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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계가 예던 길’을 따라 걸으면 남는 것
[강연] <퇴계의 길을 따라> 저자 김병일
2019년 09월 22일 (일) 07:53:29 최유진 기자 gksmf2333@gmail.com

“매일 가서 걷는 도산서원 길 중턱에 퇴계 선생의 도산십이곡이 새겨진 시비가 있습니다. 거기 시를 보고 퇴계가 추구하던 길을 우리가 가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게 됐습니다.”

<퇴계의 길을 따라>를 쓴 김병일(74) 도산서원선비문화수련원 이사장이 20일 저녁 서울 경복궁 영추문 앞 역사책방에서 독자들과 만났다. KBS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에서 용식(강하늘 역)이 동백(공효진 역)을 보고 반하는 '역사적인' 책방이기도 하다. 이곳에서 펼쳐진 저자 특별강연은 지난 7월 책을 발간한 이래 대구와 부산을 거쳐 서울에서 다섯 번째다.

   
▲ 김병일 도산서원선비문화수련원 이사장이 역사책방에서 책 <퇴계의 길을 따라>와 관련한 특강을 하고 있다. ⓒ 최유진

장관까지 지낸 분이 안동으로 ‘낙향’한 사연

김 이사장은 퇴계의 선비정신을 널리 알리는 데 앞장서고 있다. 그는 경북 상주에서 태어나 서울대 사학과와 행정대학원에서 공부했다. 1971년 공직 생활을 시작해 통계청장, 조달청장, 기획예산처장관 등을 거치며 2005년까지 경제관료로 봉직했다. 이후 2008년 ‘제2 고향’인 경북 안동으로 낙향해 한국국학진흥원장과 도산서원 선비문화수련원 이사장을 맡아 11년 넘게 퇴계 선생을 기리고 그의 정신을 전하는 일에 몰두하고 있다. 그는 2012년에 <퇴계처럼>, 2015년에 <선비처럼>를 저술했다. 

지난 4월 그는 ‘퇴계의 마지막 귀향길 재현단’을 꾸려 서울 봉은사에서 안동 도산서원까지 800리 대장정에 나섰다. 11일간 여정을 주관한 ‘도산서원참공부모임’ 회원들은 퇴계학을 공부하는 이들이다. 육칠십대 학자들까지 몸소 장정에 참여해 퇴계가 예던 길을 함께 답사하며 무료 강연과 해설 등 각종 행사를 펼쳤다. 그는 “이 나이쯤 되니 같이 해외여행 가자는 제안도 받았지만 퇴계학 공부하는 동지들과 서울에서 안동까지 같이 걸으니 훨씬 더 뿌듯한 시간이었다”고 회고했다.     

   
▲ 퇴계 정신을 배우려는 사람들이 모여 책 <퇴계의 길을 따라> 저자 특별강연을 듣고 있다. ⓒ 최유진

시대가 달라져도 ‘인간의 길’이 달라질까

고인도 나 못 보고 나도 고인 못 뵈
고인을 못 뵈도 예던 길 앞에 있네
예던 길 앞에 있거든 아니 예고 어쩌리

김병일 이사장은 도산십이곡 중 9곡을 청중과 함께 낭송했다. 김 이사장은 “퇴계 선생은 공자와 주자를 못 뵀고 그 분들도 퇴계를 못 봤다”며 “예던 길이란 본뜻이 ‘다니던 길’이기 때문에 시대가 차이 나더라도 그 분들이 살아온 길을 갈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도산십이곡의 9곡을 자기 처지에 맞게 바꾸어 쓰기도 했다. 

퇴계도 나 못 보고 나도 퇴계 못 뵈 
퇴계를 못 뵈도 그의 가르침 알 수 있네
그 가르침 알 수 있거든 아니하고 어쩌리

   
▲ 김병일 이사장은 “퇴계 선생은 배운 것을 실천하는 ‘지행병진’(知行竝進)의 삶을 살았다”고 말했다. ⓒ 최유진

물질이 풍요로울수록 가난해지는 정신 

“세상이 풍요롭고 편리해졌는데 왜 불행한 사람이 늘고 반목과 갈등이 날로 심해집니까? 이 문제의 동기는 두 가지로 요약해서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하나는 저 밖에 모르는 이기심, 그리고 돈이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는 물질만능주의 때문입니다.”

