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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로 가린 장애인 소외
[TV를 보니] EBS 다큐멘터리 '꼽슬과 빙구'
2019년 06월 13일 (목) 11:12:43 박동주 기자 shane9110@naver.com

남자는 100kg이 넘는 전동 휠체어를 탄다. 여자는 그 옆에서 두 발로 걸어간다. 쉬는 날엔 야구장으로 데이트를 하러 가고, 부산으로 여행을 떠나기도 한다. EBS 다큐 시선 ‘꼽슬과 빙구’를 보면 여느 커플과 다름없는 이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보통 커플과 다름없지만, 꼽슬과 빙구는 보통 커플과 다른 시선과 대우를 받는다.

우리가 두 발 딛고 서있는 위치는 다른 곳의 풍경을 상상할 수 없게 한다. 남자기 때문에 혹은 여자기 때문에, CEO이기 때문에 혹은 노동자이기 때문에, 부모이기 때문에 혹은 자식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 자리에 맞는 의식을 가지고 행동한다. 온전히 우리 자신의 자유와 의지로 창조한 ‘나’라는 개체 의식을 가지고 살아가는 게 아니다. 나를 규정하고 있는 ‘조건’이 나의 의식을 만들고, 행동으로 나아가게 만든다. 내가 가진 총체적 의식은 사회의 반영이라 할 수 있다.

장애인이 비장애인 연인과 사랑하면서 마주하는 장벽은 꼽슬이 가지고 있는 장애로부터 나타남을 다큐멘터리는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면 꼽슬과 빙구로 대표되는 장애인과 비장애인 커플의 고통과 슬픔은 오로지 꼽슬의 근육병 장애 때문일까? 근육병을 치료하고 나면 문제가 해결되는 걸까? 다큐멘터리에서 더 관심 있게 봐야 할 부분은 ‘다수인 비장애인 쪽에서 소수인 장애인을 어떻게 보는가’이다.

‘평범’한 ‘보통’의 연인과 다르지 않은 그들

다큐멘터리는 꼽슬과 빙구가 다른 비장애인 커플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지속적으로 보여준다. 수업을 같이 듣고, 박물관에서 데이트하며, 서로 수다를 떨며 웃고, 야구 경기를 관람하고 여행도 같이 가는 모습을 영상 전체에 고르게 나눴다. 문제는 ‘평범’, ‘보통’과 같은 단어가 들어간 내레이션이 반복되는 것이다.

   
▲ 그들은 '보통' 연인들처럼 '평범'하게 야구장에서 데이트를 즐긴다. 그러나 평범하다는 걸 강조하는 것은 오히려 평범과 비평범의 프레임을 심화할 뿐이다. ⓒ EBS 다큐 시선 '꼽슬과 빙구'

장애인과 같은 소수 집단을 향한 대중의 인식은 대중매체에 의해 형성되기 쉽다. 소수 집단을 직접 겪어보지 못하고 관련 지식도 없는 상태에선 대상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 갈피를 못 잡는다. 소수집단을 향한 생각의 준거 틀은 쉽게 접할 수 있는 대중매체에 의해 제시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대중의 인식은 장애인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장애인들이 누릴 수 있는 다양한 제도적 지원의 범위를 결정하는 데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서로 조건을 따져가며 만나고 결혼하는 사회에서 꼽슬과 빙구는 대중에게 특별한 존재다. ‘평범’과 ‘보통’을 강조하는 내레이션은 오히려 이분법적 시각을 강조할 우려가 있다. 제작자는 의도적으로 그들이 다른 비장애인 커플과 다르지 않다는 메시지를 전하려 한다. 그러나 그것은 강요일 뿐이다. ‘보통(Normal)’과 ‘보통이 아닌(Abnormal)’ 것으로 대상 전체를 둘로만 나누는 논리에서는, 그들이 ‘보통 연인과 다르지 않은’ 위치를 확보할 수 없다.

장애인은 주위에 부담이 되는 존재인가

장애인을 나타내는 또 다른 지배적 방식은 장애인을 가족, 연인과 친구에게 희생을 강제하는 존재로 묘사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장애인은 사회 전체에 부담이 되는 객체로 받아들여진다. 장애가 있는 아이 혹은 배우자를 위해 정상적인 사회활동을 포기하는 가족은 여러 다큐멘터리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장면이다.

   
▲ 마산에서 서울까지 올라와 꼽슬을 돌봐주는 어머니의 모습은 장애인은 누군가의 돌봄이 필요하다는 의식의 반영이다. ⓒ EBS '꼽슬과 빙구'

꼽슬의 어머니는 꼽슬이 대학교에 진학한 뒤 마산에서 올라와 함께 생활한다. 빙구는 꼽슬이 밤에 잘 때 인공호흡기를 끼워준다. 주변인의 희생을 필요로 하는 장면을 보여주는 것은 장애가 사회가 아닌 개인적 차원에서 감당해야 하는 문제로 비치게 한다. 장애인을 향한 사회의 책임을 가리는 것이다.

