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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 넌 이름값 못해도 돼
[상상사전] '지역격차'
2019년 06월 19일 (수) 21:05:13 신수용 기자 sinsy77@naver.com
   
▲ 신수용 기자

내 취미는 시장 구경이다. 외국여행 때도 사지 않고 보는 ‘눈팅’을 즐긴다. 남들 다하는 ‘해외 관광명소 찍기’ 대신 무르팍 자국 난 트레이닝복을 입고 시장에 간다. 소도시에서 열리는 장은 대개 주말 공터에서 열린다. 사람 사는 곳은 비슷하다. 슈퍼마켓보다 싸고 신선한 먹거리가 넘친다. 주말마다 그 지역 농부가 손수 키운 작물을 소량 가져온다. 농부 겸 상인은 백인만 있는 게 아니다. 히잡을 두른 이도 있고, 나와 닮은 얼굴도 많다. 청년 상인도 보이고 연령층도 다양하다. 장바닥에 다양한 피부 냄새가 가득하다. 도시 주말 장이 한국처럼 정부가 맘먹고 개최해야 열리는 일회성 행사가 아니다.

한국과 외국 장터 사이 가장 큰 차이점은 이름이다. 외국 장터는 지역이나 꽃, 물고기 등 주요 취급 품목에서 시장 이름을 따오는 데가 많다. 재래시장은 그냥 마켓(Market)으로 불리는 주말 장도 많다. 한국에서는 전국 8도, 제주도 장터까지 이름이 똑같다. ‘중앙시장’이다. ‘중앙’은 시장바닥만 아니라 '중앙동’ 같은 지명과 간판에도 사용된다. 중앙대학·병원·도서관, 중앙지로 불리는 <중앙일보>까지.

   
▲ 야채시장에는 신선한 먹거리가 넘친다. ⓒ pixabay

영어로 중앙은 센터(Center)다. 센터는 실체가 있는 지점이다. 영어의 조상인 라틴어와 그리스어로 센터는 '동심원 가운데'다. 현대영어에서도 동심원뿐 아니라 상황, 거리상 가운데를 뜻한다. 또 쇼핑센터처럼 사람이 많이 모이는 장소나 특정 목적으로 지어진 건물을 뜻한다. 중국어에서 '중’(中)은 중국(中國)이 자신을 세계 전체에서 가운데 위치한 곳이자, 권력과 문명 중심에 있다는 인식에서 출발한 말이다. 국어사전에 나온 ‘중앙’의 첫 의미도 비슷하다. '중심이 되는 중요한 곳' 그리고 '수도'다.

한국사회에 ‘중앙’은 속하고 싶고, 닮고 싶은 열망이 가득한 관념어다. ‘중앙’은 수치상 거리를 지칭하지 않는다. 실체가 없다. 중앙과 마이너, 중앙과 지방이 그렇다. 법조계에서도 지방 검찰청 파견은 좌천으로, 중앙지검 배치는 우등생이자, 승진으로 본다. 이러한 관념은 교육계, 산업계 등 한국 사회 전반에 퍼져있다.

관념은 현실 지표에 기반한다. 주요 명문대와 대기업 본사 8할 이상이 중앙, 곧 수도권에 있다. 국토의 약 11% 남짓한 중앙에 인구 절반이 몰린다. 돈도 중앙이 빨아들인다. 산업연구원 자료에 따르면 2016년 지역에서 생긴 근로·기업소득 중 약 62조원이 서울·경기 등 중앙으로 이전됐다. 지난 16년간 꾸준히 증가한 수치다. 붕괴를 넘어 지방이 지도에서 지워지고 있다. 지방소멸은 기존 공동체도 흔든다.

지방 없이 중앙만 비대해서는 두 지역이 건전한 관계로 양립할 수 없다. 100년 이상 민주주의 국가를 꾸리고 있는 독일, 영국 등은 중앙 쏠림을 완화할 지역민주주의가 발달했다. 유럽 47개국이 서명한 지방자치를 보장한 ‘유럽지방자치헌장’도 발표됐다. 모든 게 중앙에 쏠리니 작은 재래시장 이름조차 ‘중앙’이다. ‘중앙’이란 문패에 격이 떨어질 날을 기다린다.


보들레르가 ‘모든 능력들의 여왕'이라고 말한 상상력이 학문 수련 과정에서 감퇴하는 건 안타까운 일입니다. 저널리즘은 아카데미즘과 예술 사이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생각을 옥죄는 논리의 틀이나 주장의 강박감도 벗어 던지고 마음대로 글을 쓸 수 있는 상상 공간이 바로 이곳입니다. 튜토리얼(Tutorial) 과정에서 제시어를 하나씩 정리하다 보면 여러분만의 ‘상상 사전’이 점점 두터워질 겁니다. (이봉수)

편집 : 이자영 기자

[신수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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