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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지는 일자리, ‘기본소득’이 답이다
[단비발언대]
2019년 05월 31일 (금) 12:46:25 임지윤 기자 dlawldbs20@naver.com
   
▲ 임지윤 기자

‘가정의 달’ 5월에 우리가 접한 뉴스는 ‘빚더미를 못 이겨 죽음을 선택한 일가족’ 이야기다. 누군가는 부동산 투기로 억 단위를 손에 쥐는데, 다른 누군가는 생계조차 이어가지 못해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 ‘자본주의’는 이런 현실을 아랑곳하지 않는다. 개인의 노력에 따른 성공에 손뼉 치는 반면, 개인의 실패엔 무관심하다. 경쟁을 뚫고 살아남아야 한다는 것만이 우리의 지상과제다.

지금까지 나의 경쟁자는 다른 사람이었다. 4차산업혁명기에 들어섰다는 지금, 나의 경쟁자는 더 이상 내 옆 사람이 아니다. 우리가 우습게 보던, 이제는 놀랍게 보는 AI 로봇이다. 개인의 노력은 무한할 수 없다. 능력은 더욱 그렇다. 자본가들은 인간의 생산성보다 평균 6배 효과를 거두는 로봇을 선택했다. 노동이 천대받던 신분제 사회에서 민주주의 사회로 바뀐 지 100년밖에 안 되는 시점에, 우리는 버튼만 누르면 땀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주인이 원하는 일을 척척 해내는 ‘진화한 노예’와 겨루게 됐다. ‘혁신성장’의 결과는 수많은 노동자의 일자리 박탈이다.

미래학자 마틴 포드는 ‘4차 산업혁명으로 대규모 일자리 소멸은 피할 수 없다’고 단언했다. 그가 주장한 보완책은 보편적 ‘기본소득’ 도입이다. 기본소득은 국가가 국민들에게 최소한의 삶을 누릴 수 있도록 조건 없이, 즉 노동 없이 지급하는 소득이다. 재산이 많든 적든 관계없이 모든 사회구성원에게 지급한다. 무조건성, 보편성, 개별성이 특징이다.

   
▲ 미래학자 마틴 포드는 ‘4차 산업혁명으로 대규모 일자리 소멸은 피할 수 없다’고 단언했다. ⓒ pixabay

기본소득은 모든 사람에게 조건 없이 평등하게 소득을 보장한다는 점에서 ‘사회주의’ 정책처럼 보인다. 그러나 우파 주류경제학이라 불리며 전 세계를 신자유주의 열풍에 휩싸이게 만든 ‘시카고학파’도 이에 동의한다. 시카고학파 태두 밀턴 프리드먼은 ‘기본소득은 자유를 위한 최소의 물질적 조건’이라고 했다. 그는 <자본주의와 자유>에서 고소득자에게는 세금을 징수하고 저소득자에게는 보조금을 주는 ‘음의 소득세’를 주장했다. 도입 주장 배경은 다르지만, 좌∙우파 모두 4차산업혁명 시대에 기본소득은 어쩔 수 없이 가야 하는 길로 보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를 놓고 좌∙우파가 정치적으로 대립하고 있다. 경제는 정치적으로 바라봐서도 이용해서도 안 된다. 이념 갈등 전쟁으로 70년째 분단 상태인 우리나라의 경우 더 그렇다. 기본소득 채택이 자본주의를 버리는 길일까?

4차산업혁명으로 자율주행 차가 운전사를 대신하고, 블록체인 기술이 은행원을 필요 없게 만든다면, 나아가 모든 교육과 노동까지 로봇이 대체하는 세상이 온다면 인간이 할 수 있는 경제 행위로 무엇이 남을까? 더 정확하게 말하면, 로봇을 이용하는 거대 자본가나 로봇을 생산하는 일부 기술직 노동자를 제외하면 어떤 일자리가 우리에게 남아 있을까? 감정 또는 정신의 영역을 다루는 문화 예술 분야나 심리 상담 분야 정도 남겠지만, 최근 오케스트라를 지휘하고 벽화를 그리며 인간과 대화하는 로봇이 생겨나는 걸 보면 이마저도 불확실하다. 이런 상황에서 기본소득은 인간의 노동 욕구를 저해하는 사회주의 정책이 아니다. 로봇에게 일자리를 빼앗긴 개인의 낙오를 방지하는 ‘성숙한 자본주의’ 정책이자 선택의 여지가 없는 ‘제3의 길’이다.

이미 우리나라는 기본소득이란 이름으로 몇몇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노동 생산성이 떨어진 65세 이상 노인을 대상으로 ‘노인수당’을 제공하고, 일부 지역에서는 취업이 안 된 청년에게 ‘청년수당’도 지급한다. 올해부터 시행되는 ‘고교 무상급식’도 같은 맥락이다. 이 정책들은 모든 사람에게 조건 없이 제공하는 소득이 아니므로 기본소득이라기보다 보편적 복지를 지향하는 사회보장제도의 일환이라고 봐야 한다.

그럼에도 이 정책들은 국가가 경제 행위에서 소외된 이들에게 최소한의 비용을 투자하는 단순한 복지 이상으로 자본주의를 굴러가게 하는 엔진 구실을 한다. 시장의 자율성에 자본주의를 그대로 맡겼다가는 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고, 소비행위에서 탈락하여 국가 경제 전체가 멈춰버릴 수 있다. 미래를 함부로 예견할 수는 없지만, 4차산업혁명이란 바람에 대응책 없이 휩쓸렸다간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널 수 있다. 이념 논쟁을 뒤로 접어두고 자본주의를 구하는 길에 기본소득이 놓일 수 없는지 고민해야 할 때다.


편집 : 박선영 기자

[임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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