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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의 노예가 주체적 인간이 되려면
[씨네토크] 당신의 욕망을 묻는 영화 ‘더 룸’(The room)’
2019년 11월 11일 (월) 15:25:15 장은미 기자 josinrunmi@naver.com

“얘가 돈 무서운 줄 모르네.”

기억도 가물가물한 어린 시절, 아니 성인이 되어서도 종종 엄마에게 이런 핀잔을 들었다. 용돈을 받으면 저금해 두었다가 쓰는 동생과 달리, 나는 늘 갖고 싶고 하고 싶은 게 많았다. 나는 욕망의 노예였다.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 대부분이 겪는 결핍과 욕망의 딜레마는 크게 다르지 않다.

'도깨비 방망이'와 같은 방이 있다면

   
▲ 영화에서 멧과 케이트는 말하면 뭐든 만들어주는 특별한 ‘방’에서 물질적 쾌락을 마음껏 즐긴다. Ⓒ 퍼스트런

무명 예술가 맷(케빈 얀센스 분)과 생계형 번역가 케이트(올가 쿠릴렌코 분) 부부가 외딴 시골 마을로 이사 온다. 귀신이 나올 것 같은 낡고 더러운 집을 정리하면서 둘은 가난하지만 마음만은 풍요롭다. 그러다 ‘와인 한 병 더 마시면 좋겠네’라고 읊조린 말이 현실이 되는 숨겨진 방을 발견한다. 맛있는 음식, 아름다운 드레스, 반짝거리는 보석, 유명한 화가의 예술 작품, 백만 달러 등등 말만 하면 눈앞에 나타난다. 도깨비 방망이 같은 ‘방’(The room)에서 둘은 이전까지 느껴보지 못한 물질적 풍요로움을 만끽한다. 한 푼이 아쉬워 번역을 해왔던 케이트는 일도 때려치운다. 노동 없이 누리는 자본의 축복을 신나게 즐기지만, 한편으로는 말만 하면 생기는 물질에 허무함을 느끼기도 한다. 방에서 만든 수많은 지폐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집안 곳곳에 아무렇게나 나뒹군다.

당신의 집에 말만 하면 무엇이든 만들어주는 방이 생긴다면, 당신은 어떤 소원을 빌까? 평범한 사람이 내 집 마련을 하려면 48년이 걸리고, 조물주보다 건물주를 동경하는 사회다. 10억을 주면 감옥에도 다녀올 수 있겠다는 청소년들도 있다. 주말에 서울 청량리역을 오갈 때마다 복권집 앞에 길게 늘어선 줄을 보며 복잡한 생각이 든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간의 욕망은 더 많은 돈을 갖는 것 그 자체가 아닐까? 돈을 버는 노동의 과정은 천대받는다. 사람들은 돈이 돈을 낳는 꿈같은 행운을 바란다. '돈 많은 백수'가 꿈인 사람들의 욕망을 욕할 수만은 없다.

원하는 것을 다 갖는 사람이 더 위험하다

“원하는 것을 가지지 못하는 사람보다, 원하는 것을 다 갖는 사람이 더 위험해.”

그 방의 비밀을 알고 있는 수수께끼의 인물인 존 도(John Doe)는 맷에게 이렇게 말한다.

   
▲ 존 도의 말은 의미심장하다. 그의 이름을 우리말로 옮기면 신원미상의 사람, '김아무개' 정도로 의역할 수 있다. Ⓒ 퍼스트런

존 도의 말이 저주라도 된 것일까? 물질의 허무함을 자각한 순간, 이들 부부는 새로운 욕망을 품는다. 그들은 여러 번 아이를 가지기 위해 노력했지만 실패했던 터다. 케이트는 그 방에다 자기 ‘소원’을 말한다. 케이트는 열 달 동안 생명을 힘겹게 품고 고통스러운 출산을 이겨내는 희생 없이 엄마가 된다. 아들 ‘셰인’은 엄마의 고통과 함께 ‘탄생’한 것이 아니라, 그냥 말 한마디로 ‘생겨난’ 존재다. 무엇이든 다 들어주는 전지전능한 방이 사람마저 창조하면서 극적 긴장감이 고조된다.

