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발언대]

▲ 양안선 PD

“쨍쨍쨍.” 꽹과리 소리가 정조 임금의 행차를 막았다. 막아선 이는 서른다섯 살 흑산도 주민 김이수. 당시 흑산도 백성은 더 이상 생산되지 않는 닥나무를 공납으로 내야 했다. 김이수는 가혹한 세금에 나주·전주 감영을 방문해 억울함을 호소했으나 돌아온 것은 보복뿐이었다. 결국 그는 한양으로 가서 임금 행차에 꽹과리를 두들기는 ‘격쟁’(擊錚)을 감행했다. 그가 직접 억울함을 호소할 수 있는 마지막 수단이었다. 정조는 좌의정을 불러 진상조사와 해결책 마련을 명했고, 흑산도의 닥나무 공납은 폐지됐다.

민주공화국인 지금은 꽹과리를 두들기지 않아도 된다. 국민이 주인이어서 다양한 언로를 열어 두었기 때문이다. 청와대에 국민청원 게시판도 마련돼 있다. 국민이 주인인데도 관리들이 국민들 목소리를 외면하거나 대충 처리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그래서 대통령이 국민들 호소를 마지막으로 들어주기 위해 게시판을 걸어둔 것이다.

청와대 청원 게시판은 개설 취지에 맞게 많은 민원을 해결했다. ‘음주운전 교통사고로 친구 인생이 박살났습니다. 제발 도와주세요.’ 휴가중 음주 차량에 치어 숨진 ‘윤창호 씨’ 친구들의 청원은 음주운전 처벌을 강화한 ‘윤창호법’으로 마무리됐다.

‘포항 지진 피해배상 및 지역재건 특별법 제정해 주세요.’ ‘김학의 성접대 관련 피해자 신변보호와 관련자들 엄정수사를 촉구합니다.’ ‘심신미약 피의자에 의해 죽은 우리 딸 억울하지 않게 해주세요.’ ‘소방공무원을 국가직으로 전환해 주세요.’ ‘고 장자연 씨의 수사기간 연장 및 재수사를 청원합니다.’ 이런 청원들은 수십만 ‘청원 동의자’들 덕분에 청와대의 답변을 듣거나, 필요한 조처들이 이뤄졌다.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는 이런 것 못지 않게 시급하고 안타까운 내용들도 올라와 있다. ‘장기실종수사팀 지역마다 만들어 제 동생 좀 찾아 주세요.’ ‘아파트 경비원 부당해고 청원합니다.’ ‘동대문, 지게일을 계속하고 싶습니다.’ ‘임산부 배려석 없는 차종을 운행하는 지하철 1호선.’ ‘응급환자처치중인 구급대원 요청 무시한 ㅇㅇ구청장 처벌해 주세요.’ ‘원주기업도시 초등학교 개교 앞당겨 주세요.’ ‘독립유공자 생활지원금 인상해 주세요.’…

당사자들은 하나같이 간절한 마음으로 마지막 호소라며 올렸을 이 청원들은 청와대 답변을 듣지 못하고 모두 ‘종료’ 처리됐다. 청원 게시판에 고지된 추천 숫자를 못 채웠기 때문이다. 게시판에는 “청와대의 직접 소통은 ‘국민이 물으면 정부가 답한다’는 철학을 지향합니다”라고 쓰여 있다. 글만 올리면 되는 줄 알았는데 가타부타 답도 없이 ‘종료’됐으니 청원자들은 마지막 희망이 종료된 기분일 것이다.

▲ 국민이 주인인데도 관리들이 국민들 목소리를 외면하거나 대충 처리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그래서 대통령이 국민들 호소를 마지막으로 들어주기 위해 게시판을 걸어둔 것이다. ⓒ 청와대 홈페이지

문제는 ‘골라서 듣겠다’는 청와대의 자세다. 청와대 청원 게시판은 ‘국정 현안 관련, 국민들 다수의 목소리가 모여 30일 동안 20만 이상 추천 청원에 대해서는 정부 및 청와대 책임자가 답하겠습니다’라고 고지하고 있다. 내용과 상관없이 한 달 동안 20만명 이상이 추천한 것만 답을 하겠다는 것이다. 

청원권은 헌법이 보장하는 국민의 기본권이다. 우리 헌법 26조 ①항은 ‘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가기관에 문서로 청원할 권리를 가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②항에는 ‘국가는 청원에 대하여 심사할 의무를 진다’고 돼있다. 국민은 누구나 헌법상 최고의 국가기관인 대통령을 비롯한 모든 국가기관에 청원할 권리가 있고, 청원을 받은 국가기관은 내용을 심사해 답변할 의무가 있다는 뜻이다. 청원 절차 등을 정해 놓은 청원법이나 다른 어디에도 몇 명 이상 동의하거나 추천한 것만 답변하라는 규정은 없다.

헌법에 규정된 국민의 청원권을 보장해주려고 개설한 청원 게시판이 아니라면 ‘국민신문고’나 ‘국민 꽹과리’라는 이름을 붙이는 것이 옳다. 20만명 이상이 추천한 청원에만 답하겠다는 것은 북소리를 크게 울리거나 꽹과리를 매우 시끄럽게 치는 사람 이야기만 듣겠다는 거 아닌가? 임금님 마저 북소리 꽹과리 소리가 작다고 외면해 버리면 이 시대의 수많은 ‘김이수’들은 어디에 억울함과 절박함을 하소연해야 할까? 

조선시대 김이수는 꽹과리로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할 수 있었다. 오늘날 대한민국 국민은 꽹과리 대신 키보드를 두들긴다. 국민이 물으면 정부가 답한다. 지금 청와대가 청원게시판을 만들고 국민들과 직접 소통하겠다는 것은 역대 다른 정부가 생각지 못한 좋은 자세다. 하지만 접근법이 잘못 되거나 문제가 있으면 원래 취지는 제대로 구현되지 못하고 부작용과 역효과가 더 커질 수도 있다.

청와대는 청원이 몰리는 점 때문에 부득이 답변 대상을 제한했을 것이다. 문제는 답변 대상을 제한하는 기준이 잘못됐다는 것이다. 국민적 관심사가 될만한 사안은 동의나 추천이 많을 것이고 숫자가 많은 것을 답변대상으로 정하는 것이 틀린 조처만은 아니라 할 수 있다. 실제 추천 숫자가 많은 것 중에는 국민들이 정말 간절하게 해결되길 바라는 사안이 많다.

하지만 일부 사안은 정치적인 것이나 재판 관련 내용 등 청와대가 간여할 수 없는 내용들도 있다. 그런 부분은 청원법에도 청원 대상이 안 되는 사안들이다. 더 심각한 것은 추천 숫자로 답변 대상을 추리다 보니 정말 청와대나 대통령이 관심을 갖고 챙겨야 할 내용들은 배제된다는 점이다. 지금처럼 숫자로만 답변 대상을 정하지 말고 청원 내용을 검토해 그것을 기준으로 답변할 사안과 관련 부서 이첩이나 종료 처리하는 방식으로 대응해야 국민과 직접 소통한다는 원래 목적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편집 : 유연지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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