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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사는 법과 사랑하는 법
[상상사전] '말'
2019년 10월 02일 (수) 13:09:42 정소희 PD ubersophie@gmail.com
   
▲ 정소희 PD

“너네 아빠는 말이 안 통해.” 엄마가 부엌에서 말했다. 아빠가 또 밥을 한 솥 가득 해두고 나간 모양이다. 아빠는 요리를 좋아하지만 양 조절에 늘 실패한다. 문득 며칠 전 본 유튜브 영상이 생각난다. 대화가 안 통하는 국제 커플의 데이트 브이로그(Vlog)다. 서로의 언어는 물론 영어도 모르는 연인은 눈빛과 짧은 인사말을 주고받으며 소통한다. 40여년간 함께 산 부모의 불통과 이제 막 사랑을 시작한 연인의 ‘불통 같은 소통’은 무엇이 같고 다를까? 사랑에서 ‘말’은 얼마나 중요한가?

문학평론가 신형철은 저서 <몰락의 에티카>에서 사랑하는 사람의 취향은 알 수 있지만 ‘느낌’은 알 수 없다고 썼다. 연인이 좋아하는 커피의 종류는 알지만 연인이 커피 향을 맡을 때 느낌은 모른다. 다르게 느끼는 두 사람은 느낌을 교류할 때 연인이 되고, ‘느낌의 공동체’를 형성한다. 사랑하는 이들만이 각자가 만든 느낌의 세계를 느낌의 공동체로 확장해낸다. 나는 신형철의 아름다운 문장에 한 단계를 보태고 싶다. 소통 단계다. 연인이 되기 위해 느낌을 교환할 때, 사람들은 말로 소통한다. 나를 말하고 상대를 듣는 시간이 있어야 느낌의 공동체를 지을 수 있다. 사랑하려면 느낌을 교환하는 ‘말’이 필수인 듯하다.

   
▲ 나를 잘 알고 타인을 존중하면 사랑에서 언어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 Jason Leung on Unsplash

그러나 <사랑의 단상> 속 사랑은 말 너머에 자리잡는다. 롤랑 바르트는 이 책에서 사랑에 관한 담론을 언어적, 철학적으로 풀어냈는데 ‘말로 풀어쓰기 힘든 사랑’에 관해서도 썼다. 그는 ‘알 수 없는 것’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이해하고 정의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고 말한다. 대상을 사랑할수록 이해하게 된다는 말은 틀렸다. 우리는 누군가를 사랑할수록 정의하기 어렵다는 사실에 직면한다. 대상을 정의하는 데 실패한 사람은 자신에게 시선을 돌린다. 스스로에게 ”당신을 알려고 하는 나는 무엇을 원하나”라고 묻는다. 사랑하는 사람에 관해 말하는 일은 어렵지만, 나의 마음은 비교적 쉽게 이야기할 수 있다. 어차피 두 사람이 맺는 관계이므로 상대방에 관해 표현하는 일이 어렵다면 그 사람의 행동이 내게 작용하는 바를 이해하면 된다. 나를 들여다보면 상대와 우리가 보인다.

나의 부모, 유튜브 속 국제 커플, 신형철과 롤랑 바르트를 엮으면 사랑에서 말이 가지는 중요성을 정리할 수 있다. 롤랑 바르트에 따르면, 엄마와 아빠는 아마 오랫동안 말이 안 통한 부부다. 40년간 함께 살아도 맞추기 어려운 부분은 개인의 고유한 특성이므로 내가 이해할 수 없음을 인정해야 한다. ‘말이 안 통한다’는 엄마의 푸념에도 둘이 함께 사는 이유는 각자 고유한 부분을 인정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유튜브 속 국제 커플은 말로 상대를 이해하지 않고, 느낌의 공동체를 만들었다. 소통은 느낌의 공동체를 형성하는 데 필수적이지만, 반드시 언어일 필요는 없다. 본디 상대를 완벽히 표현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커플은 자기 언어로 말할 수밖에 없지만 (아마) 스스로를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상대를 사랑한다는 확신을 가질 것이다. 적어도 사랑에 있어서 ‘통하지 않는 말’은 불가능의 이유가 될 수 없다. 당신이 사랑에 고전하고 있다면, 아마 스스로를 모르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보들레르가 ‘모든 능력들의 여왕'이라고 말한 상상력이 학문 수련 과정에서 감퇴하는 건 안타까운 일입니다. 저널리즘은 아카데미즘과 예술 사이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생각을 옥죄는 논리의 틀이나 주장의 강박감도 벗어 던지고 마음대로 글을 쓸 수 있는 상상 공간이 바로 이곳입니다. 튜토리얼(Tutorial) 과정에서 제시어를 하나씩 정리하다 보면 여러분만의 ‘상상 사전’이 점점 두터워질 겁니다. (이봉수)

편집 : 김정민 기자

[정소희 PD]
단비뉴스 미디어콘텐츠부, 지역농촌부 정소희입니다.
춤을 추며 절망이랑 싸울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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