존 도라는 신원미상의 남자는 예전에 이 집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의 범인이다. 이 집에서 살해된 이들은 부부로, 맷과 케이트처럼 아기를 원했다. 그렇게 태어난 존 도는 제 손으로 부모를 죽였다.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존 도의 비밀을 알게 된 맷과 케이트는 자신들도 셰인에게 죽을 운명임을 감지한다. 그들이 살기 위해서는 아들을 죽여야 하는 딜레마에 놓인 것이다.

죽어가는 줄도 모르고 뛰어드는 '불나방'처럼

   
▲ 그 방에서 만들어진 물건들은 집밖으로 나오면 먼지가 된다. 물질의 허무함이 이런 것일까? Ⓒ 퍼스트런

방의 비밀은 또 있다. 방에서 만든 물건들이 집밖에서는 모두 먼지로 변한다. 셰인도 같은 운명이다. 다만 물건과 달리 인간 셰인은 집밖에서 아기가 순식간에 어린이가 되고 다시 청년이 되는 과정을 거친다. 언제 먼지가 될지 모르는 셰인의 마음속에 집 밖에서도 살아갈 수 있는 인간이 되고 싶은 욕망이 꿈틀거린다. 온전한 주체성을 가진 인간이 되려면 존도가 그랬듯, 자기 부모를 죽여야 한다.

영화는 이 지점에서 프로이드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모티브를 끌어들인다. 셰인은 어머니를 독점적으로 소유하고 싶은 욕망으로 점점 폭력적인 존재로 변해간다. 아버지를 죽이고 신비로운 방에서 어머니와 행복하게 살아가겠다는 계획을 세우지만 실패한다. 빗나간 그의 욕망은 죽음을 앞당길 뿐이었다. 이것이 셰인이 열망하던 욕망의 대가였다.

먼지가 되어 세상에서 사라질 인간들은 무엇을 위해 그리도 아등바등 살아가는 걸까? 셰인의 모습은 욕망을 이루기 급급해 자신이 죽어가는 것도 모르고 불에 뛰어드는 불나방과 같다. 문득 허무함이 물밀 듯 밀려와 눈물이 왈칵 쏟아질 뻔했다. 나도 모르게, 욕망 앞에서 내가 다치고 망가진 적은 없었을까? 또 누군가를 아프게 한 일은 없었나? 욕망 앞에 폭력적이고 비인간적인 일도 마다하지 않는 인간들은 우리 사회에 숱하게 많다.

당신의 욕망은 안녕하십니까

욕망 앞에 나약한 인간, 당신은 무엇을 위해 사는가? 영화는 관객들에게 묻는다. 어제보다 더 죽음에 가까워진 오늘, 당신의 욕망은 어떤가? 행여 당신을 집어삼키고 있지는 않은가? 타인의 불행을 밟고 일어서진 않았는가? 욕망에 사로잡혀 괴물이 되어가고 있지는 않는가?

   
▲ 영화 <더 룸>은 인간의 욕망을 말하는 영화다. 감독은 우리가 욕망 때문에 자신이 타 죽는 줄도 모르고 불에 뛰어드는 '불나방'이 아닌지 묻는다. Ⓒ 퍼스트런

결핍이 없으면 욕망도 없다. 불완전한 인간은 결핍을 채워나가며 살아있음을 경험한다. 예술을 추구하는 것부터 인간사회 곳곳을 아우르는 각종 결핍을 채워 나가려는 인간의 노력은 우리 사회를 발전시켰다. 결핍이 사라진 유토피아는 욕망의 죽음을 의미한다. 거기엔 결핍을 채워 나가려는 인간의 땀이 발 디딜 자리가 없다. 죽음을 향해 가는 우리 삶의 결핍이 매일 매일을 의미 있게 만든다.

거저 키운 아이는 세상에 없다. 부모들은 제 피와 살을 내어 자식들을 '인간'으로 키워나간다. 부모의 희생 속에 독립적 인간이 된 우리는 사회구성원으로 살아간다. '밑 빠진 독'과 같은 욕망 항아리에서 결핍의 구멍은 우리가 끊임없이 앞으로 달려 나가게 하는 탈출구요 유입구이다.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인간소외의 광풍 가운데서 내 삶의 주인이 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결핍을 올바르게 채워 나가는 인간다움에 있지 않을까?


 편집 : 윤재영 PD

[장은미 기자]
단비뉴스 환경부 장은미입니다.
머리는 차갑게, 가슴은 뜨겁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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