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사전] ‘말’

▲ 양동훈 기자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타격의 신’으로 불린 테드 윌리엄스는 은퇴경기에서도 홈런포를 날렸다. 모든 관중이 기립박수를 쳤지만, 그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덕아웃으로 들어갔다. 그가 관중의 환호에 모자를 벗어 답례한 것은 딱 한 번이었다. 신인 시절 그는 홈런을 치고 기뻐하며 관중들과 호흡했다. 바로 다음 날 언론들은 건방진 신인이라며 그를 모욕했고, 이후 다시는 그가 모자를 벗는 모습을 볼 수 없었다. 그는 은퇴경기에서도 그 고집을 꺾지 않았다. 한 작가는 이를 보고 ‘신은 편지에 답장하지 않는 법’이라는 발랄한 문장으로 그의 은퇴를 기렸다. 맞는 말이다. 신은 편지에 답장하지 않는다.

예수는 골고다 언덕에서 십자가에 묶인 채 “주여, 어찌하여 저를 버리시나이까”라고 외쳤다. 예수를 주와 동일한 존재로 보는 기독교와, 예수를 거짓 예언자라 보는 유대교, 또는 타 종교나 무신론을 믿는 사람들 사이에서 이 발언의 의미는 모두 다를 것이다. 어떻게 해석하든 확실한 것은 있다. 신이 인간인 예수의 고통에 응답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어느 종교의 신이든 교인들의 외침에 어떤 말도 전해주지 않는다. 전세계에서 천주교도들이 학살당할 때도, 이차돈이 목을 베일 때도 그랬다. 심지어 종교의 이름을 빌린 악행이나 학살에도 신은 말이 없다. 십자군전쟁 때도, IS가 날뛰던 시기에도 여전히 신은 영원한 침묵 속에 있을 뿐이다.

▲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는 무슨 이야기를 들었을까. © Pixabay

신이 말없는 동안, 교인들은 시끄럽게 떠들어댔다. 많은 인구를 바탕으로, 무력으로 침탈하는 종교가 세를 불렸다. 신의 침묵을 닮은 종교들은 빠르게 사라져 갔다. 자연을 신의 선물이라 여기던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90% 이상이 죽었다. 근대까지만 해도 중국인 대부분이 믿었던 도교는 조용히 자취를 감췄다. 일본의 신토(神道)는 우리나라 유교가 그러하듯 생활양식의 일부로 변해갔다. 신이 입을 다문 사이, 교인들은 신의 권능이 아닌 현실의 권력에 기댔다. 중국 불교는 정부와 결탁해 부흥의 길을 걷는 중이다. 우리나라 종교단체들은 정부에 압력을 넣거나 심지어 정당을 만들고 출마하기도 한다. 표를 가지고 현실 정치를 협박하거나, 현실 정치에 기생한다. 신이 말이 없는 대신, 현실에서 목소리만 키운 종교들이 득세한다. 극복할 수 없는 종교의 역설이다.

신은 언제나 말이 없었고, 지금도 말이 없으며, 앞으로도 말이 없을 것이다. 현실의 종교인이란 신의 침묵을 빌미로 신을 참칭하며 떠드는 자들인지도 모른다. 그들은 신의 침묵과 가장 어울리지 않는 방식으로 사람들을 꾀고, 그를 통해 각종 이권을 획득하려 든다. 단 한번도 정답을 내려준 적이 없는 신이 종교인의 입을 빌려 정답을 준다면, 그는 신이라 불릴 자격도 없는 존재일 것이다. 진짜 정답을 찾고 싶다면 신에게서 벗어나라. 신의 이름을 빌린 거짓말을 듣지 말고, 신과 관계없는 이야기를 하는 진짜를 찾아라. 침묵하는 신 대신, 진정성을 가진 인간에게서 정답을 찾아야 한다. 토론하고, 쟁명하고, 부딪혀서 답을 찾아라. 종교를 믿는다면, 종교인에게 의존할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고민하고 탐구해야 한다. 정답을 찾을지는 결국 스스로에게 달렸다. 어차피 신은 당신에게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을 테니까.


보들레르가 ‘모든 능력들의 여왕'이라고 말한 상상력이 학문 수련 과정에서 감퇴하는 건 안타까운 일입니다. 저널리즘은 아카데미즘과 예술 사이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생각을 옥죄는 논리의 틀이나 주장의 강박감도 벗어 던지고 마음대로 글을 쓸 수 있는 상상 공간이 바로 이곳입니다. 튜토리얼(Tutorial) 과정에서 제시어를 하나씩 정리하다 보면 여러분만의 ‘상상 사전’이 점점 두터워질 겁니다. (이봉수)

편집 : 최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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