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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공화국의 ‘기생충’ 청년
[단비발언대]
2019년 12월 20일 (금) 23:33:56 정재원 기자 elinoone55@gmail.com
   
▲ 정재원 기자

프랑스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에 이어 골든글로브 등 미국 영화상 후보에도 오른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은 양극화한 한국 사회의 모습, 특히 밑바닥 빈곤층의 열악한 주거 실상을 생생하게 보여주었다. 영화의 한 축을 이루는 사장 가족이 ‘높은 동네’의 정원 있는 대저택에 사는 것과 대조적으로 ‘백수’ 가족은 노상방뇨하는 취객의 다리가 창문으로 보이는 반지하에 산다. 한 여름 폭우가 내린 날 부잣집 아이는 정원에서 ‘인디언 놀이’를 하지만, 가난한 집 가족은 침수된 방에서 변기 오물과 뒤섞인 가재도구를 건져 내느라 정신이 없다. 

우리나라에서 반지하, 옥탑방, 고시원 등 이른바 ‘지옥고’에서 살아봤거나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 수백만이라고 한다. 인간의 존엄을 유지하기 힘들 만큼 열악한 환경이지만 다른 곳으로 옮길 형편이 되지 않아 참고 사는 이들이 많다. 2017년 기준 주택보급률이 103.3 퍼센트로 전체 가구 수보다 집이 많은 한국에서 이게 어찌된 일일까. 그것은 소수의 다주택보유자들이 집을 틀어쥔 채 임대업으로 돈벌이를 하고, 가난한 이들이 안심하고 살 수 있는 공공임대주택은 턱 없이 부족한 탓이다. 특히 벌이가 적고 재산이 없는 청년들은 학교나 직장이 있는 도시에 살기 위해 가장 열악한 수준의 ‘지옥고’를 감수하기 일쑤다. 

한국에 집을 여러 채 갖고 ‘불로소득’을 올리는 부자가 많은 이유 중 하나는 부동산 보유세가 낮기 때문이다. 토지자유연구센터 이태경 연구위원에 따르면 2015년 기준 우리나라 보유세 실효세율은 0.16%로 캐나다(0.87%), 일본(0.54%), 영국(0.78%), 이탈리아(0.62%), 미국(0.71%) 등 주요국의 3분의 1에서 5분의 1 수준이다. 집을 여러 채 가져도 세금 부담이 크지 않으니 돈 가진 이들은 기회만 있으면 주택을 사두었다가 시세차익을 얻거나 높은 임대료 수입을 올린다. 이렇게 부동산으로 ‘땅 짚고 헤엄치기’를 하는 사람들 가운데는 국회의원, 고위관료, 재벌기업인, 언론사주 등도 포함돼 있다. 여론 지배력을 가진 이들은 정부가 부동산 보유세를 올리려 할 때마다 반대 목소리를 높였고, 집값을 올릴 부양책이 나오면 쌍수를 들어 환영했다. 

   
▲ 영화 <기생충>에서 반지하에 사는 남매가 화장실 변기 옆에 쭈그려 앉아 윗집 와이파이를 쓸 수 있는지 살펴보고 있다. ⓒ 영화 <기생충>

노무현 정부가 종합부동산세 신설 등으로 보유세를 올리자 이들은 ‘세금폭탄’이라며 공격했다. 이명박 정부는 기준가격 조정 등으로 종합부동산세를 사실상 무력화했다. 박근혜 정부는 ‘빚 얻어 집 사라’ 정책까지 펼치면서 주택가격을 떠받쳤다. 그러는 사이 청년들의 ‘내 집 마련 꿈’은 더욱 멀어지고 연애·결혼·출산을 포기하는 ‘3포 세대’가 늘었다. 4차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기술혁신 등 생산적인 곳에 가야 할 시중자금이 ‘일확천금’을 노리며 부동산시장을 맴도는 것도 불로소득의 ‘꿀맛’이 아주 달기 때문이다. 

정부는 지난 16일 ‘대출은 조이고 세금은 올리는’ 부동산대책을 발표했다. 보유세의 하나인 종합부동산세를 고가의 1주택 소유자의 경우 구간별로 0.1~0.3% 포인트 올려 최고 3.0% 세율을 적용하고, 3주택 이상 보유자와 조정대상지역 2주택 이상 보유자는 0.2~0.8% 포인트 인상해 최고 4.0%를 적용하는 내용이다. 이렇게 올려도 선진국 보유세 수준에 비해서는 한참 낮지만, 다주택자 투기에 제동을 거는 효과는 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부동산 기득권층이 어떤 반대 공세를 펴더라도 정부는 보유세 인상과 공시지가 상향조정을 밀어붙여 집값 거품을 빼야 한다. 그래서 집이 더 이상 ‘고수익 투자 상품’이 되지 않고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공간’으로 자리 잡게 해야 한다. 동시에 저렴한 월세로 오래 살 수 있는 장기공공임대주택을 대폭 늘려 저소득 청년 등 주거 약자들을 지원해야 한다. 그래야 부모 집에서 독립을 못하는 ‘기생충’ 청년도, ‘지옥고’를 못 벗어나는 우울한 청춘도 크게 줄어들 수 있을 것이다. 


편집 : 유연지 PD

[정재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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