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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자들의 도시
[글케치북] ‘내가 갈 곳은 어디’
2019년 08월 06일 (화) 17:41:13 이신의 PD tion1469@naver.com
   
▲ 이신의 PD

“여보, 우리 이사 가자.” 뜬금없는 말에 아내는 황당한 표정으로 날 바라봤다. “아니, 이사 가자고, 나 못살겠어 아파트에서.” 아내가 입을 연다. “대출은 둘째치고, 당신 1년 동안 일도 안 하고 탱자탱자 노는데 그게 지금 무슨 염치로 하는 말이야?” 난 13층에 있다는 사실에 알 수 없는 공포감이 몰려왔다. 아내는 왜 갈수록 더 심해지냐며 타박했지만, 아내 말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날 이후 악몽은 심해졌고, 갑자기 소리를 지르는 일도 잦아졌다.

오늘도 잠을 설치며 TV 앞에 앉았다. 아마존이 나오고 있었다. 턱에 나무막대기를 꽂고 다니는 이상한 부족이 나온다. 잡힌 피라루크라는 큰 물고기가 칼로 잘린다. 그리고 사냥꾼은 몇 점을 담아 부상당해 누워있는 남자와 늙은 과부에게 음식을 가져다 준다. 무슨 맛일까 피라루크는… 그때 핸드폰이 울린다. 문자다. ‘고 김기정 소망장례식장 103호.’

잠들지 못한 채 다음 날 아침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기정이는 자살했다. ‘가족들에게 미안하다’는 한마디 유서를 남겼다고 한다. 자리에서 일어날 수 없었다. 그날 밤 아내가 왔고, 아내의 부축을 받고서야 간신히 집에 올 수 있었다. 집에 오자 아내가 말했다. “내일 정신과상담 예약해놨어. 아침 10시까지 알았지? 늦지 말고 가.”

정신과라고 해서 긴장하고 왔지만 일반 상담실 같았다. 상담사의 인상과 분위기, 말투는 포근했다. 몇 번 이야기가 오가자 난 울음을 터트렸다. “모든 관심은 처음부터 준식이한테 쏠렸어요. 아무도 저와 기정이에 관해 물어보는 사람은 없었어요. 모두에게 준식이뿐이었죠. 선생님 죄송해요. 전 미친놈이에요. 준식이는 이런 고민도 못하잖아요? 그렇죠? 전 지금 누굴 원망하고 있는 거죠? 죄송해요. 정말, 저 같은 새끼는 사람 새끼도 아니에요. 준식이가 어떤 앤데...” 상담사는 조용히 화장지를 내 앞에 놓았다. 상담사의 호의가 가식으로 느껴진 건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몇 번 신경검사와 약 처방이 끝나자 40만원 진료비가 청구됐다.

약을 먹어도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한 알을 4등분해 먹고 있어서 그런지 모르겠다. 아내는 주말에도 일할 곳을 찾았지만, 13층에 관한 공포는 더 심해지고 있었다. 하루라도 더 있다간 정말 내가 죽어버릴 것만 같았다. 미안하다는 편지 한 장을 남기고 난 살기 위해 집을 나왔다.

지하에서 노숙을 며칠 하니 불안한 마음은 사라졌다. 무료급식소에서 밥을 먹고, 자고, 일상이 이어졌다. 삶에 여유가 생기니 문득 상담사가 추천해준 명상이 떠올랐다. 있는 그대로 내 의식을 느껴보고, 하고 싶은 걸 떠올려보라는 거였다. 모두 잠든 새벽 마치 간디처럼 가지런히 앉았다. 천천히 숨 쉬는 것부터 느꼈다. 퀘퀘한 공기가 느껴지고, 심장박동도 느껴졌다. 그리고…

   
▲ 크레인 너머로 보이는 붉은 하늘. ⓒ pixabay

준식이가 떠올랐다. 화창한 날씨에 점심을 먹고 근무지로 복귀하는 중이다. 준식이는 여자친구와 전화를 하며 좀 늦게 걸어오고 있고, 기정이는 아이스크림을 사 들고 뛰어오고 있다. 잠시 후 고막 찢는 듯한 폭탄 터지는 소리가 난다. 난 정신을 잃었고, 희미한 정신을 차렸을 땐 온 세상이 먼지투성이였다. 어디선가 구급차 소리가 들려왔다. ‘준식아…’ 준식이를 찾았다. 불과 30m 뒤에 타워크레인이 쓰러져있었고, 그 아래는 피가 흐르고 있었다. 그건 준식이가 아니었다. 크레인이 흘리는 피 같았다. 형체도 알아볼 수 없는 크레인의 피… 의식은 바뀐다. 미친 듯이 폭우가 내린다. 얼마 지나지 않아 가장 높은 고층빌딩이 잠긴다. 타워크레인은 홍수 속에 떠다녔다. 난 피라루크가 돼 사방을 돌아다닌다. 그런데 어디를 가도 크레인이 떠있다. 크레인의 바다. 깊은 심연으로 도망간다. 그런데 그곳에도 크레인은 묻혀있다. 크레인에 긁힌 상처가 늘어난다. 사람이 아닌 물고기가 흘린 피가 바다에 퍼진다.

더 이상 갈 곳이 없다.


편집 : 최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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