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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금 못내 교도소 노역에 가족 붕괴도
[단비인터뷰] ‘생계형 범죄자’ 돕는 장발장은행장 홍세화
2019년 08월 25일 (일) 23:07:53 오수진 기자 rainmaker-sj@daum.net

“장발장은행 설립은 한국사회가 ‘불공정하다’는 것에서 시작됐죠. 한국사회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굉장히 무관심하고, 심지어 국가조차도 아주 냉혹해요. 참 불평등한 사회예요.”

군사정권의 탄압을 피해 망명객으로 살아가는 삶을 담은 책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1995)>로 잘 알려진 홍세화(73) 작가가 ‘은행장’이 되어 동분서주하고 있다. 벌금을 못내 구치소·교도소에서 노역을 해야 할 처지인 생계형 범죄자들에게 벌금 낼 돈을 빌려주는 장발장은행이 그의 일터다. 지난 6월 5일 서울 마포구 ‘소박한 자유인’ 사무실에서 직접 만나고 지난 17일 문자로 추가 인터뷰해 ‘은행장 홍세화’의 생각을 들었다.

‘병원비 벌려고 예비군 불참’ 등 가난이 낳은 죄

   
▲ 자신이 이끄는 토론모임인 ‘소박한 자유인’의 서울 마포 사무실에서 <단비뉴스>와 만난 홍세화 장발장은행장. ⓒ 오수진

빅토르 위고의 소설 <레미제라블>에서 빵 한 덩이를 훔쳤다가 장기수가 된 주인공의 이름을 빌려온 장발장은행은 돈 없고 힘없고 ‘운’조차 없는 이들의 재활을 돕는 것을 목표로 한다. 사기꾼 등 죄질이 나쁘거나 위험한 범죄자는 빼고, 어쩔 수 없는 상황 때문에 벌금형을 받고 돈이 없어 발을 구르는 사람들에게 300만원까지 대출을 해준다. 홍 은행장은 “집안에 어르신이나 어린아이가 있어 노역할 처지조차 못 되는 이들에게, 또 사회에 처음 진출한 청년이 교도소부터 경험하지는 말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돈을 빌려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장발장은행의 실무를 맡고 있는 인권연대에 따르면 대출 받은 사람 중에는 학비를 벌기 위해 편의점에서 일하던 중 손님이 두고 간 할인쿠폰으로 삼각 김밥을 사 먹었다가, 임금 다툼 중이던 업주가 ‘절도’로 고발하는 바람에 벌금을 물게 된 대학생도 있다. 휴대폰 요금을 갚지 못해 벌금형을 받은 청년, 어머니 병원비를 벌기 위해 예비군 훈련에 불참했다가 벌금을 물게 된 젊은이도 있다.

현행법은 범죄자의 빈부격차를 고려하지 않고 같은 범죄에 같은 금액의 벌금을 부과하는 ‘총액벌금제’인데, 벌금을 못 내면 구치소나 교도소로 가 노역을 해야 한다. 장발장은행은 제도권 금융회사가 외면한 이들에게 무담보·무이자로, 신용조회 없이 벌금 낼 돈을 빌려준다. 장발장은행이 설립된 2015년부터 6월 이후 지금까지 696명이 총 13억여원을 대출 받아 ‘감옥살이’를 면했다. 이 중 348명은 대출금 중 일부를 갚았고 113명은 전액 상환했다고 홍 은행장은 설명했다. 이들에게 대출해주는 돈은 모두 개인 또는 단체의 기부금이다.

벌금 못내 노역장 유치되는 사람 연 4만여명

이렇게 돈을 빌려 교도소행을 면한 사람들은 자신이 받은 도움을 다른 사람들에게 돌려줄 수 있도록 열심히 살겠다는 각오를 다진다. 한 대출자는 감사편지에서 “단순 벌금 70만원을 못내 전국 지명수배자가 될 뻔했는데, 아무 조건 없이 돈을 빌려 주어 수배나 노역장 신세를 면했다”며 “앞으로 형편 닿는 선에서 다른 장발장들에게 도움이 될 일에 관심을 갖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대출이 필요한 전체 대상에 비해 장발장은행이 도움을 줄 수 있는 인원은 매우 제한적이다. 홍 은행장은 “가족·친지에게조차 돈을 빌릴 수 없어 자유를 빼앗기는 사람이 연간 4만여명(벌금 미납 노역장 유치 2016년 4만2668건)에 이르는 현실을 동시대인들이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 장발장은행에서 벌금 대출 지원을 받은 사람들이 은행과 후원자들에게 보낸 감사편지. ⓒ 인권연대

“한국사회에서 가난이 어떤 의미인지 성찰이 필요합니다. 돈 많은 사람에게 100만~200만원은 아무것도 아닐 수 있지만, 가난한 자에게는 ‘자유를 빼앗기는 것’이 될 수 있기 때문이죠.”

