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토크] 디즈니 <알라딘>이 보여준 ‘세 번째 소원의 저주’

2017년 <미녀와 야수> 실사화에 이어 디즈니가 또 다른 라이브 액션 영화 <알라딘>을 출시했다. ‘알라딘’이 신비스러운 요술램프를 들고 있는 포스터에는 '당신의 소원이 이루어진다'라는 메인 카피가 적혀있다. 디즈니의 <알라딘>은 우리의 어떤 소원을 이뤄주고 싶었을까?

▲ <알라딘> 포스터. ⓒ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눈과 귀 열고 '아그라바'로 몰입하는 관객들

"길을 걷다 보면 신비한 향신료를 파는 기이한 상점들, 멋진 비단과 망토를 파는 진귀한 가게도 있지. 음악을 따라가. 미로로 들어가. 순수한 기쁨이 있어. 몸을 흔들어봐. 마법이 가득한 여긴 바로 아라비안 나이트." - <알라딘> OST

<라라랜드> <보헤미안 랩소디> <위대한 쇼맨> 등 음악 영화, 뮤지컬 영화의 인기는 대단하다. 관객이 영화 상영중 함께 노래를 부를 수 있는 '싱어롱 상영관’도 있을 정도다. 음악 영화는 관객에게 여러 감각의 '경험'을 선사한다. 스토리뿐 아니라 퍼포먼스를 보고 음악을 들으면서 시각과 청각이 자극된다. 과거의 수용자가 일방적으로 스토리를 전달받았다면, 현재의 관객은 콘텐츠를 통해 감각적인 체험, 경험을 하고 싶어한다.

싱어롱 상영관에서는 직접 노래를 부르며 관객이 영화에 참여할 수 있다. <알라딘> 또한 관객의 그런 '소원'을 들어줬다. 영화는 들을 거리, 볼거리로 가득하다. 굳이 싱어롱 상영관이 아니더라도 춤을 추며 노래를 따라 부를 수 있다. 할리우드 상업 영화가 보여주는 스펙타클이다.

▲ 여자 주인공 자스민 역을 맡은‘나오미 스콧’과 남자 주인공 알라딘 역을 맡은‘메나 마수드’. ⓒ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이야기는 ‘아그라바’라는 도시에서 시작한다. 아그라바는 아랍계의 사막도시처럼 보이지만, 원전에서는 중국이 배경이다. 알라딘도 중국 소년이라고 한다. 하지만 영화 속 배경은 '아랍에서 생각한 중국'이기에 우리가 알고 있는 중국과는 다른 모습이다. 아랍권 국가의 모습에 더 가깝다. 

아그라바의 좀도둑 ‘알라딘’이 ‘자스민’과 처음 만난 뒤, 자신을 쫓는 사람들의 추격을 피해 요리조리 뛰어다니는 골목은 여러 색깔 옷감들과 다양한 물건들로 관객의 눈을 즐겁게 한다. 이 장면은 관객의 눈을 사로잡아 알라딘이 사는 아그라바로 끌고 들어오는 역할을 한다. 주인공은 그냥 뛰는 게 아니라 라이브 액션 영화인만큼 박진감 넘치는 노래를 하며 뛴다. 배경과 음악, 움직임이 어우러져 발리우드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든다. 원체 주제곡들이 좋기도 하지만, 실사의 퍼포먼스가 합쳐지니 관객들은 눈을 뗄 수 없이 완전히 몰입한다.

노래와 퍼포먼스가 빛을 발하는 부분은 이 영화에서 셀 수 없이 많다. 자스민과 알라딘이 하늘을 나는 양탄자를 타고 'A whole new world'를 부르는 장면은 원작 애니메이션에서처럼 화려하게 재현되었다. 그 외에도 지니가 춤을 추며 자신을 소개하는 장면, 알리 왕자가 된 알라딘의 행차 장면도 강한 인상을 남긴다. 자스민이 더 이상 조용히 있을 수 없다며 울분에 가득 찬 노래를 부르는 장면에서는 압도적인 사운드와 영상에 관객은 감동의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알라딘>은 화려한 화면과 퍼포먼스, 음악으로 관객의 시청각 경험 욕구를 채워준다.

문제의 세 번째 소원, 그리고 '친구'가 된 지니

▲ 영화의 핵심 모티프는‘세 가지 소원’이다. 세 가지 소원의 조건을 알라딘에게 말해주는 지니. ⓒ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영화의 핵심 서사인 '세 가지 소원’ 모티프는 무엇인가? 이 모티프는 여러 스토리텔링에 자주 쓰이는 장치다. 가장 유명한 것은 윌리엄 위마크 제이콥스의 단편소설 <원숭이 발>(The monkey's paw)이다. 이 이야기는 인간의 욕망과 욕심을 경계하는 주제를 담고 있다. 플롯의 특징은 인물이 소원을 빌면 그 소원이 이루어지긴 하되,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마지막 세 번째 소원이 그렇게 될 가능성이 크다. 영화 <알라딘>의 안타고니스트 자파 역시 이 세 번째 소원 때문에 램프에 갇히고 만다. 세 번째 소원으로 지니처럼 이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존재로 만들어 달라고 한 그는 강력한 힘을 가지게 되지만, 결국 지니처럼 램프에 갇히고 만다. 그를 파멸시킨 것은 끝없는 욕망과 욕심이었다.

'알라딘'의 세 번째 소원도 문제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첫 번째 소원인 '알리 왕자 되기', 두 번째 소원인 '위급할 때 살려내 주기'를 이룬 그는 공주와 행복하게 살고 싶은 욕심에 '세 번째 소원은 지니의 자유를 위해 쓰겠다'던 약속을 저버리려 한다. 이 대목에서 원작 애니메이션과 영화의 다른 점이 나온다.

