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사전] ‘마음’

▲ 박서정 기자

고대 인도 대서사시 <마하바라타>의 일부분인 <바가바드 기타>(신의 노래)는 힌두교에서 가장 사랑받는 경전이다. 인도에 가본 적도 없고, 인도 문화에 별 흥미도 없던 내가 이 책을 알게 된 건 학부에서 1학년 필수 교양 수업을 들을 때였다. 교재인 플라톤의 <국가>, 폰테코르보의 <알제리 전투>, 보르헤스의 단편선 등 하나하나가 우리 혀를 내두르게 했지만, 제일 높은 원성을 산 책은 단연 <바가바드 기타>였다. 다른 책은 제목이나 들어봤지만, 웬 힌두교 경전?

주인공 아르주나는 백만 대군을 이끄는 사촌과 결전을 앞두고 있다. 적진을 살피던 그는 사랑하는 친지들을 죽일 수 없다며 절망한다. 지금 관점에서 보면 인간적이다. 그런데 ‘창조신’의 현신이라는 크리슈나는 불쌍한 아르주나더러 너는 가만히 있는 게 죄를 짓는 거라고 말한다. 혈육을 위하는 의무보다 전투를 치러 대의를 실현하는 의무가 더 중요하니, 사사로운 정은 무시하고 네 본분을 다하라며 내몬다. 전쟁을 옹호하다니, 21세기를 사는 내가 이 책에서 얻을 게 없어 보였다. 종교학 교수가 수업에서 ‘영혼의 어두운 밤’이라는 말을 하기 전까지는 그랬다.

▲ 우리는 가끔 삶에서 지표 없이 혼자 남겨진 기분을 느낀다. ⓒ Pixabay

그 교수는 <바가바드 기타>에 나오는 것처럼 우열을 가리기 힘든 가치들이 마음속에서 충돌하는 ‘영혼의 어두운 밤’이 현대인에게 오히려 더 자주 찾아온다고 했다. 우리는 가족의 기대를 저버릴 수 없어 적성에 맞지 않는 대학에 들어갔다가 컴퓨터 앞에서 울고, 일터에서 부당한 지시를 거역하지 못해 귀갓길에 그 순간을 곱씹으며 괴로워한다. 내 가슴이 가리키는 길을 가려니 어릴 때부터 마땅한 도리라고 배운 의무감이 발목을 잡는다. 나는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고, 내 마음은 뭘까? 이럴 때 <바가바드 기타>는 깊은 마음속 목소리를 따라, 외부에서 오는 영향에 맞서 투쟁하라고 말한다.

세명대 저널리즘스쿨에 와서 수업을 듣고 현장 취재를 처음 하면서, 처음 깨친 것은 ‘기레기’라는 게 되고 싶어서 되는 게 아니라는 거였다. 취재보도론 수업에서는 취재원의 말을 항상 확인해보고, 빨리 기사를 내라는 데스크 독촉에 맞서라고 배웠다. ‘기레기’가 아닌 진짜 기자는 매일 보는 출입처 취재원을 비판하는 기사를 쓴 다음 날, 뻔뻔하게 그 사람을 만나 취재해야 한다. 내가 그렇게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모든 기사를 그렇게 쓰려면 인생이 너무 고달플 텐데. 그렇게 하려면 자신이 가는 방향에 확신이 서야 한다. 그런데 사람이 모든 선택을 확신하고 내릴 수 있을까?

그래서 다시 <바가바드 기타>를 찾았다. 얇은 책을 쥐고 쓱 훑어보다가 한 구절이 눈에 띄었다. ‘자유를 가져다주는 포기는 행위 자체의 포기가 아니라 행위의 결과를 포기하는 마음의 포기다.’ 내가 낸 기사가 꼭 잘 쓴 기사여야 하고 완전무결해야 내가 자유로워지는 건 아니다. 상황이 내가 원하는 대로 돌아가지 않을 수 있고, 그래서 형편없는 기사가 나올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자유로워지기 위해 내 마음속 깊은 곳 목소리를 따라, 내 할 일을 해야 한다. 수도(修道)란 인생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보들레르가 ‘모든 능력들의 여왕'이라고 말한 상상력이 학문 수련 과정에서 감퇴하는 건 안타까운 일입니다. 저널리즘은 아카데미즘과 예술 사이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생각을 옥죄는 논리의 틀이나 주장의 강박감도 벗어 던지고 마음대로 글을 쓸 수 있는 상상 공간이 바로 이곳입니다. 튜토리얼(Tutorial) 과정에서 제시어를 하나씩 정리하다 보면 여러분만의 ‘상상 사전’이 점점 두터워질 겁니다. (이봉수)

편집 : 김현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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