그는 ‘무전유죄(無錢有罪·돈이 없으면 죄가 있음)’의 ‘유(有)’를 ‘유혹할 유(誘)’로 해석해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환자가 병원비 낼 형편이 안 돼 몰래 달아나다 걸리거나, 생계를 위해 배달 오토바이 보험 없이 새벽 우유배달에 나섰다 단속에 걸린 것 등은 ‘결핍의 지속’이 범죄를 끌어당긴 사례라는 것이다. ‘송파 세모녀 사건’처럼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을 위한 복지제도, 즉 사회안전망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다는 것은 가난한 자들을 보는 사회의 시선이 냉혹함을 의미한다고 그는 지적했다.

홍 은행장은 “한 국가의 법과 제도는 국민의 수준을 크게 벗어나지 못하는데, 한국사회는 가난한 사람이나 약자에 대해 사람들의 관심이 매우 부족하다”며 “국회가 가난한 이들을 대신해 법과 제도를 제대로 만들어야 하는데, 사회적 발언권이 없는 사람들의 말은 무시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대통령 공약 ‘일수벌금제’ 도입 전망 어두워

홍 은행장은 장발장은행이 필요 없는 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범죄자의 소득 수준에 따라 벌금을 달리 정하는 ‘일수벌금제(日收罰金制)’가 도입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현재 독일·스웨덴·핀란드 등에서 시행하고 있는 이 제도가 도입되면 부자는 무거운 벌금을 물고 가난한 사람은 형편에 맞는 벌금을 물 수 있기 때문에 부유층의 ‘황제노역’ 시비도 사라지고 빈곤층의 강제노역도 줄어들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도 대선 때 일수벌금제 도입을 약속했다.

홍 은행장은 그러나 “정부·여당의 의지나 자유한국당의 행태를 보면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법조계 인사들은 사람들의 수입을 일일이 확인하기 어렵다며 일수벌금제를 반대하고, 정치권은 선거 때 외에는 가난한 자들의 일에 관심이 없다”고 비판했다.

   
▲ 2015년 2월 장발장은행의 출범을 앞두고 서울 장충동 만해엔지오교육센터에서 열린 기자회견. 왼쪽부터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 송영삼 전 광주지방교정청장, 최정학 방송통신대 교수, 홍세화 은행장. ⓒ 인권연대

홍 은행장은 수많은 ‘장발장’을 낳고 있는 우리 사회의 소득불평등을 완화하기 위해 기본소득제 도입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제시했다. 그는 “송파 세 모녀는 물론, 한국의 장발장들에게 한 사람당 월 30만원의 기본소득이 있었다면 절대 다수가 극단적인 유혹에서 벗어 날 수 있었을 것”이라며 “사람이 여유가 생기면 돌발적인 폭력이나 자살 등도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국민 모두에게 월 30만원의 기본소득을 보장하기 위해 국내총생산(GDP) 중 세금과 사회보장기여금의 비중을 말하는 국민부담률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34%대로 높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재 우리나라의 국민부담률은 26%대다.

홍 은행장은 “현재 장발장은행 대출 신청자 중 20%밖에 돈을 못 빌려주고 있다”며 “대출 심사를 하다 보면 ‘일정하게 주어지는 기본소득이 있었다면 애초부터 생계형 범죄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 장발장은행의 대출심사위원들이 지난 2월 27일 신청자들의 서류를 살펴보고 있다. 장발장은행은 신청자 중 가장 시급한 이에게 무담보·무이자로 신용조회 없이 최대 300만원까지 벌금 낼 돈을 빌려 주는데, 실제 지원을 받는 사람은 전체 신청자의 20% 정도다. ⓒ 인권연대

“장발장은행 존재 자체가 정치권 향한 시위”

가난한 집의 생계를 책임지던 사람이 몇십만원, 몇백만원의 벌금 때문에 노역장에 갇히면 그에게 기대 살던 가족들도 함께 무너진다. 법은 이런 현실을 보듬지 않으며, 정치권도 선거 때만 반짝 관심을 가질 뿐이다. 홍 은행장은 “장발장은행은 존재 자체로 정치권과 법조계에 대한 시위”라며 “기본소득이 주어지고, 일수벌금제가 도입돼 벌금액이 적어지면 장발장은행은 문을 닫을 것”이라고 말했다.

홍세화 은행장은 조작된 공안사건으로 밝혀진 1979년 남민전(남조선민족해방전선준비위원회) 사건에 연루돼 프랑스로 망명했다가 2002년 영구 귀국했다. 국내에서는 <한겨레> 기획위원,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판 편집장을 지냈으며, 계간지 <말과활>을 창간했다. 2011년 진보신당(노동당 전신)의 당대표를 지내기도 했다.


편집 : 유연지 PD

[오수진 기자]
단비뉴스 시사현안팀, 지역농촌부 오수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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