퇴계는 오십대에 계상서당에서, 육십대에 도산서당에서 착한 사람을 길러내려고 스스로 솔선수범하며 가르쳤다. 우리말 시조인 ‘도산십이곡’을 지은 데는 퇴계가 사람을 차별하지 않고 깨우치게 하려는 마음이 담겼다. 단순한 지식 전달만으로는 안 되며, 스승이 먼저 아는 걸 실천하고 제자가 이를 본받을 때 가능하다고 봤다. 

김 이사장은 “나이 많은 사람이 먼저 젊은 사람을 존중하고 다가가려는 태도를 갖춰야 한다”며 “젊은이도 늙은 사람의 핸디캡을 이해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김 이사장은 청년들에게 노년층의 육체적인 어려움을 헤아려줄 것을 당부했다. 책에서는 퇴계에게 정중히 가르침을 청한 율곡의 사례를 제시하고 있다.  

“그 많은 법조인이 왜 필요합니까?”

“퇴계 선생은 세상에 착한 사람이 많아지길 염원했습니다. 착한 사람이 많아지면 도둑이 있겠습니까? 남을 헐뜯는 사람이 있겠습니까? 경찰서가 필요합니까? 그 많은 법조인이 필요합니까?”

   
▲ 김병일 이사장은 “나이 많은 사람이 어린 사람에게 존중하는 태도를 보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 최유진
   
▲ 강연이 끝난 뒤 김병일 이사장은 독자들을 위한 책 사인회를 열었다. ⓒ 최유진

“창의력은 선비정신에서 나올 수 있다”

김병일 이사장은 <단비뉴스> 인터뷰에서 “앞으로 살아갈 날이 많은 젊은 분들이나 사장님, 교수님 같은 영향력 있는 분들이 이 책을 많이 읽어주시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4차산업혁명 시대에 창의력이 필요한데 바로 선비정신을 배운 인품에서 나올 수 있다”며 “당장 취업하는 데 급급하기보다 오래 쓰임새가 있는 사람이 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요즘 퇴계도 재산과 노비가 많았다는 점을 지적하는 시각도 일부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라는 질문에는 단호하게 대답했다. 

“퇴계선생은 상처를 해 두 번 결혼했기 때문에 나중에 재산을 좀 많이 물려받긴 했습니다. 그러나 평생을 검소하게 살았고 노비의 자식에게도 글을 가르칠 정도로 애민정신이 있던 분이었는데… 재산형성 과정과 그의 생애를 제대로 알고 나면 함부로 말할 수 없을 겁니다.”

   
▲ 특강이 끝난 뒤 도산서원선비문화수련원 지도위원들이 역사책방에 딸린 ‘사랑방’에서 뒤풀이를 하고 있다. ⓒ 최유진
   
▲ 도산서원선비문화수련원의 지도위원이 황진이의 시조 ‘청산리 벽계수야’를 열창하고 있다. ⓒ 최유진

선비정신 배우는 ‘길 위의 안내서’  

지난 7월 도산서원을 포함한 한국의 서원 9곳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됐다. 서원에 깃든 정신문화유산이 세계적으로도 주목을 받게 된 것이다. 김병일 이사장은 도산서원을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온 방법을 다른 서원들도 공유하는 길을 모색하고 있다. 김 이사장은 “늙어서 더 무엇을 공부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면서도 “대신 퇴계 정신을 어떻게 하면 더 재미있게 효과적으로 사람들에게 전달할 수 있을지 고민할 것”이라고 말했다. 계속해서 ‘전달자’ 임무를 다하겠다는 다짐이다. 

<퇴계의 길을 따라>는 퇴계가 평생 실천한 선비정신을 배울 수 있는 ‘길 위의 안내서’라 할 수 있다. 저자는 삶의 의미를 절실히 되새기고 싶다면 인간 존중과 배려의 향기가 넘치는 도산서원을 직접 방문해볼 것을 권한다.

   
▲ <퇴계의 길을 따라>는 김병일 이사장이 낸 세 번째 책으로, 퇴계가 추구한 ‘사람의 길’을 안내하는 인문교양서다. ⓒ 나남

편집 : 최유진 기자 
 

[최유진 기자]
단비뉴스 편집국장, TV뉴스부, 지역농촌부, 기획탐사팀 최유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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