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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재난보도’는 ‘보도재앙’이다
안전불감증 타파와 올바른 재난보도를 위한 ‘2∙18안전문화포럼’
2018년 11월 25일 (일) 22:20:42 임지윤 윤종훈 기자 yoonjh2377@gmail.com

‘안전불감증 타파를 위한 안전문화의 진격’을 주제로 한국이 얼마나 위험한 사회인가를 진단하고 우리나라 재난보도의 문제점을 짚어보는 강연과 이슈토크가 23일 대구 그랜드호텔에서 3백여 청중이 모인 가운데 열렸다.

대구지하철화재를 계기로 설립된 2∙18안전문화재단과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이 공동 주최한 이날 행사에서 김태일 재단 이사장은 “재난이 일어나기 전에 예방하고, 재난을 신속·정확하게 알리고, 재난을 복구하는 과정에서 언론의 역할이 대단히 큰데 그릇된 보도 경쟁으로 더 많은 상처와 갈등이 생겨났다”고 말했다. 그는 또 “2003년 대구지하철참사 후 재난보도준칙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2014년 세월호 참사를 겪고 나서야 준칙이 만들어졌지만 그것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 제3회 2.18안전문화포럼이 ‘한국의 재난보도는 보도재앙이다’라는 구호 아래 23일 대구 그랜드호텔에서 열렸다. 왼쪽부터 서영지 <한겨레> 기자, 황진우 <단비뉴스> 편집국장, 이연 선문대 교수, 김태일 2∙18안전문화재단 이사장, 이봉수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장, 박태우 <경향신문> 기자, 조정훈 <오마이뉴스> 기자. ⓒ 임지윤

위험사회 부추기는 한국의 재난보도

이봉수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장은 인공위성에서 밤에 본 지구 사진과 전세계 항공기 운항 상황을 실시간으로 보여주는 레이더 영상을 통해 지구가 재난과 사고에 얼마나 취약한지를 보여주며 강연을 시작했다. 지구 사진에는 수천 곳에서 발생한 산불 등이 잡혀있었고, 레이더 영상에는 1만대가 넘는 비행기가 떠서 움직이고 있었다.

이 원장은 대구지하철참사와 천안함·세월호참사 때 학생을 비롯한 서민과 수병이 주로 희생된 통계를 제시하며 재난은 평등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한국이 전세계 또는 OECD 국가 중에서 나쁜 것은 1위, 좋은 것은 꼴찌 수준인 ‘연간노동시간’ ‘저임금노동자비율’ ‘노인빈곤율’ ‘독주소비량’ 등 11가지 통계자료를 제시하며 우리가 재난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 원장은 영국과 일본 언론의 재난보도가 우리와 어떻게 다른지 비교했다. 영국의 BBC 등은 속보보다 정확성에 중점을 두고 차분하게 보도하는데 우리 방송은 속보에 치우치고 앵커가 더 흥분하는 모습을 보인다고 지적했다. 그는 영국 그렌펠타워 화재사고를 보도하는 BBC 영상을 보여주면서 “사고는 후진국형이지만 사고 첫날 과학적으로 무엇이 잘못됐는지 심층보도를 하는 등 보도는 선진국형”이라고 말했다.

이 원장은 한국 언론의 재난보도는 전문성이 떨어지고 피해자의 신상노출을 일삼는가 하면 영웅과 희생양을 만드는 보도가 하나의 관행이 되고 있으며 대형 사고 뒤에도 지속적인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그는 또 피투성이 사진을 크게 쓴 영국 신문 <가디언>과 <인디펜던트>를 보여주며 “한국 언론학자들은 ‘피투성이 사진을 보여주는 건 인간의 존엄성을 해친다’고 말하지만 인류 최대의 재난인 전쟁의 경우 참혹한 현장을 보여줘야 그것을 멈추게 된다”고 주장했다.

   
▲ 이봉수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장은 세계 일류 언론의 재난보도 사례를 소개하며 한국 언론을 비판했다. ⓒ 임지윤

“속보보다는 피해자 중심으로 보도해야”

이연 선문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2014년 세월호 참사 이후 자신과 한국기자협회를 주축으로 제정한 재난보도준칙을 설명했다. 그는 “재난보도는 보도의 기능, 방재의 기능, 복구의 기능을 균형 있게 알리면서 가족 중심, 피해자 중심으로 보도해야 한다”며 “긴급 재난이 발생하면 오보나 유언비어, SNS 등 미확인 보도가 난무할 때를 대비해 각 언론사마다 준칙을 만들고 재난보도 전문가를 두어 검증 절차를 밟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대구지하철 참사를 취재한 박태우 <경향신문> 부장은 생생한 뉴스와 현장감을 전달하면서 다른 회사와 차별화를 시도해야 하는 신문의 속성상 기자들이 재난 현장에서 무리하게 취재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전달했다. 그는 “급박하게 돌아가는 재난 현장에서 기자들이 신속하면서도 정확한 기사를 써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면 보도의 정확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단원고 학생이 어떤 문자를 보냈다’가 주요 보도?

세월호 보도로 ‘KAIST 과학저널리즘 대상’을 받은 서영지 <한겨레> 기자는 2014년 세월호 참사 현장을 취재하면서 정부 발표나 확인되지 않은 내용을 그대로 보도한 언론의 행태를 비판했다. 서 기자는 “재난 현장은 준칙과 다르게 돌아가고 있었다”며 “언론이 보도해야 할 것은 사고의 원인이 무엇이고, 구조 상황은 어떻고, 정부와 해경은 뭘 해야 하는지 보도하는 것이지만 ‘단원고 학생들이 어떤 문자를 보냈다’ 같은 선정적인 보도에 치중했다”고 말했다. 그는 “데스크가 인명피해가 있는 재난보도는 늦더라도 정확하게 가야 한다는 원칙을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 재난보도 포럼에 참석한 대구시민들이 강연과 토론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 임지윤

“보도 잘못되면 사고 뒤에도 교훈 못 얻는다”

제천스포츠센터화재 6개월 뒤 제천 시내 다중이용건물의 화재방지책이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심층보도한 황진우 <단비뉴스> 편집국장은 “화재 당시 대부분 언론은 소방관의 사고 초기대응이나 건물주의 관리 부실로 프레임을 잡는 바람에 정부의 대책 마련과 건축법·소방법 개정과 같은 구체적인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사고 몇 달 뒤에도 화재에 대한 경각심이나 방지책이 얼마나 개선됐는지 점검하는 언론은 거의 없고 건물주가 몇 년형을 선고받은 것 등에 관심을 기울였다”고 지적했다.

조정훈 <오마이뉴스> 기자는 “경주에서 지진이 발생했을 때 주민들이 재난보도를 불신하고 맘카페나 유아커뮤니티에서 지진 정보를 공유하는 모습들을 보았다”며 한국 언론의 보도 태도를 비판했다. 그는 “일본 현지로 가서 재난 보도를 어떻게 하는지 취재했다”며 “일본 방송국은 한 달에 한 번씩 재난 발생에 대비한 보도 훈련을 하고 재난 매뉴얼도 잘 갖춰져 있었다”고 말했다.


편집 : 김태형 기자

[윤종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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