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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대’를 꺼리는 이유도 절박하다
[상상사전] ‘연결’
2019년 04월 18일 (목) 21:36:48 조현아 PD joninja@naver.com
   
▲ 조현아 PD

SBS에 ’인생게임-상속자’라는 파일럿 프로그램이 있었다. 한국 사회를 본떠 만든 듯한 생존 버라이어티였다. 상속자와 비상속자,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이뤄진 체계에서 참가자들은 자유롭게 동맹결성, 게임우승, 배신 등의 행위를 통해 코인을 모은다. 최종 승자는 상금 1000만원을 얻는다. 가장 화제가 된 이는 ID ‘샤샤샤’와 ‘강남베이글’이다. 샤샤샤는 알바를 전전하는 가난한 여대생으로 학자금 대출에 시달렸고, 강남베이글은 금수저로 자산가 아들이었다. 샤샤샤는 물불을 가리지 않았다. 밥을 굶고 밤을 새고 동료를 배신하며 코인을 벌었다. 반면 강남베이글은 승부에 집착하지 않았다. 그는 한번 맺은 ‘동맹’을 굳이 깨려 하지 않았고, 사람들에게 시종일관 여유 있게 다가갔다. 최종 상속자는 강남베이글이 됐다. 그와 동맹 맺은 이들이 그에게 코인을 몰아주었기 때문이다. 샤샤샤는 끝내 울음을 터트렸다.

‘연결’은 대상과 대상이 이어지거나 관계를 맺는 것이다. 인간과 인간 사이 연결은 ‘연대’라 한다. 연대는 인간이 관계를 맺고, 어디엔가 함께 속한 느낌을 나누는 것이다. 이 연대가 모여 공동체를 이루고, 인간 사회를 형성한다. 인류 역사의 발전은 곧 ‘연대’의 발전이었다. 원시시대 때부터 인간은 홀로 생존할 수 없음을 감지하고 부족을 이루고 집단을 형성했다. 조직을 이뤄 자연과 야생의 위협에서, 적의 공격에서 살아남았다. 실제 인간 뇌는 ‘상호작용’을 더 잘하기 위해 발달해왔다고 한다. 상호작용하는 집단의 개체수가 많아질수록 비례해 커진 인간 대뇌 신피질의 크기가 그 증거다. 기술이 고도로 발전하고 문명화한 현대사회 역시, 복잡해진 만큼 셀 수 없는 변수와 위험요소를 지닌다. 인간이 유연하게 위험에 대처하고, 변화하는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 연대는 필수다.

샤샤샤와 강남베이글의 결정적 차이도 ‘연대’에 있었다. “연대보다는 나의 노력으로 획득하겠다”던 말처럼, 샤샤샤는 동료를 믿지 않았고 강남베이글은 게임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한 동맹을 끝까지 지켜냈다. 하지만 그것이 전적으로 두 사람의 개인적 차이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까? 샤샤샤에게는 독주해야만 하는 맥락과 상황이 있었다. 1000만원이 절실했고, 무조건 따내야 했다. 반면 강남베이글에게는 여유가 있었고, 그 덕분에 참가자들과 ‘좋은’ 관계를 맺고 이어갈 수 있었다. 연대는 개인이 사회에서 자리잡고 살아가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이다. 하지만, 당장 오늘 먹고 살아야 하는 이들에게는 사치가 된다. 주위를 둘러보거나 누군가와 손잡을 새도 없이 혼자 뛰어야 하기 때문이다. 당장 눈앞의 이익을 구하고, 필요한 것을 벌어야 한다. 그들이 처한 상황이, 살아온 맥락이 ‘연대’를 생각할 수 없게 만든다. 어쩌면 연대는 ‘먹고사니즘’의 반대말일지 모른다.