원작에서는 지니가 이런 마음을 먹는 알라딘을 보고 ‘삐친다’. 그러나 영화에서는 지니가 파란색 연기의 램프요정이라기보다 춤 잘 추고 노래 잘하는 친구에 가까워 알라딘의 욕망 어린 모습을 진심으로 ‘걱정해준다’. 지니의 인간적인 면모를 더 부각해 친구이자 조력자 역할을 하도록 캐릭터를 재구성해 원작과 차별화했다. 원작에서 파란 피부를 가진 램프의 ‘요정’이 영화에서는 까만 피부를 가진 ‘친구’로 변한 것이다. 지니가 흑인으로 인식되도록 설정한 것이라면, 그가 족쇄를 풀고 감격스러워하는 모습은 꽤 의미심장하다.

“사람은 돈으로 살 수 없단다, 알라딘아”

영화의 큰 흐름은 모두 알고 있는 원작 애니메이션과 비슷하다. 원작의 중심 사건은 알라딘이 요술램프를 얻고, 자스민에게 반하면서 시작된다. 이야기 마무리는 아그라바 왕국을 차지하려는 2인자 자파의 방해 공작을 물리치고 결국 자스민과 결혼하고 지니와는 우정을 지키며 끝난다. 알라딘이 램프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고 자스민을 '얻게 된다’. 아버지 술탄은 알라딘에게 자스민을 '내어준다'.

2019년 영화에서 '뭘 사고 싶어서 보물을 싸 들고 왔냐'고 묻는 자스민의 질문에 알라딘은 '당신이요'라고 답한다. 그러나 알라딘은 좀도둑이었던 자신의 비천한 신분을 창피해한다. 이런 모습을 보고 지니는 차라리 춥고 어두운 램프 안으로 들어가겠다고 한다. 자스민도 즉시 자리를 떠나며 알라딘에게 싸늘한 반응을 보인다. 이런 설정은 이 영화의 서사가 내포한 주제를 암시한다.

▲ 여주인공 자스민은 술탄에 오르지만, 여성 해방의 주체로 행동한 것은 아니다. 기존 중심 서사에 페미니즘은 곁다리로 추가되었을 뿐이다. ⓒ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디즈니 실사 영화의 전작인 <미녀와 야수>에서는 여주인공 벨이 원작과 조금 달랐다. 더 적극적이었고 결혼 상대를 찾기보다 자신에 대해 고민했다. 주체적이고 현명한 여성으로 그려졌다. 이 때문에 페미니즘 요소를 가미한 영화라고 홍보했지만, 결국 기존의 '여성 인내 서사'와 다르지 않다는 비판을 받았다. 야수(남성)가 결혼 상대 감으로 바뀌는 동안 여성은 고통을 인내하고 헌신하며 현명하게 그를 도와야 한다는 가부장적 구조를 재생산하는 스토리텔링에 그쳤기 때문이다. 벨의 주체적이고 현명한 성격은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이런 비판을 겸허히 받아들인 것인지, <알라딘>의 자스민은 "I won't be silenced"(난 침묵하지 않겠어)라고 외치며 야망을 이루려 한다. 금은보화로 자신을 사겠다는 알라딘, 여자는 술탄이 될 수 없다는 아버지, 공주는 조용히 가만히 있으라는 자파, 이들을 더 이상 따르지 않겠다며 자스민은 자신을 억누르고 있던 것들을 거부한다.

원작 애니메이션에서는 아버지가 '공주는 왕자와만 결혼해야 한다'는 아그라바의 법을 바꾸어 자스민을 결혼시킨다. 2019년 영화에서는 자스민이 아버지의 뒤를 이어 술탄이 되고, 자신이 ‘직접 법을 바꾸어’ 알라딘과 결혼한다. 영화 <알라딘>을 보는 관객은 여성을 둘러싼 억압을 뿌리치며 당당하게 자신을 위한 목표를 이루는 자스민처럼 ‘해방’이라는 두 번째 소원을 이룬다.

관객의 ‘세 번째 소원’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자스민의 엄청난 발전에도 영화를 다 보고 나면 애매한 기분이 든다. 주인공인 알라딘은 기억에 없고, 남는 건 자스민과 지니다. 누군가가 "알라딘 주제가 뭐야"라고 묻는다면 한마디로 정리하기 힘들다. 전달하려는 메시지가 한 가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앞서 말했듯이 원작의 주제는 '과도한 욕심을 경계하자'이다. 자스민을 '얻는' 것과 지니와 한 약속은 그 주제를 위한 과정에 불과했다.

영화는 원작의 주제와 플롯을 가져가되, 자스민의 ‘여성 해방’ 서사도 추가했다. 이렇게 되니 중심 주제가 무엇인지 파악하기 어렵다. 페미니즘 서사는 확실히 영향력 있고 이에 관한 고려는 이 시대에 꼭 필요하다. 하지만 페미니즘 서사를 기존 서사에 형식적으로 '추가’했을 뿐이다. 인기를 얻으려고 페미니즘 요소를 곁다리로 집어넣었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어 보인다. 중심 서사에 자스민의 비중을 더 늘리고 개연성을 키웠다면, 주제가 무엇인지 혼란스럽지 않았을 것이다. 관객은 여성이 서사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을 바라고 '소원'을 빌었건만, '세 번째 소원의 저주'인지 그 소원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30년 전, 1992년의 자스민은 술탄이 되지 못했다. 2019년의 자스민은 술탄이 됐으나, 영화의 온전한 주인공이 되지는 못했다. 30년 후인 2050년, 아니 그보다 이른 시간 안에 자스민이 온전한 주인공이 되는 영화 <자스민>이 상영될 수 있을까? 관객들의 마지막 '세 번째 소원'이다.


편집 : 임세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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