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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미쳤다!”
[글케치북] 집단 속에서 지워지는 ‘너’와 ‘나’
2019년 07월 18일 (목) 22:25:45 임지윤 기자 dlawldbs20@naver.com
   
▲ 임지윤 기자

“상상 초월, 신문방송! 우리는 미쳤다!”

설렘을 가득 안고 대학에 들어간 지 한 달째, 나는 어느 순간 이 구호를 힘차게 외치고 있었다. 손엔 소주잔을 든 채 말이다. 옆에 있던 동기는 함께 구호를 외치지 않았다. 붉어진 얼굴로 뭐라 중얼대고만 있었다. 가만히 들어보니 욕을 하는 듯했다.

그는 경기도에서 대구∙경북 사람이 70%를 차지하는 이 학교로 진학했다. 나중에 알게 됐지만, 혼자 표준어를 쓰다가 놀림을 당하는 일이 잦아지자 술자리에서 혼잣소리로 욕을 하는 버릇이 생겼던 것이다. 그는 외톨이였다. 반면, ‘경북 사람’이란 보이지 않는 ‘집단주의’는 대구 사람인 나에게 이상한 안도감을 주었다.

30분쯤 지나면서 술자리 분위기는 더 무르익었다. 모두 처음 보는 대학 선배에게 잘 보일 겸 자기 주량도 확인해보려는지, 화장실에서 구토를 하면서도 끝까지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본 선배들은 자기 말에 잘 호응하는 동기들 몇 명에게 술을 더 마시게 했고, 그들은 또 구호를 외쳤다.

“상상 초월, 신문방송! 우리는 미쳤다!”

내 옆에 있던 동기에게도 선배들이 구호를 외치게 했다. 중학생으로 보일 만큼 키가 작고 어리게 생긴 그 친구는 아까보다 더 붉어진 얼굴로 일어서서 두 손으로 소주잔을 붙들고 있었다. 학생회장 선배는 그 친구에게 다가와 술을 따라주며 앉아있던 사람들에게 박수와 호응을 유도했다. 내 동기는 수줍게 “잘 부탁드립니다”라고 인사한 뒤 누구보다 큰 목소리로 “상상 초월”을 외쳤다. 곳곳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한 선배의 말이 아직도 인상 깊다. “역시 신문방송, 살아있네~”. 집단 속 ‘너’와 ‘나’는 단순한 구호 하나로 가까워지고 있었다.

우리 학과는 체육대회를 하면 늘 1등을 했고, 사회대에서 재정 지원을 가장 많이 받았다. 영상 촬영이나 편집 장비가 잘 갖춰져 있었고, 공간도 어떤 학과보다 깔끔했다. 그런 부분에서 비롯된 자부심은 공동체 내부 결속력으로 이어졌고, 선후배 간에는 보이지 않는 위계질서가 자리잡고 있었다.

다른 곳 출신인 그 친구는 이런 공동체 문화를 싫어했다. “자기가 왜 표준어 때문에 놀림을 당해야 하냐”라고 화를 냈고, “억지로 술자리에 남아 선배들 비위 맞추는 게 싫다”고 했다. 첫 술자리에서 목청껏 외치던 그의 구호를 다시는 들을 수 없었다. 학과 모임에도 나타나지 않았다. 그 사이 어느덧 선배가 된 내 앞에 후배들은 술잔을 들고 소리 높여 외치고 있었다.

   
▲ 집단 속 ‘너’와 ‘나’는 단순한 구호 하나로 가까워지고 있었다. © Pixabay

“상상 초월, 신문방송! 우리는 미쳤다!”

더 이상 이런 집단문화를 두고 볼 수 없었다. 선배 앞에서 소리를 내지르는 건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후배에게 강요하는 건 내 선에서 끊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 문화를 끊어야 외톨이를 선택한 내 동기도 마음 편하게 공동체로 돌아올 수 있을 터였다. 그 후 우물쭈물하다가 곧은 자세로 자기 학번과 이름을 외치고 술잔을 들며 학과 구호를 외치는 후배들에게 하지 말라고 했다. 내 옆에 있던 선배는 “네가 뭔데”라며 화를 냈고, 나는 그 자리를 박차고 나와버렸다. 힘들게 버틴 신입생 시절이 가고, 드디어 선배가 된 시점에 외톨이를 자처했다.

어느 날, 학교에서 통 안 보이던 그 친구한테서 전화가 왔다. 처음 보는 전화번호였다. “이거 군대 번호야. 잘 지내지?” 그는 내 안부를 물었다. 오랜만에 들은 목소리에 반갑게 응답하며 최근 있었던 학교 일을 모두 말해줬다. “네 생각 많이 나더라. 길에서 선배 만나면 피하고 지냈어. 나도 군대나 갈까? 넌 어떻게 버텼냐?” 그러자 전화기 너머로 그의 풀 죽은 목소리가 들렸다.

“지윤아, 군대 오니까 더 심하더라. 그냥 버텨”

20대 초반. 그 친구와 나는 이상한 집단주의에 그냥 버티고 지내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딱히 무언가를 한 것도 아니지만, 최소한 쓰러지지 않으려고 했다. 군에 입대해서 그 친구는 쓰러지고 만 것일까? 그는 나에게 왜 전화를 했을까? 전화기 너머 느껴지는 서로의 온기에 기대 잠시만이라도 차가운 ‘집단의 공기’를 피하려 한 것일까?


편집 : 장은미 기자

[임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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