   
▲ ’인생게임-상속자’는 신계급사회 같은 불평등한 한국 사회 모습을 절묘하게 반영했다. © SBS

‘계급배반 투표’는 그것을 잘 보여주는 현상이다. 경제력이 없는 이들은 지금 내 일자리, 임금을 지켜줄 정치인에게 투표한다. 이주민과 임금경쟁을 하지 않아도 되고, 더 많은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되는, 나의 ‘안위’를 지켜줄 이를 찾는다. 어차피 보수나 진보나 똑같은 엘리트일 뿐이고, 누구를 뽑는다고 해서 내 삶이 눈에 띄게 나아질 리는 없다고 믿는다. 양극화가 가속화하고, 저성장과 세계화로 먹고 살기 힘들어지는 현실에서 ‘계급배반 투표’는 삶이 녹록하지 않은 이들이 행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다. 미국에서는 러스트벨트 노동자들의 표가 극우보수 트럼프에게 몰렸다. 프랑스에서는 시민들이 무산자의 저항으로 노란조끼를 입었다. 크게 보면 영국의 우파가 “딜 없어도 상관없다”(No deal. No problem)고 자신만만해 하며 결정한 브렉시트도 같은 맥락이다.

케임브리지대 장하준 교수는 이를 ‘신자유주의적 구조화’ 때문이라 짚었다. 신자유주의는 절대로 강자에게 유리한 체제다. 시장개방과 규제 완화, 노동시장 유연화는 경제적 희생양을 낳는다. 개인은 자기 삶이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기 위해, 다른 누군가를 떨어뜨려야 한다. 한국사회 각종 지표는 그 불안을 충분히 뒷받침한다. 불평등도는 세계 다섯손가락 안에 들고, 소득 1, 2분위 저소득계층은 해마다 더 가난해진다. 교육에서는 남을 밟고 올라가야 한다고 가르치며, 일터에서 ‘동료간 협력’ 수준은 OECD 최저다. 외환위기 전 OECD 평균 이하였던 자살률은 이제 평균 3배에 이른다. 장 교수는 “20여년간 신자유주의가 왔다 갔다 하는 한국에서 좀 더 확실한 좌파 정책을 쓰지 않으면 반 엘리트, 반동이 나올 것”이라 했다. 개인이 파편화하고, ‘먹고사니즘’이 지배하는 사회. ‘혼자 달려야만’ 산다고 하는 사회에서 과연 우리는 ‘연결’을 얘기할 수 있을까?

누군가와 연결되고 마음이 이어지려면 ‘공통의 의미’가 필요하다. 조지 레이코프 교수는 “사람들은 특정 문화, 하위 문화의 사람들과 공유하는 은유와 프레임이 있다. 삶의 경험과 문화적 노출, 하위문화적 노출이 더 많이 겹칠수록 공통의 의미를 성공적으로 창조할 가능성이 더 높다”고 했다. 연대와 거리가 멀어진 한국 사회에서 우선 해야 할 일은 공통의 의미를 쌓는 것이다. ‘연결=생존’이라는 의미를 쌓아야 한다. 작은 연대, 일상적 연결의 경험이 누적돼야 사회가 바뀔 수 있다. KTX 여승무원과 쌍용차 해고자 복직, 대한항공 직원들의 가면 시위는 그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Secure people dare’(안전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은 대담할 수 있다). 1950~60년대 스웨덴 사민당 구호다. 그들은 연대했고, 그랬기에 안전을 쟁취했으며 대담해질 수 있었다. 노동권, 최저임금, 복지제도 등 개인에게 기본적 사회안전망이 확충됐을 때, 그 위에서 서로 ‘연결’돼도 괜찮다는 믿음이 생길 때, 비로소 우리는 연대하며 살 수 있을 것이다.


보들레르가 ‘모든 능력들의 여왕'이라고 말한 상상력이 학문 수련 과정에서 감퇴하는 건 안타까운 일입니다. 저널리즘은 아카데미즘과 예술 사이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생각을 옥죄는 논리의 틀이나 주장의 강박감도 벗어 던지고 마음대로 글을 쓸 수 있는 상상 공간이 바로 이곳입니다. 튜토리얼(Tutorial) 과정에서 제시어를 하나씩 정리하다 보면 여러분만의 ‘상상 사전’이 점점 두터워질 겁니다. (이봉수)

* 제13회 ‘봉샘의 피투성이 백일장’에서 우수작으로 뽑힌 이 글을 쓴 이는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 재학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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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 양안선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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