건을 갖춘 국가는 무엇을 더 보호할 것인가. 사회의 절대다수를 구성하고 있는 약자들이다. 힘없고 가난한 이들을 권력과 금력으로부터 보호해야 한다. 방법은 잘 짜여진 제도를 통해 국가가 적절히 개입하는 것이다.

강자와 약자가 벌이는 약육강식의 자유경쟁에서 국가가 개입하지 않으면 승자는 명확하다. 사용자와 노동자를 풀어놓고 자유롭게 싸우라고 하면, 승자는 자본가다. 약자인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해 세계 각국은 노동3권을 보장하고 국제노동기구(ILO) 협약을 준수한다. 나아가 조세제도와 복지, 부의 재분배 정책으로 약자에게 최소한의 삶을 보장한다. 국가의 약자보호 노력에도 현실은 만만치 않다. 경제의 자유를 중시하는 미국은 물론이고, 세계적 복지국가인 프랑스에서조차 부자에게 자산이 집중되고 있다. 미국의 1% 부자가 차지한 부는 1986년 23%였으나 2014년에는 39%가 됐다. 프랑스에서는 같은 기간 16%대에서 23%까지 늘었다. 우리나라는 2000년 22%에서 2013년에는 25%로 증가했다.

양극화는 우리 사회의 모든 문제와 연결된다. 저출산 문제의 원인은 다양하지만 핵심 요인은 양극화다. 소득 상위 40% 가구의 출산율은 하위 40% 가구의 두 배다. 안정적 직장 비율이 높은 세종시의 작년 출산율은 1.57명으로 전국 평균의 1.5배 이상이다. 노인자살률도 노인빈곤율과 직결된다. 우리나라 노인빈곤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의 세 배에 가깝다. 학벌의 양극화는 사회 지위의 양극화, 나아가 경제적 양극화로 전이된다. 청소년들은 학벌 획득을 위해 청소년기 전체를 학업에 바칠 수밖에 없다. 당연히 우리나라 청소년 행복지수는 OECD 꼴찌다.

▲ 양극화는 사회 모든 문제와 연결된다. 여전히 소외된 이들은 오늘도 세상의 외면 속에서 죽어가고 있다. ⓒ KBS

대한민국은 예민한 조각도가 돼야 한다. 양극화라는 괴물은 때려 부수거나, 겁을 주는 것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 제도를 섬세하게 조각해야 한다. 아이를 낳고 싶은 나라, 노인이 자살하지 않는 나라, 청소년이 행복한 나라가 되기 위해 양극화 개선은 필수다. 재산세와 종합부동산세의 세율을 높이고, 소득세의 누진비율도 늘려야 한다. 편법적 증여로 세금을 탈루하는 행위도 원천 차단해야 한다. 이렇게 늘어난 세제를 통해 복지지출을 더욱 늘리고 일자리 창출을 지원한다면 양극화를 조금씩 개선해나갈 수 있다.

국가는 섬세한 조각도가 돼라

섬세한 손놀림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양극화 개선은 불가능하다.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은 양극화를 개선하겠다는 올바른 대의를 품었다. 대의가 옳았음에도 소득주도성장이 제대로 정착하지 못한 것은, 섬세하지 못한 정책 탓이다. 아무리 올바른 방향을 지향해도 세밀함이 없으면 소용없는 정책이 된다. 후폭풍이 들이닥치고, 여론이 등을 돌린다. 지금 대한민국이 지향해야 할 가장 중요한 목표는, 양극화를 해소할 시스템과 제도를 예민하게 조각하는 칼이 되는 것이다.

(양동훈 기자)


<키워드 넷, 긱 경제>

새로운 시대는 새로운 상식을 창출한다. 새 시대의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한 조직에서 밀레니얼 세대는 괴롭다. 90년대생은 구시대의 직장 문화를 견디지 못한다. 회식에 불참하고 ‘칼퇴근’을 하는데 왜 눈치를 봐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육체적, 정신적 건강을 이유로 퇴사하는 게 90년대생이다. 기업은 임홍택 작가의 <90년생이 온다>를 읽으며 새 세대를 공부해야 한다. 어디 기업 만인가? ‘긱 경제’ 시대를 맞이한 국가도 새 시대의 상식을 공부해야 한다.

