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사전] ‘봄’

▲ 최유진 기자
   

매서운 겨울이었다. 한파나 폭설 때문이 아니었다. 살을 에는 추위는 해마다 그랬다. 지난겨울은 나에게 몸보다 마음이 서늘한 시간이었다. 동 트기 전에 5516 지선버스를 타고 서울대학교로 향했다. 발열 내복에 패딩 점퍼를 껴입고, 목도리까지 둘러매고 집을 나섰다. 기온이 영하로 내려가면, 아무리 중무장을 해도 칼바람을 이길 수 없었다. 춥다고 투덜거리면서도 그렇게 길을 나선 이유는 있다. 열심히 공부해서 취업도 하고 한편으로 더 나은 사회를 만들고 싶은 마음의 ‘불꽃’이 일었기 때문이다. 내 안에 그 열기를 느낄 때면, 세상 모든 냉기를 떨쳐버릴 수 있을 것 같았다. ‘기레기가 아닌 진짜 기자가 되기 위해, 이까짓 추위야.’   

취업준비생에게 서울대 중앙도서관은 고마운 공간이다. 일반인이 이용할 수 있는 대학 도서관은 그리 많지 않다. 열람실 규모도 큰 편이고, 냉난방도 잘 된다. 우리나라 최고 대학으로 꼽히는 서울대는 시민에게 따뜻한 꿈의 터전이 되어준다. 모든 구성원에게도 그랬을까? 서울대 시설관리직 노동자들에게는 그렇지 않았다. 

지난해 문재인 정부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정책을 발표했다. 서울대에서 비정규직 용역으로 일해온 시설관리직 노동자들도 정규직으로 전환됐다. 이들은 봄날이 찾아올 줄만 알았다. 그러나 교직원 행정사무직과 복지 조건에서 차별받았고, 중소기업 제조업 시중노임 단가도 적용되지 않았다. 서울대에 정액급식비와 복지포인트 40만원, 명절휴가비 1회 40만원을 요구하며 단체교섭을 시작했다. 교직원 행정사무직은 복지 포인트로 100만원, 명절휴가비는 월 기본급의 60%를 받고 있었다. 그러나 서울대는 명절휴가비는 줄 수 없고, 정액급식비 10만원이 포함된 연 30만원의 복지포인트를 주겠다고 했다. 또 이들은 같은 직종 다른 일반 노동자들보다 100만원가량 적은 임금을 받고 있었다. 

지난 2월 7일부터 서울대 시설관리직 노동자 120여명은 행정관과 중앙도서관, 공학관 기계실을 점거하며 파업을 선언했다. 수차례 학교 본부와 임금단체협상을 했지만, 결렬됐기 때문이다. 다음날 기자회견에서 서울일반노조 서울대기계·전기분회 최분조 부위원장은 “도서관 난방이 되지 않은 부분은 학생들에게 너무 미안하고 부모의 마음으로 가슴 속에 눈물이 흐른다”며 난방 중단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했다.

▲ 지난 1월 서울대 중앙도서관은 시설관리직노조의 난방기 가동 중단 문제로 우리 사회에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 최유진

다른 서울대 구성원들은 냉담했다. 파업 돌입 당일, 총학생회는 학습권이 침해될 수 있다며 일반노조에 도서관을 파업 대상 시설에서 제외해 달라고 요청하겠다고 했다. 노조측이 쓴 대자보에 ‘가정부가 보일러실을 점거하고 집주인 행세하려는 꼴’이라는 낙서가 달려 노골적으로 혐오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파업 닷새째, 서이종 서울대 중앙도서관장(사회학과 교수)은 “학생들의 공부와 연구를 볼모로 임금 투쟁하는 나라에는 미래가 없다”며 도서관 난방 파업을 응급실 폐쇄에 비유해 비판하는 기고문을 <조선일보>에 냈다.

일부 언론이 노조를 죄인들로 몰아가기도 했다. ‘냉골 도서관’, ‘학생 인질극’ 등 기사 제목에 자극적인 말들을 쏟아냈다. 노동자들이 파업에 이르게 된 맥락 따위는 어디서도 짐작할 수 없었다. 기사의 댓글을 보며 등골이 서늘했다. 서울대 학생들은 옹호하면서, 서울대 노동자들을 지지하는 글은 드물었다. 학생들에게 피해 주지 않는 파업을 하라는 식이었다.   

지난 2월 12일 서울대본부와 민주노총 서울일반노조 간에 교섭이 타결됐다. 파업 초기 일부 학생들과 함께 파업에 부정적이었던 총학생회가 태도를 바꿔 노조와 연대하고, 오세정 신임 총장도 노조 요구를 긍정적으로 검토하며 열악했던 처우를 인정한 결과다. 서울대 구성원이 아닌 제3자인 나는, 일련의 과정을 지켜보면서 줄곧 열람실에 앉아있었다. 겨울이 지나 반드시 봄이 오리라 믿었기 때문이다. 칼바람에 잔뜩 웅크리고 캠퍼스를 걷던 날도 있었다. 그때가 유독 추웠던 건, 날씨 탓만이 아니었다. 곁에 온기를 나눌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삼라만상에 따뜻한 햇살을 비추는 봄이 왔다. 계절은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같은 시간에 바뀐다. 그러나 계절을 느끼는 건 다른 문제다. 마음 속의 봄은 누구에게나 따뜻하게 오는 건 아니다. 고성·강릉 산불을 끄는 데 끝까지 고생한 산림청 특수진화대원들은 봄이 지나면 해고된다. 10개월 고용 비정규직이기 때문이다. 그들에게는 봄이 오는 게 두려울 것이다, 생명의 위험을 무릅써야 하고 해고기일이 가까워지는 때니까. 


보들레르가 ‘모든 능력들의 여왕'이라고 말한 상상력이 학문 수련 과정에서 감퇴하는 건 안타까운 일입니다. 저널리즘은 아카데미즘과 예술 사이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생각을 옥죄는 논리의 틀이나 주장의 강박감도 벗어 던지고 마음대로 글을 쓸 수 있는 상상 공간이 바로 이곳입니다. 튜토리얼(Tutorial) 과정에서 제시어를 하나씩 정리하다 보면 여러분만의 ‘상상 사전’이 점점 두터워질 겁니다. (이봉수)

편집 : 강도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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