그들을 괴롭히는 건 장애가 아니다

꼽슬과 빙구는 사람 많은 지하철을 타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장애인과 비장애인 커플이라는 이유로 사람들은 여러 가지 말을 툭툭 내뱉는다. 빙구에게는 ‘착하다’거나 ‘대단하다’며 이런저런 얘기를 건넨다. 그러나 눈물 젖은 눈으로 “너무 보기 좋다, 행복하게 살아라”라고 건네는 말은 둘에게 상처가 된다. 심지어 사탕을 주거나, 돈을 쥐어주기도 한다. 꼽슬의 말처럼 지하철을 타고 가는데 모르는 사람한테 기분이 이상해지는 격려 아닌 격려를 비장애인이 받을 이유는 없다.

   
▲ 장애는 노동을 통해 생산물을 내놓는 데 걸림돌이다. 장애인은 자본주의 시장에서 사용가치, 교환가치가 비장애인보다 현저히 떨어진다. 가치가 떨어지는 장애인과 만나는 비장애인이 대단하다고 느껴지는 것은 사회의 가장 근본이 되는 토대, 즉 자본주의 경제구조 위에 우리 삶과 의식이 있기 때문이다. ⓒ EBS '꼽슬과 빙구'

꼽슬과 빙구에게 힘든 일이 있다면, 그것은 꼽슬의 장애 때문만은 아니다. 주변의 시선과 시혜적 태도, 더 나아가 고쳐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사회적 제도가 더 힘들게 한다. 다큐멘터리는 장애인이 사회로부터 소외된 모든 상황을 제쳐두고 둘 이야기만 조명한다.

그들에게는 장애도 사랑의 일부다. 빙구는 꼽슬이 비장애인이었다면 “몸이 어떻게 생겼을지 잘 모르겠다, 그건 아마 다른 사람일 거야”라고 말한다. 꼽슬 본인도 장애가 없어진다면 자신도 없어질 것이라 한다. 태어나면서부터 장애가 없었던 적은 없었고, 장애가 있는 자신이 그냥 자신이라 말하며 장애를 자신의 일부로 생각한다.

장애인 다큐멘터리는 항상 슬프다

장애인이 주인공인 다큐멘터리는 가슴을 찡하게 만들고 분노를 일으킨다. 빙구는 꼽슬에게 인공호흡기를 끼워주고, 잠이 든 걸 확인한 뒤 눈물을 보이며 인터뷰를 한다. 꼽슬의 장애에 어떻게 할 수 없는 자신의 무기력함을 토로한다. 바로 다음 장면은 빙구가 울고, 꼽슬이 달래는 모습을 보여준다. 차분한 말투를 가진 여성의 내레이션은 슬픔을 더 극대화한다.

“다음날, 눈이 많이 부었습니다. 꼽슬을 만나자 아무렇지 않은 척 애씁니다. 얼마의 시간이 남아있는 걸까요. 절망적인 상상이 멈추질 않습니다.”

빙구는 울지 않으려 하는데도 자기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하며 계속 운다.

“괜찮다고, 괜찮다고, 지금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고, 언제나 그는 인내심 있게 달랩니다.”

장애라는 장벽 앞에 힘들어하는 장애인과 그 주변인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장애인 다큐멘터리에서 시청자의 눈물샘을 자극하는 장면은 빠질 수 없다. 대중매체가 보여주는 장애인은 능동적 주체라기보다 감동을 주는 대상으로 고정된다. 장애가 원인이 된 눈물은 시청자의 심금을 울리는 데 효과적이어서, 장애인은 휴먼 다큐멘터리의 단골 소재가 된다.

“행복하세요! 화이팅입니다!”

감동적이고도 눈물 나는 장애인 다큐멘터리를 본 사람들의 반응은 한결같다. 그 일관성은 ‘꼽슬과 빙구’ 유튜브 댓글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 '행복하세요', '파이팅입니다', '감사합니다', '응원할게요'... 꼽슬과 빙구가 비장애인 커플이었다면 이런 댓글은 달리지 않았을 것이다. ⓒ YouTube EBSDocumentary

예쁘지만 가슴이 저릿한 사랑 이야기, 어떻게 저럴 수 있는 건지 감탄만 나오는 이야기, 결국 비극으로 끝날 텐데 걱정되는 이야기는 장애인 다큐멘터리의 전형적인 스토리텔링이다. 사람들은 저마다 그들의 모습을 보며 다른 생각을 했겠지만, 나오는 반응은 똑같다. ‘힘내세요’ ‘응원할게요’ ‘파이팅입니다’ ‘예쁜 사랑 하세요’…

그들은 우리의 응원이 필요할 만큼 약한 존재가 아니다. 어딘가 모자라 약해 보이는 그들을 응원하면 그들은 기뻐할까? 저들과는 다르게 응원해줄 수 있는 위치에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오히려 우리가 뿌듯해하고 있는 건 아닐까? 장애인 다큐멘터리는 진부한 클리셰를 벗어나야 한다. 보통사람의 시선이 아니라 그들 자신의 시선으로 그들의 내면에 좀 더 육박해 들어가야 한다.


편집 : 황진우 기자

[박동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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