▲ ‘긱 경제’ 시대의 배달노동자들. 긱 경제 시대를 맞아 새로운 노동자를 보호할 새로운 법과 제도가 시급히 요구되고 있다. ⓒ KBS

‘긱 경제’ 시대가 도래했다.

새 시대의 노동자들이 자신들을 보호하지 못하는 환경에 처해 고통받고 있다. 국가는 노동시장을 얘기할 때 정규직과 비정규직만 이야기한다. 통계청의 ‘8월 경제활동인구조사 부가조사’는 지난해 같은 달과 비교해 비정규직이 86만명이나 증가하고 정규직이 35만명 감소한 결과에 주목했다. 정부는 ‘조사방법의 변화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이를 둘러싼 진보와 보수 진영의 논란도 정규직과 비정규직 인식에 머물러있다. ‘비정규직의 대우를 정규직까지 올려야 한다’거나, ‘정규직과 노조를 과잉보호하는 바람에 자영업자가 폐업해 비정규직이 되었으니 노동자 과잉보호 정책을 철폐하라’고 이야기한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구분은 구시대 상식이다. 온라인 플랫폼으로 노동을 공급하는 새로운 시대, ‘긱 경제’ 시대가 왔다. 구시대의 상식으로는 새로 등장한 노동자들을 보호하지 못한다. ‘긱 경제’는 플랫폼을 통해 필요할 때마다 노동을 제공하는 경제구조로, <하버드비즈니스리뷰>에 따르면 오늘날 미국 대졸자 열 중 넷이 ‘긱 경제’ 영역으로 취업하고 있다. 2055년에는세계 노동자 열 중 여섯이 ‘긱 경제’ 노동자가 된다는 예측도 있다. ‘긱 경제’에서는 사람들이 플랫폼과 단기로 계약을 맺어 노동을 제공한다. 노동자는 명목상 사장이지만, 플랫폼의 지시를 받아 자기 노동을 제공하는 디지털 시대의 특수고용노동자다. 구시대의 상식을 적용하면, 명목상 정규직이지만 일하는 모습은 비정규직인 존재가 그들이다. 이들은 국가로부터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

▲ 마르그레테 베스타거 EU 집행위원회 수석 부위원장. 그는 지난 10월 ‘긱 경제’ 노동자들이 권리를 얻을 수 있는 노동조합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 BBC

긱 경제 시대노동자들을 어떻게 보호해야 할까? 플랫폼 노동자들의 노동권 보장으로 ‘사업자 단체’가 ‘플랫폼’과 계약을 제대로 하게 해야 한다. 플랫폼 노동자들도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자신들이 분류되기 힘들다는 것을 알고 단체교섭권을 주장하고 있다. 오토바이 배달 플랫폼 노동자들의 모임 라이더유니온은 국내 1위 음식배달 앱 ‘배달의민족’에 단체교섭을 요구했다. 일부 국가들은 이미 새로운 시대의 상식을 받아들이는 중이다. 미국 워싱턴 주 시애틀 시는 2015년 차량공유 서비스 운전자들의 단결권을 보장하는 조례를 만들었다. 프랑스는 2016년부터 ‘엘 코므리법’ 을 통과시켜 플랫폼 노동자의 노동3권인 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을 인정했다. 유럽연합은 ‘긱 경제’ 노동자들의 노동조합 설립까지 고려중이다. 마르그레테 베스타거 EU집행위원회 수석 부위원장은 지난 10월 플랫폼 업체 노동자들이 그들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조합을 만들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새 노동정책이 시급하다

새 시대가 왔다. ‘긱 경제’ 시대는 새로운 상식과 구조를 요구한다. ‘긱 경제’에서 일하는, 보호받지 못하는 플랫폼 노동자의 시대다. 국가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과거 시대의 상식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대의 노동자들을 보호할 법과 제도를 개발해내야 한다. 국가는 새로운 시대에도 변하지 않는 의무인 ‘국민 보호 의무’를 다해야 하기 때문이다.

(임세웅 기자)


편집 : 윤상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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